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산행
와-
들어가자마자 경탄이 나온다.
주차장에선 미처 모습을 다 드러내지 못했던 산이 이제야 진짜를 보여준다는 듯 자태를 뽐낸다.
나무와 사찰 건물이 없는 공터에 이르자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나체의 산이 보인다.
거칠면서도 우아하게,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하게.
그는 그 자리에 고정된 것처럼 한참을 서서, 고고한 바위 덩어리의 구석구석 시선 닿지 않는 곳이 없도록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이며 담는다. 그 모습을 놓칠 새라 눈을 깜박이는 속도를 조금 더 늦춘다.
흰 눈과 차가운 바위산, 새벽 공기의 감촉이 눈에 시려웁게 와닿는 듯하다. 눈물이 고인다.
그러다 문득, 그는 주변을 짓누르던 어둠이 조금 가벼워진 것을 깨닫는다.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서두르자, 이러다 동이 트겠어.
그는 이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이정표와 발밑의 눈만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속도를 올려 씩씩하게 걷는다. 콰작 콰작 하던 경쾌한 소리는 제법 커져 둔탁하게 변한다. 도톰하게 쌓인 눈이 발아래 압축되는 리듬감을 느끼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대법당의 거대한 불상이 두터운 눈이불을 덮고 있어도, 꺼지지 않도록 소중히 넣어놓은 촛불에서 은은하고 달콤한 향내가 풍겨도 앞만 보고 걷던 그는, 그만 길을 잃는다. 유일한 길은 한 법당으로 이어져 있다.
기도라도 드리고 가라는 건 아닐 테고.
그는 불이 켜져 있는 법당에 들어가 길을 물을까 하다가 그만둔다. 고민하던 그의 눈에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파인 눈 더미가 보인다. 길이라고 하기에는 뭣하고, 굴이 파진 것과 같다고 하면 적당할 것 같다.
설마 저게 길인가.
정확히 하기 위해 지도앱을 켠다. 시간도 없는데 괜히 헛걸음을 할 순 없기 때문이다.
확실하군.
검색 기록을 삭제하고, 그는 망설임 없이 눈더미로 뛰어든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정도라 스틱은 놓을 자리가 없다. 앞으로 스틱을 짚자니 뭔가 어정쩡한 자세가 되고 옆으로 짚으면 눈이 튀어 신발이 젖기에, 결국 그는 한 손으로 스틱을 들고 간다. 팔 운동을 하는 셈이 되어 버렸다. 가벼운 걸 사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그다.
굴, 아니 ‘길’ 가 중간중간에는 둥그렇게 홈이 파여 있다. 저게 뭘까 생각하던 그는 딱 한 사람만 갈 수 있는 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과 만났을 때 비켜줄 공간임을 깨닫는다. 꽤나 체계적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젠 부지런히 가는 일만 남았다. 그는 속도를 올려 힘차게 경사를 오른다. 그동안 한 하체 운동이 모두 이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열심히 다리에 힘을 준다.
저 멀리 왼쪽에서 여명이 보인다.
큰일이군. 서둘러야겠어.
얼마나 지났을까.
흰 것은 눈, 검은 것은 나무.
눈, 나무. 눈, 나무.
변화를 수반한 일련의 단조로움에 익숙해질 무렵,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다 오르면 나온댔지.
비로소 이곳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한다.
퉁
퉁
퉁
퉁
맥박이 귓가에서 증폭된다. 피가 너무 빠르게 도는 듯하다.
흥분과 두려움이 동시에 차올라 살짝 어지러워진다.
그는 난간을 잡고 첫 번째 계단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