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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deep seated person May 14. 2024

아토목신과 나 – 02

마흔 살에 처음으로 ADHD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의 화가 시작되는 것은 내 머릿속에서 정해진 기준과 맞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다. 그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이며 엄격하다. 그 화는 머릿속에서 부추기는 목소리와 합쳐 짧은 시간 안에 점점 불어난다. 일반 사람들처럼 왜 화가 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은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어디쯤에서 얼기설기 끼워 맞혀진 허수아비를 때리며 화를 부풀려서 상대방의 목소리나 논리 따위엔 관심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곤 그 화가 폭발해 마음에도 없던 큰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큰 소리를 지를 때쯤 내 마음엔 벌써 안된다고 절대 안 된다고 소리치는 뭔가가 있다. 하지만 이미 내 몸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온몸이 화로 채워진 상태라 마음의 소리 따위는 묻혀버리고 만다. 그렇게 화를 낸 뒤 가족의 얼굴을 보는 기분은 참담하다. 그간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아토목신은 향정신성의약품은 아니지만 이 약을 먹었을 때 증상이 조금이라도 개선된다면 ADHD가 확실할 것 같아요


명상, 마음 챙기기, 약 4년 이상의 상담심리 세션 같은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마음속이 고요해야 하는 명상은 머리가 터질 정도로 넘쳐나는 생각이 꼬리를 물어 마음까지 힘들었고, 마음 챙기기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도 않았다. 운이 좋게 내 말을 성심성의껏 들어주시는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났지만, 상담이 내 증상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맞다고 대답하기엔 어렵다.


일반 사람들은 다 이렇게 생각 없이 사나요?


굉장히 소량을 처방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버티던, 날 괴롭히던 무엇인가가 조금은 사라진 느낌이었다. 2주 뒤 다시 방문한 병원에서 일반 사람은 다 이렇게 사는지 물어보니 선생님은 ADHD가 맞다고 얘기해 주었다. 환자들 대부분이 약을 처방받고 복용하고 나면 처음으로 하는 말이란다. 웃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나 보다.



굉장히 오래전에 친구가 자낙스를 먹어보라며 건네줘 당시에는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받아먹은 기억이 났다. 그날은 하루종일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냈었다. 그 기억이 나서 나는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전 아직도 제가 갑자기 가족들에게 벌컥 화를 내면 어쩌나 무서운데 신경 안정제를 처방해 주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은 흔쾌히 처방해 주셨다. 분홍색 알약이 들어있는 약 봉투에는 필요시라는 글자가 있었다. 아이와 접점이 잦은 저녁시간에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가끔씩 찾아오는 과도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다. 다시 2주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그 기간 동안 굉장히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었다. 늘 조급하고, 생각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줄어든 공간만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업무가 끝나고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시간 뒤에 아이가 자러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열심히 보던 OTT 서비스들도 재미가 없었다. 이전에 열심히 했던 게임을 다시 해봤지만 지겨울 뿐이었다.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었다.


불안은 텅 비어버린 내 머리를 조금씩 잠식했고, 난 그때마다 약을 먹고 잠을 청하거나 볼 것도 없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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