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돌멩이 동생이 생겼다 3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리를 쩍 벌린 채 넋이 나간 얼굴로 앉아 산책로를 가로막고 있다. 그걸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며 지나간다. 아니 지금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니까, 왜 나를 보는 거야.
그러니까 처음 내가 발견한 돌멩이는, 아니 ‘반려’ 돌멩이는 빨간 가슴줄을 멘 초롱이다. 이름처럼 표면이 아주 매끈해 반질반질 윤이 났다. 두 번째로 마주친 돌은 보미. 어디가 아프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래서 최대한 산책을 자주 시켜줘야 한단다. 크기는 성인 여성이 두 손으로 들어 품에 안아야 옮길 수 있을 정도고. 살짝 거친 표면과 어딘가 모르게 칙칙한 색깔이 초롱이와 비교됐다. 좀 생기가 없어 보인달까. 진짜 아픈 것처럼 말이지.
'뭔 소릴 하는 거야 박진주. 이젠 너까지 이 웃긴 역할극에 동참할 셈이냐고.'
나는 소름 끼친다는 듯 몸서리를 치며 생각도 함께 떨쳐낸다.
‘하지만 단순한 놀이라고 하기엔 너무.. 너무 본격적이잖아.’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침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린다.
‘아, 혹시 그런 건가? 할로윈처럼 말이지. 갑자기 돌멩이들의 파티날이 제정됐다던가 한 거지. 물론 오늘 하루만 이렇게 노는 거고. 내일부턴 다들 정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오케이, 그럴 수 있어.’
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열심히 검색을 한다.
‘돌멩이 파티’ 검색.
하나뿐인 반려돌의 한 번뿐인 생일.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파티를 선물합니다. -프리미엄 파티, 노블멩.
전문 작가 촬영 서비스/프라이빗 단독 대관/vip 맞춤 컨시어지
소중한 내 아이의 행복한 생일을 빚어냅니다. -조각
감성 파티 전문/수제 케이크 제작/스토리텔링 축하 영상/커스텀 파티 플래닝
반려멩 생일인데 집에만 있을 거야? 인생멩샷 남겨줄게! -멩파뤼
아이폰 스냅/자연주의 테마/실시간 멩스트리밍/야외 전용 멩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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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광고들이 주르륵 뜬다.
멩..파티... 나는 헛웃음이 나와 그 단어를 한 번에 읽지 못한다. 헛것을 보는 듯해 세 번쯤 눈으로 그 글자를 더듬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든다.
"허.. 그니까 정말 있다는 거네, 이런 게."
전혀 농담이 아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고들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숨이 가빠지고 손가락이 떨린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정말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나쁜 예감이 든다. '어쩌면.. 하지만 어떻게..?'
계속해서 엎치락 뒤치락 바뀌는 생각 탓에 머리가 복잡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다음 단어를 검색한다. 마치 몇 초 뒤에 이 상황을 확증할 만한 무언가를 마주하기라도 할 것 같다는 그런 불안감이다. 그걸 꾹꾹 눌러 놓은 채로 검색창에 ‘돌멩이의 날’을 입력한다.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검색 버튼을 누르곤 눈을 감아 버린다.
‘차라리 오늘이 돌멩이의 날이라고 해줘. 그럼 어떻게든 설명이 될 지도..’
감았던 눈을 찡그리며 살며시 뜨자, 맨 위에 떠 있는 지식 패널이 보인다.
<세계 돌멩이의 날 (World Pebble Day, WPD, 2월 29일)>
세계 돌멩이의 날은 2040년 2월 29일, 국제 돌사랑 협회(International Stone Affection Association, ISAA)에 의해 공식 지정된 국제 기념일이다. 해당 날짜는 고(故) 김○○ 회장이 생전에 법적 반려돌 ‘미르’에게 전 재산을 상속한 날로, 동시에 ‘반려돌 권리 선언’이 발표되며 세계 반려돌 문화 확산에 중대한 전환점이 된 상징적인 날로 평가된다.
