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되어도 무엇인가 오래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이 여전히 힘듭니다.
2주가 지나고 다시 병원을 방문했었다. 나는 그간 선생님이 권한 콘서타 단약을 시도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결국 콘서타의 복용을 멈추기엔 어렵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의 얼굴에서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저는 아토목세틴을 그만 드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점점 복용 양을 줄이고 있었거든요.
선생님께 콘서타를 그만 드시라고 하지 않으셨냐고 하려다가, 숨이 멎어버렸다. 당연히 내가 틀렸을 텐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당황스러웠다. 멋쩍은 얼굴로 아! 그러셨군요. 그러셨군요. 그러셨군요.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왜 반대로 기억했을까.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까. 그 뒤부터는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도망치듯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이것도 필시 ADHD의 특징일 것이다. 부끄러웠다. 나 자신을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차에서 기다리던 아내는 내가 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콘서타를 계속 복용하기로 했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토목세틴을 먹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하자 아내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지난 병원 방문 시 진료실에서 들었던 것을 몇 초 후 완전히 반대로 아내에게 전달하고 2주 내내 걱정했던 내가 아마도 조금은 웃겨 보였을 것이다. 모든 일에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완벽을 기하는 내가 이토록 와장창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함께 이렇게 쉽게 잘못을 인정해 버리다니 하며 속으로 허허 웃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웃기다.
이번 병원 방문에서도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준비해 간 지난 서류를 보고서야 요청할 수 있었다. 외래진료비계산서, 진료세부산정내역서. 왜 이렇게 외우는 것이 어려울까. 그러고 보면 나는 암기를 정말 못한다. 학창 시절 내내 암기 과목이 힘들었다. 지금도 내가 하는 모든 업무에서 외워야 하는 것들은 특정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메모하고 필요할 때마다 찾고 있다. 솔직하게 기록하자면, 아직도 아내 생일과 아이 생일을 외우지 못한다. 내 아이폰의 캘린더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외울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변명하지만 이 정도면 심각한 것이 맞다. 아내 핸드폰 번호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외울 수 있었고, 자발적으로 외운 것이 아니라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물건을 산 뒤 포인트를 적립하고 그 전화번호에 저장된 주소로 배달을 시키려면 무조건 외워야 했다. 이 전화번호를 모르면 집 주소를 얘기해야 하는데 주소도 외우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뭐라고 했어. 나오자마자 제일 처음에는 아토목세틴을 먹지 말라고 했었다니까?
그다음에 내가 다시 물어보니까 그게 아니라고 했었지?
그 이후 제주도로 이사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 집의 주소도 아직 외우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폰의 메모앱에 저장되어 있고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운전면허증에 나와있으니까라고 또 스스로 변명한다. 다들 자신의 집 주소를 외우고 있나? 아닌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이것을 아내에게 물어보면 또 날 쳐다보겠지. 하지만 아내는 어딘가에 로그인할 때마다 본인이 설정한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몰라서 세네 번은 입력해야 겨우 성공하는 사람이다. 나는 비밀번호를 외울 필요 없도록 특정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관리한다. 아. 내가 처참해 보이지 않으려는 궁색한 고백이다.
어쨌든, 아토목세틴을 복용하지 않고, 콘서타와 아빌리파이를 오전에 복용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최근에 잠이 잘 오지 않지만 자나팜으로 극복하고 있다. 아주 가끔 쓸모없는 생각의 촉수들이 날 덮치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잠시 시간을 들여 물리친다. 오늘이 첫 번째 날이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큰 문제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