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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Aug 17. 2024

#05, 검사의 나날들

산사람은 살아간다. 어머니의 사랑

검사(檢査)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병명을 정확히 알 수 없었으니 백혈병으로 바로 이야기하였고

약을 처방할 약이 달리 없으니 해열제와 수혈, 혈액과 관련된 약들만 투약했다

계속 혈소판이 파괴되니 그 또한 문제였을 것이다.

혈액응고제는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 몸의 구석구석 살피고 매일 혈액검사를 하며 조사와 검토를 하였을 것이다.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며, 어떻게 하든 정확히 병명을 찾아야 했다.

매일 한 발자국씩 내딛고 안전을 확인하며 나간다.

아마도 군인들이 지뢰밭 위를 걸어 나가는 것이 이러할 것이다. 

비유가 그렇다. 그만큼 살얼음 위에서 걷는듯한 것이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 듯이 가늘고 서늘하게 내 눈앞에서 기다렸다. 때를 맞추어,

병원비청구는 하루도 연기되지 않고 1주일마다 2주일마다, 검사 때마다 청구되었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흡입하 듯 나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나는 먼지도 아니건만 그 흡입하는 기세가 사나웠다. 쓰나미가 지나간 자리는 흔적 없이

폐허만 남는다더니 우리의 삶이 그랬다,

폐허가 된 것 같았다. 친정어머니가 주신 돈도 바닥이 보여간다.


아이는 병원비와 상관없이 검사는 계속되었고 실험적인 약도 계속 투약되었다.

친정어머니 말씀이 그 병은 돈 잡아먹는 귀신인가 보다, 고 하였다.

정말 그랬다. 돈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돈 빨아들이는 귀신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생활비 걱정을 하면, 친정어머니는 내게 걱정 말라고 말씀하셨다.

'산사람은 어째도 산다. 아이나 살려라'

살려야 하지 않을까, 불임수술까지 당차고 용감하게 하였는데,


맞았다. 산사람은 산다.

그런 어려움 중에서도 어머니는 특유의 솜씨로 살림을 이어나갔다.

쌈지를 별도로 차셨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엄마는 살림을 꾸려나갔고 나는 융자를 받고 빌리고 하며 병원비를 납부하였다.

부부가 공무원이었기에 가능하였는지 모른다. 득을 본 것이리라.


모든 선진국의 제도들을 차례로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진국만큼은 못해도 앞으로 나아갈

초석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의 모든 복지제도가 그때 기초가 시작되었다.

의료보험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제 보험의 적용이 미미하였다. 특히 중병, 희귀병, 암, 

만성신장병 등은 대부분이 비보험이었다. 보험적용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옳다. 큰 병나면 집 말아먹는다. 그래도 안된다. 돈 잡아먹는 귀신.

그래서 성실히 사시는 시아버님께서 아이를 포기하라고 하였던 것 같았다.


월급은 일찌감치 들어오자마자 병원으로 들어갔다. 원무과로, 돈 잡아먹는 귀신처럼 빨려나갔다.

아이는 계속 검사를 해야 하고 수입약은 계속 사야 하고 이제는 검사지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보스턴백 안에 차곡차곡 급여봉투와 함께 들어갔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혈액을 거부한 것이 다행이었다.

계속해서 나의 피를 수혈하면 된다. 이 소문도 병원에 났단다.

저러다 아이엄마부터 먼저 죽겠다, 고 

어쨌든 혈액구입비는 내피와 퉁쳤다. 세이브가 된 것이다.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가면, 친정어머니가 유리잔에 빨간 물을 주셨다

'마셔라 마셔야 니도 살고 아이도 산다'라고 하셨다.

마시니 술도 아닌 것이 맛있었다.


어머니께서 포도를 설탕에 담가 놓으셨다. 딱 1주일 정확히 일주일 되었을 때 건져내셨단다

술이 아니었다. 삼투작용에 의해 그때까지가 포도의 모든 영양성분 진액이 나온 것이란다.

하루라도 넘기면 발효가 시작되므로 7일 만에 건져서 주시는 포도진액이었다.

나의 면역괴 혈액조성에 도움이 되도록 하셨다.

그래서 아이도 살리고 너도 산다는 말씀이셨다.

지금 나는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니 눈물 짜낼일도 없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오려고 할까.

가감 없이 기억이 나고 몸이 기억하고 뇌의 기억장치에 기록된 것을 끄집어낸다.


겨울에는 피조개를 직접 수산시장에 가셔서 사 오셨다.

생으로는 못 먹으니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어머니 특유의 요리방식인 옅은 간장물에

장조림처럼 담가두셨다가 주셨다. 처음에 생으로 먹으라 하였다.

나는 비위가 약해서 그러지 못한다. 식성도 까다롭고 별났다.

평생을 한의원에서 약 지어먹고 공부할 때나 피곤하면 링거를 맞던 내가 아무것도 나를 위해서

할 수 없으니 어머니는 안타까우셨던 것이다. 그래서 해 줄 수 있는 것을 해주셨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는 땅 팔아 돈 주시고 나를 살리고 아이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어머니의 방식대로 하셨다. 이제 곧 돈은 동이 난다.

어머니의 말대로 지금까지는 산사람은 산다로 살았다.


남편은, 남편은 아이가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병에 걸렸다고 남 부끄럽다고 시골집으로

들어가자고 들어가서 살자고 하였다. 남편은 시골집 본가로 들어가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그곳에 가면 우리 아이들은 미래가 없다. 일 못하는 나도 미래가 없다 평생 책 보고 편히 살았는데,

본인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누군가 영향력을 부렸는지 알 수없지만,  

대충 집 팔아 아이에게 다 집어넣으려고 그러냐고 하신 분들의 영향이리라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럴수록 나의 의지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와 나는 그런 사람이다. 돈과 자식의 생명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지언정 자식의 생명이 더 소중하였다.

#친정어머니 #무서운 병원비 #사랑과 헌신 #회피 #혈액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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