<국제 돌사랑 협회 (International Stone Affection Association, ISAA).
국제 돌사랑 협회는 반려돌의 생명권, 평등권, 보호권을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로, 돌멩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설립 당시 고(故) 김○○ 회장을 포함해 돌멩이를 사랑하는 세계 각국의 대부호 및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들의 기부와 참여를 기반으로 출범했다.
현재 협회는 ‘반려돌 주민등록제’의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유기돌 문제 해결 ▲복지 사각지대 해소 ▲공공의료 체계 접근성 향상 ▲납세 기반 확보 등,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반려돌 관리 시스템 구축 및 정착을 도모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매년 2월 29일에는 전 세계적으로 반려돌 페스타(Festa), ‘멩포지엄’(Pebble + Symposium), ‘돌과의 대화’ 워크숍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반려돌 문화의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고, 전통적 생명 개념을 넘어선 존재권 논의에 새로운 사회적 함의를 던지는 장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허-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당황을 넘어선 허탈함으로 나는 그만 탄식하고 만다. 약간의 무력감과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의심, 그리고 조금은 섞여 있는 비웃음까지. 그렇게 웃다가 다시 혼란스럽고 당황한 표정으로 화면을 들여다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진짜로 있잖아, 돌멩이의 날이. 게다가 국경일이야.'
나는 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다. 돌멩이의 날은 2월 29일, 며칠 전 김 회장의 상속이 발표되던 날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오늘은 2월 29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돌멩이의 날도, 아무 날도 아닌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하루라는 거잖아. 이렇게 돌멩이의.. 뭐랄까 나라가 되어 버린 현실이. 아, 전 세계적이라니까 돌멩이의 세상이라 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이제 어지러워지는 것 같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그러니까 멩파티도, 세계 돌멩이의 날도 실제로 존재한다. 이 세계에선. 아니지, 여긴 내가 원래부터 있던 세계니까.. 새로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언제부터 생긴 거지? 대체 언제부터 돌멩이의 세상이 된 거냔 말이야.
아무리 집순이라지만 이런 엄청난 변화를 모를 정도로 집에만 박혀있진 않았던 거 같은데. 이렇게 소리소문 없이 갑자기 돌멩이의 시대가 왔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아니면 내가, 다른 세계에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아냐, 제발 정상적인 생각을 좀 하자.'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동안, 주말 점심을 즐기려 공원으로 나온 건지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물론 더 많은 돌들과 함께. 돌멩이를 데리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가 자신의 반려돌을 품에 안고, 또 손에 들고 나왔다. 캡모자를 쓰고 미니 스커트를 입은 돌멩이와 함께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젊은 여성과, 자전거 안장 뒤에 작은 의자를 설치해 돌을 태우고 달리는 아주머니, 아기띠를 메고 돌멩이를 넣은 후 아들과 셋(?)이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아저씨, 아기들이 타는 조종형 전동차에 커다란 바위를 태워 산책을 시키고 있는 청년까지.
‘아주 그냥 가관이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러다가 발 밑에서 바람에 날아온 전단지 한 장을 발견한다.
<제1회 전국 반려돌 가족 행복 페스티벌>�
일시: 2040년 3월 10일 (토) 오전 10시~오후 6시
장소: 서울숲 반려돌 존 (구 잔디광장)
✨ ‘내 돌멩이를 만난 첫날’ 가족 사진전
✨ 반려돌 장기자랑 대회
✨ 수제 반려돌 간식 푸드 트럭
✨ 무료 ‘돌멩이 유전자 감별 서비스’
✨ 돌멩이 보험 설계 상담 부스
✨ 돌멩이 돌보미 상담 부스
✨특별 초청 강연
“반려돌, 이젠 우리의 가족입니다” by 박지윤 소장 (멩마인드상담소)
※반려돌 주민등록제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는 가족은 입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후원: 국제돌사랑협회, 여성가족부, 미르재단
공식 해시태그: #반려돌가족행복페스티벌 #우리집돌째 #멩가족 #멩집사
'잠깐... ‘여성가족부’? ‘농림축산식품부’가 아니라?'
