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 살 배우가 세 시간짜리 연극 무대에 섰다.
그 나이에, 그 긴 대사를, 그 무게를 버텨내며 무대에 선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그건 단지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연기하는 일 것이다.『세일즈맨의 죽음』을 보던 날, 나는 무대 위 윌리 로만에게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았다.
평생 가족을 위해 뛰고, 버티고, 웃어야 했던 그 시절의 부모님들이 모두 그러했듯, 그는 세일즈맨이었다.
윌리 로만은 세상으로부터 해고당했지만, 인생으로부터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장면은 비극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일을 끝까지 사랑한 고백의 장면이자 그의 마지막 세일즈였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의 마당도 하나의 무대였음을.
여름 볕 아래 오이지를 닦던 어머니는 큰대문집의 주연 배우였고,
부엌에서 쟁반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던 며느리는 묵묵한 조연이었다.
그리고 혁진은, 어머니의 대사를 이어받아 삶이란 희곡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는 열정의 배우였다.
그 누구도 대본을 받은 적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들 자기 장면을 완주했다. 실수도 많았고, 대사를 잊은 날도 있었다.
무대 위에서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진짜 배우였다.
살다 보니 안다. 행복은 화려한 박수 속에 있지 않다.
그저 하루를 자기 자리에 서서, 진심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연기다.
이제 우리의 무대도 서서히 조명이 바뀌고 있다.
젊은 날의 열정은 누그러졌지만, 대신 빛은 더 따뜻해졌다.
오이지가 익어가듯, 우리도 그렇게 깊어졌다.
언젠가 커튼콜이 오면,
어머니가 마당 한켠에서 손을 닦으며 미소 지으실 것이다.
“그래, 다들 잘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배우였음을,
그리고 모든 집의 이야기가 이미 한 편의 연극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플레이런너 큰대문집 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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