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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셀프 씹어먹기 2-1

회색 과거

by 향연 Mar 08. 2025

미래의 나를 위협하는 요인 7가지

2.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스토리는 미래를 위협한다


내가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스토리는 무엇인가?



회색.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회색이 떠오른다. 아니, 그렇게 단순하게 하나의 색으로 말할 수는 없을 정도로 뭐랄까 여러 가지 색이 있긴 한데, 그 장면이 전체적으로 뭉개져있다. 명도가 낮고 칙칙한 색에 gloomy 하달까.


물론 즐거운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건 더 어릴수록 즐거웠다는 거다. 아무것도 모를 때, 친구들이랑 밖에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놀기만 해도 즐거웠을 때는 내 삶이 충분히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의 성격은 꽤 밝았을 거다. 털털하기도 하고, 거의 골목대장이었으니까. 나는 친한 남자아이를 자주 울리곤 했다. 적어도 자기표현이 확실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는 사는 게 그다지 재밌지 않았다. 세상에 즐거운 일만 있을 순 없다는 걸 너무 어렸을 때부터 잘 알았던 것 같다. 사실 어린아이들이 더 고민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친구 관계라는 게 너무 중요하고, 어린이 나름의 삶의 어려움이 있으니까.



지금 나의 성격은 꽤 밝고 긍정적이다. 때로는 낙관적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는 걱정이 많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이라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지금의 나는 이제야 본모습을 찾았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제야 나답게 살고 있달까.



나는 예민하고 불안이 많은 성격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아주 얼마 전까지 그랬다. 그런 성격이 대학교 1-2학년 때까지만 해도 지배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모습과 더불어, 아주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이게 나의 원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적당히 어릴 때부터 대학생 초반까지는 그런 성격을 갖게 되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내가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스토리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하는 이유다.



추측 1. 가난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겠지만, 난 항상 우리 집이 왜 더 잘 살지 못할까 생각했다. 우리 집은 내가 아주 어릴 때는 부유했고, 조금 어릴 때는 가난했고, 지금은 보통이다.


어릴 적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난 뒤에는 정말 쌀 한 되가 없어 빌려야 할 정도로 가난했었다. 고 싶은 것을 먹고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싶다 말하는 것도 어려웠다. 무언가를 사고 갖는 것에 대한 결핍이 그때 생긴 것 같다.


부모님이 빚을 어느 정도 갚을 때까지 꽤 긴 시간 동안 우리에게 외식을 한다는 건 엄청난 사치였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치킨을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맛있는 치킨이어야 한다. 브랜드가 있는 치킨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된 건,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해 내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전까지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고, 그것도 저가의 치킨이었다. 어릴 때는 그게 너무너무 속상하더라.



옷이나 학용품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 때까지 천 원짜리 샤프를 쓰던 나는 그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넌 1등인데 왜 천 원짜리 샤프를 써?"


그때 처음으로 부끄럽다고 느꼈다. 알고 보니 같은 반 친구들은 다 10배 정도 가격의 샤프를 쓰고 있었다. 나는 학용품에 그 정도 돈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때는 그래도 형편이 조금 나어졌던 터라 엄마한테 말해서 좋은 샤프를 샀던 기억이 있다.


예쁘고 좋은 것을 가진 친구들,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부모님과 놀러도 가는 친구들을 보면 참 부러웠다. 어릴 때는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크면서는 우리 집이 더 부유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지원해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사립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학비로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보며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커졌다. 그러면서도 엄마한테 학원을 보내달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이후로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한 과목당 30만 원이 훌쩍 넘는 학원을 다른 친구들처럼 몇 개씩 다닐 수가 없다는 게, 방학만 되면 친구들이 가는 유명 학원가의 특강 프로그램을 들을 수가 없다는 게 그때는 참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몸을 갈아 넣으며 공부했다. 6시간 이상 자면 죄책감을 느꼈고, 반에서 나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어야 했다. 공부를 조금이라도 덜한 날에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굶었다. 친구들과 어딘가를 놀러 간다는 건 감히 꿈꿀 수도 없는 사치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주 예민해지고 불행해졌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도 용돈을 많이 받으며 넉넉하게 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비교는 끝이 없었다. 그걸 내가 끊어내고 극복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러기엔 너무 어렸나 보다.