나는 충격에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만다. 그 많은 애견인, 애묘인들이 수년간 노력해도 반려견, 반려묘는 늘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이었다. 그러니까 반려동물은 어디까지나 ‘가축’의 범주에 속했으며, 반려동물에 대한 제도 역시 ‘가족 구성원’이기 때문이 아니 단순한 ‘관리’ 측면에서 시행되고 있었다는 말이다.
'긴 노력에도 입법화가 되지 않았던 문제였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반려돌은 ‘반려 돌멩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부터 바로 ‘여성가족부’ 관할이 된 것이다. 그 말은 오랜 시간 키워온 고양이나 강아지도 얻지 못했던 법적 ‘가족 구성원’의 지위를, 그것도 반려'돌'이 단번에 얻어냈다는 것이다.
이건 실로 엄청난 일이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돌멩이로 가득한 세상은 단순한 유행도 장난도, 일시적인 특별한 축제도 아니었다. 이젠 국가가 나서서 돌멩이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 게다가 반려돌 주민등록제는 또 뭔데?’
설마 하는 마음에 뒷장을 넘겨보니 서식이 나와 있다.
「반려돌 주민등록제 동의서」
[국가표준양식 제 RD-2040-01호]
발급기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돌정책과
공동관리부처: 여성가족부, 환경부, 국제돌사랑협회
1. 기본 정보
·반려돌 이름: [ ]
·반려자 이름: [ ]
·생년월일(돌을 만난 날짜): [ 년 월 일 ]
·거주지(반려돌 등록 주소): [ ]
·돌종(選):
☐ 화강암 ☐ 편마암 ☐ 점판암 ☐ 자갈 ☐ 기타( )
·성격 (중복 선택 가능):
☐ 조용함 ☐ 감정적임 ☐ 충직함 ☐ 자율적임 ☐ 기타: ( )
·돌 DNA 검사 여부:
☐ 검사 완료 (결과 첨부) / ☐ 검사 예정 / ☐ 미실시
2. 가족 구성원 등록 여부
☐ 본인은 해당 반려돌을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주민등록등본 내 등재를 요청합니다.
☐ 해당 반려돌을 동거인으로 등록하며, 주거지 내 동등한 거주 권한을 보장합니다.
3. 돌멩이 인권 및 돌복지 준수 서약
☐ 반려돌에 대한 학대 및 방임 금지
☐ 연 1회 이상 광물질 세척 및 정기 검진 의무 이행
☐ 반려돌의 의견을 존중하고 감정적 교감을 우선시함
☐ 돌멩이 유기 시, 과태료 500만 원 및 반려권 박탈 가능성 인지
4.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
본인은 반려돌 관련 정보를 정부의 [공식 반려돌 관리시스템(DOLPASS)]에 등록하는 데 동의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정부주최 반려돌엑스포, 유전자 분석, 등록 통계 등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동의 서명
작성일: 204__년 __월 __일
반려자 성명: __________________
서명(또는 인): ________________
※ 동의서 제출 시, DOLPASS 시스템 내 등록이 완료되며, 본 페스티벌 출입이 허가됩니다.
※ 미제출 시 현장 입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당장 집으로 가야겠어. 엄마가 무슨 짓을 벌이고 있을지 몰라.’
우리 엄마라면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찌릿찌릿하게 저린 다리를 겨우 일으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선다. 불안한 마음에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이번엔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음질한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우리 집만은 안 돼. 내 집에서 돌멩이가 판치는 꼴만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어. 이건 미친 짓이야. 다들 정신이 나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