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이 무례함을 넘어,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_3월 26일
도서관의 육중한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노란색 안내문. 눈에 띄기 위해 선택한 색이라면 충분히 그 소임을 다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걸음을 멈추게 했으니까.
‘박정호 교수의 10분 경제 이야기’ 도서관이나 시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방송을 통해 꽤 이름이 익숙한 분이라 서슴없이 강연을 신청했다. 나와 아내 이렇게 두 명을 신청하고 일상의 어지러움으로 잊고 지냈더니 전날 친절하게 참석 안내 문자까지 전해 준다.
현대인들의 과잉 친절은 이제 몸에 너무 익숙해졌다. 주최자가 안내하지 않으면 클레임을 거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공무원들의 이야 욕먹고 싶지 않으니 귀찮아도 보내는 메시지겠지만. 그래도 뒤집어 생각하면 그들의 애환도 느껴진다. 너무 지나친 친절이 이제 당연한 세상이 되어 그 정도의 행위를 하지 않으면 욕지거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세상.
붉은색 익숙한 접이식 강연 의자에 앉아 강연 시작을 기다린다. 정시 보다 5분쯤 늦게 시작하긴 했지만, 잠시 후 시작한다는 관인의 새겨진 목걸이를 한 주최 측의 안내로 크게 기분 상할 일은 없다. 그사이 시간에도 어린아이들과 손을 맞잡은 가족 단위의 사람들, 혼자 자리에 앉아 폰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들. 강연을 기다리는 5분의 풍경도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스럽다.
그렇게 시작된 박정호 교수의 강연 오늘의 이야기가 강연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니 간단하게 명료하게, 평소 ‘손에 잡히는 경제’를 청취하고 있던 터라 보이는 라디오 부스에라도 왔다는 듯한 친숙함이 전해진다.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경제를 통해 보는 미래의 이야기, 중국과 미국 시장에 관한 이야기, 휴머노이드에 관한 이야기 딱히 특출 난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매끄러운 말솜씨와 잘 분석된 자료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 러. 나 세상은 반전이 없다면 서운하지, 그렇게 매끄럽게 강연이 끝나고 이제 사진이나 서로 한 장씩 남기며 집으로 가야 할 시간. 누군가 질문을 한다.
“저는 미국에서 왔습니다. 교수님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투자해야 하는 저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모인다. 시국의 어지러움도 있긴 하지만 세상에나…. 면전에 그것도 강연한 교수에게 직진으로 정치적 성향을 물어보다니. 심지어 정치 강연도 아닌 곳에서 이런 무례한 사람이 있다니. 놀랠 노자가 마구 아른거린다.
박정호 교수는 우매한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한 것 같긴 하다. 내가 화가 나서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
마이크가 내게 전해진다면 한마디를 꼭 하고 싶었다.
“다수가 있는 공간에 기본 매너는 지키고 삽시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 개인적인 공간에서 묻는 말이라면 모를까? 이게 무슨 매너입니까? 그리고 미국에서 살다 왔다. 그 사실을 앞단에 말하는 건 우러러보기를 바라는 겁니까?”
그러나 나는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꾹 참느라 고생했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