나는 직업을 가지고 나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뭔지 주체성을 가지고 찾아가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바꾸겠다는 생각 덕분에 이런 비교하고 깎아내리는 마음을 없앨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내가 돈을 벌면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게 된 후에, 그리고 그걸 정말 충분히 하고 의미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 후에야 물건과 무엇을 사는 것에 대한 결핍을 극복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이 없어졌는데, 사고 싶은 만큼 갖고 싶은 만큼 가져보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사보고 나니까 꼭 필요한 것인지 따져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추측 2. 부모님이 맞벌이였다.


그러나 가난한 집이 모두 불행한 건 아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돈이 없어도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위하는 가정이라면 아주 행복하진 못해도 불행하진 않을 거라고.


그런데 어렸을 때의 나는 꽤 불행했다. 어린 나는 '난 언제 행복해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항상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기에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도 많이 적었기 때문에 가난해서 불행하다는 생각이 더 강화되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늘 맞벌이를 했다. 나와 동생은 늘 어린이집에서 마지막에 가는 아이였고, 집에서도 부모님이 들어오기 전에 동생과 둘이 잠드는 날이 많았다. 밥도 둘이서 챙겨 먹어야 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신기하게 지금은 사이가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때는 싸우는 날이 정말 많았다.


나는 사랑을 받고 싶었고 안정을 찾고 싶어 했다. 그리고 부모님 눈치를 보고, 아마 두 분을 화해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했을 거다. 난 지금도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상황을 잘 못 견딘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고, 그런 일이 생기면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움받기를 무서워한다. 아마 어릴 때의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성향인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버림받을 것 같다는 불안함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나는 애정결핍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대학생이 되어서야 자각하고 극복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인데, 나는 부모님을 탓할 생각이 없다.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성인이 된 지금은 내가 어릴 때 어떤 환경에서 크고 어떤 일을 겪었든지 간에, 그걸 스스로 극복하고 나의 삶을 꾸려나가야 할 나이가 훨씬 지났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부모님 탓을 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많고, 그걸 극복할 시간이 지금까지 내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또 부모님이 나를 최선을 다해 키워주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시 한번 복기함으로써 내가 나의 과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그걸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더 성장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발판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은 나를 사랑했을 거다. 그러니까 힘들어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겠지. 그리고 가정 형편이 나아지고, 부모님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지금은 오히려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신다. 거의 도치맘이다.


그런데 어릴 때는 내가 그걸 충분히 느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지쳐있었고, 퇴근을 하고 오면 이미 내가 자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정서적으로 교류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힘드니까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나는 대화할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외로웠다.


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겐 웃길 수도 있지만 어릴 때의 난 항상 범죄에 연루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하교를 할 때면 누가 나를 쫓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열 걸음 정도 가면 항상 뒤를 돌아봤다.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아주 조금의 요소라도 없었으면 했다.


집에 동생과 둘만 있을 때는 계단에서 발소리만 들려도 숨을 죽이고 벌벌 떨었다. 행여나 누가 잘못 문을 두드리기라도 하면 정말 너무 무서웠다. 두 살 어린 동생은 내게 그다지 정서적으로 기댈 만한 존재는 아니었으니까.


객관적인 사실을 보자면,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는 그다지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듣는 소문과 함께, 내가 동생과 둘만 집에 있을 때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에 부모님이 각별히 주의를 줬던 게 내 불안감을 더 가중시켰던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어릴 때 많이 느꼈던 감정은 불안함, 무서움, 외로움이었다.



추측 3. 아버지가 가부장적이었다.


우리 아빠는 경상도 남자다. 그리고 옛날 사람이다. 아빠 나이대의 경상도 분중엔 분명 다정한 사랑꾼도 있다는 걸 안다. 근데 우리 아빠는 아니었다.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에 대한 아빠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마음에 안 들 때가 많다. 그래도 지금은 눈치 안 보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리고 아빠는 내 말에 귀 기울여 준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조심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어릴 때는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사업이 망한 뒤로 아빠는 늘 예민하고 짜증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화를 냈다.


그래서 아빠한테 솔직하게 말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빠의 언행이 잘못됐다고 생각해도 그냥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부당하다 생각하는 일을 오랫동안 묵인해야 하는 건 분명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더 불행했던 것 같다.


다정한 아빠와 사이가 좋은 친구들을 보면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리고 질투가 났다. 부러웠다. 엄마보다 아빠와 더 친하다는 친구들을 보면, 아빠와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걸 보면 너무 놀라웠고 나는 그걸 가질 수 없다는 일종의 박탈감을 느꼈다.



쓰다 보니 너무 많아서 이번 편에 다 쓰지 못할 것 같다. 나머지는 다음 편에 연재해 보겠다. 우선 부정적인 스토리를 모두 써 본 후에 그걸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극복할 수 있을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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