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어 가는 시간 이었다.
세상에 아이와 나 둘 뿐이었다.
친정 식구들은 그렇게 분리되어 살면서 가끔 만나 나를 위로하고 도움을 주려 했지만 몸이 멀어지면서
결국 나와 아이는 거인나라 소인으로 조용히 살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이 두렵고 무서웠다.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로 나의 생명이 부정을 당했다는 상처는 불쑥불쑥 나를 찾아와 힘들게 했다.
이혼 후 늘 바쁘게 살던 내가 육아를 오롯이 맡아야 하니 일을 하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한편으로 우울한 나의 감정은 나를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집안에 붙잡아 놓는 듯했다.
영화데이트 후 계속 만나지 않았던 그 남자를 그렇게 스스로 만나지 않겠다 했지만 지속적으로 연락 을 해왔고 그를 만나 이야기한다는 것이 결국 한 번의 만남이 가끔 그를 만나 커피를 마시거나 그가 만들어준 반찬이나 음식을 받아 아이와 함께 먹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그 남자는 나와 아이에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며 자주 아이가 엄마친구 그 삼촌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그 남자와 결혼을 원치 않았다. 그 남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안주하는 삶을 또다시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당시 너무나 두렵고 힘든 마음이 그의 사랑을 외면하며 받기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나를 만들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집에 살던 사촌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 언니는 00 대학 행정실에서 근무를 할 때인데....
편입을 권했다. 그 대학은 대학교 근무하는 직원들 복지를 위해 별관에 어린이집이 있었다.
뭐든 그때 당시 나는 하고 싶었다. 해서 편입을 준비했고 합격하면서 학교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공부해 보고 싶던 사회복지과였다.
그렇게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지내던 어느 날 나는 숨이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죽을 것 같았다. 그럴수록 숨을 쉬려고 하니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100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숨이 차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아… 나는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게 되는구나 싶었다.
병원에 갔다. 심장 폐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정신과를 가보라고 했다.
아무래도 공황장애인 거 같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결국 마음의 병이 나의 육신까지 병들게 만들고 나를 더욱 집안에 꽁꽁 가두어 버렸다.
가슴을 부여잡고 대학에 갔다. 언니의 도움으로 학교 담당 교수님?? 학장님?? 만났다. 입학을 하고 바로 휴학이 안되지만 나의 사정을 들으시고 휴학 처리를 해주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눈물을 참으려 하니 가슴이 쪼여오듯 더욱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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