조동진, '슬픔이 너의 가슴에' (1985)
슬픔이 너의 가슴에 갑자기
찾아와 견디기 어려울 때
잠시 이 노래를 가만히 불러보렴
슬픔이 노래와 함께
조용히 지나가도록
내가 슬픔에 지쳐 있었을 때
그렇게 했던 것처럼
외로움이 너의 가슴에 물처럼
밀려와 견디기 어려울 때
잠시 이 노래를 가만히 불러보렴
외로움이 너와 함께
다정한 친구 되도록
내가 외로워 잠 못 이룰 때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내가 슬픔에 지쳐 있었을 때
그렇게 했던 것처럼
조동진, '슬픔이 너의 가슴에' 가사 전문
나는 세상으로부터 잠시 빠져나와 몸을 웅크린 채 숨어 있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뿌연 먼지와 악취 나는 쓰레기들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나에게 모질게 대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나에게 따뜻한 마음씨와 조건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존재들도 숱하게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 모든 게 참 슬프다. 좋은 것만 취하며 살 수 없고, 하나를 얻기 위해 적어도 두 개는 내어주어야 하는 이 모든 상황들이.
어느 나그네가 기타 한 대를 들고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기타를 튕기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노래하기 시작했다. '슬픔이 노래와 함께 조용히 지나가도록'
그가 부르는 노래의 선율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내가 여태껏 슬픔을 부여잡고 놓지 못하고 있었구나.', '나는 슬퍼하기 위해 슬펐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래 한 소절 차근차근 짚어가며 부르다 보면 내 안의 슬픔이 강물처럼 스르르 떠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내가, 혹은 우리가 계속 슬퍼하게 되는 이유는 슬픔이 흐르지 못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놓아야 한다.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는 계속 노래한다. '외로움이 너와 함께 다정한 친구 되도록'. 슬픔과 달리 외로움은 흘려보낼 수 없다. 인간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기에 누구나 외롭다. 가끔 외로움에 몸서리쳐질 때도 있지만, 발상을 전환하여 설령 아무도 내 곁에 없을지라도 외로움만은 '다정한 친구'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노래 말미에 항상 '내가 ~ 그렇게 했던 것처럼'이라는 구절을 덧붙인다. 슬프고 외로운 사람끼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걸까. 내가 슬픔과 외로움 앞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서성이는 모습을 그는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을 테다. 그리고 지금, 만신창이가 된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노래로 나를 위로한다.
故 조동진 선생님의 노래를 듣노라면, 발성이 어떻고 테크닉이 어떻고 하는 게 죄다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선생님 노래의 정수는 딱 한 가지다. '자신의 마음을 청자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 그것 하나를 묵직하게 지켜냄으로써 다른 부차적인 요소들의 부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부재함으로 인해 생긴 여백들이 선생님의 노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어쨌든 살아 있기 때문이다. 숱한 감정들 중 하나에 불과한 슬픔은 노래 한 자락 뽑으며 자연스레 지나가도록 내버려두고, 외로움은 다정한 친구로 삼아 아름답게 공존하며 살아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