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의 명성에 금테를 두르다
왜 로물루스일까 하고 여러 번 생각했다. 로마 건국자의 이름을 그냥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르네상스 정거장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물루스 모듈과 레무스 모듈. 이 정거장은 웨이랜드 유타니 회사가 케인의 자식(1편에서 리플리가 우주 밖으로 날려버린 제노모프)을 수거해 그로부터 Z-01이라는, 인간을 완벽한 유기체로 진화시키는 물질을 개발한 곳이다.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 로마라는 왕국을 건설했듯이 웨이랜드 유타니도 에이리언의 유전자를 추출해 인간을 보다 강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늑대의 젖이 곧 에이리언의 유전자다. 그 염원을 상징하듯이 정거장의 문에 늑대 젖을 먹는 두 아이의 모습이 양각돼 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강해지지 않는다. 케이가 낳은 신종 에이리언(오프스프링)이 오히려 인간의 젖을 빤다. 인간이 빨아야 하는데 반대로 인간이 빨리는 것이다. 이 끔찍한 결과는 에이리언 시리즈를 관통하고 있는, 인간의 과학 기술로 신의 창조에 도전하면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주제와 연관된다. <프로메테우스>에서도 웨이랜드 회장이 엔지니어에게 영생을 요구했다가 한 방에 죽지 않았던가.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의 '커버넌트'가 있는데 그걸 파기하면 에이리언이라는 필사의 운명을 맞는 것이다. 그러니까 에이리언은 인간의 도약이 아니라 신의 징벌이고 '로물루스' 제목 또한 그런 경고의 뜻이다.
두 편의 프리퀄이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인간의 기원과 에이리언의 정체를 탐구했던 <프로메테우스>는 스페이스 자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에이리언의 세계관을 창조(엔지니어) 쪽으로 확장했지만 완전히 속 시원한 해답은 주지 않은 채 다른 떡밥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엔지니어는 인간을 왜 창조했을까? 그리고 에이리언과 관련 있는 검은 물질로 왜 자신들이 만든 인간을 몰살하려고 한 걸까? 엔지니어 또한 누군가의 피조물이 아닐까? 그럼 그 조물주는 어디에 있을까? <커버넌트>는 이에 대한 답을 최소 두 개는 했어야 했다. 근데 영화 시작에 이미 쇼 박사가 죽어 있고 데이빗은 엔지니어의 행성에 검은 물질을 투하해 그곳 주인이 된 상태다. 물론 나는 그곳이 엔지니어의 진짜 행성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쇼 박사와 함께 창조자를 만나 궁금증을 풀려고 했던 데이빗이 왜 '파괴' 쪽으로 선회했는지,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설이나 장면이 나와야 하지 않았나 싶다. 인간의 명령을 듣는 합성인간으로 평생 살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파괴' 후의 '창조'를 택했다? 그러니까 결과야 어쨌든 그 논리적 과정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커버넌트>는 용감하게(?) 그 부분을 생략하고 쇼 박사의 시체와 네오모프의 등장만 던져주었다. 그리고 뻔한 각본으로 인한 결말답게 서로 생김새가 같은 데이빗이 월터로 위장하고 노아의 방주를 상징하는 커버넌트호를 접수한다.
<어웨이크닝>의 불발로 기대치가 한없이 낮아진 에이리언 시리즈. 1편과 2편 사이의 이야기로 오랜만에 개봉된다고 들었을 때 에이리언 팬으로서 엄청 기대를 가졌다. 데이빗의 서사를 이어가지 않아도 좋으니 1편과 같은 정통 스페이스 호러를 보여주기를 바랐다. 솔직히 2편부터는 감독들의 각기 다른 성향 때문에 1편 특유의 '우주 + 고립 + 미지'의 공포 느낌이 덜한 게 사실이다. 아예 2편에서 에이리언이 떼로 등장하고 해병대가 그것들을 소탕하니 1편 이후 바로 장르가 액션으로 틀어진 것은 놀라우면서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번 <로물루스>는 1편의 계보를 이을 만하다. 이는 스페이스 호러를 기다려온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거란 뜻이다. 젊은 남녀로 이뤄진 등장인물 무리가 버려진 우주선에 잠입하고, 역시 그곳에 페이스허거가 있어 얼굴을 덮치고(페이스허거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Aliens'를 떠올리게 한다. 2편의 오마주라는 뜻.), 체스트버스터가 가슴을 뚫고 나오고, 성체 제노모프가 등장인물을 한 명씩 죽이고, 여전사 주인공이 그 괴물에 맞서 싸운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기본 틀에 전작들의 설정과 장면이 차용돼 있지만 기본 골자는 1편의 흐름을 따른다. 펄스 소총을 들고 에이리언을 쏴 죽여도, 제노모프가 주인공 레인에게 얼굴을 들이대도, 무중력 상태에서 수중처럼 둥둥 떠다녀도 결국 '우주 + 고립 + 미지'라는 1편의 공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1편으로의 회귀에 많은 팬들이 반가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을, 그 원시적 우주 공포를 기다려 왔기 때문이다.
많은 오마주가 있어도 내러티브에 어긋난 부분이 없다. 상업 영화는 재미를 위해 개연성을 포기할 때가 가끔 있는데 이 <로물루스>는 각본에 그런 구멍이 없다. 등장인물의 행동에 다 납득이 가고 사건들이 순조롭게 이어진다. <아바타: 물의 길>을 보면 등장인물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의아한 장면이 있다. 결말에 좀 유치한 이야기 진행도 있고. 근데 <로물루스>는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처럼 노땅은 아닌지라 이야기가 뻔하고 촌스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기존 에이리언 시리즈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요즘스러운 감각을 놓치지 않은 게 이번 '에이리언'의 주목할 점이다. 요즘 연출로 다시 태어난 에이리언 1.5편이라고 할까.
레인에 대한 호불호가 있다. 케일리 스패니. 나는 이번 영화에서 그녀를 처음 봤다. 보는 내내 너무 맘에 들어서 감독의 안목에 감탄했다. 그러니까 나는 '호' 쪽인 것이다. 불호 쪽인 사람들은 그녀가 리플리만큼 매력적이지 않다고 한다. 키가 크고 중성적이어야 에이리언과 맞서 싸우는 여전사 느낌이 나는데 레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키가 작고 아이 같아서 더 좋았다. 그러니까 리플리와 180도 다른 캐릭터라서 영화가 더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바보라서 일부러 키 작고 아이 같은 배우를 섭외한 게 아닐 것이다. <커버넌트>의 캐서린 워터스턴을 기억하는가. 그녀는 큰 키와 숏컷으로 제2의 리플리가 되고자 했으나 에이리언 시리즈의 가장 존재감 없는 주인공으로 남았다. 그렇게 어설프게 리플리를 따라 하면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번 <로물루스>에서도 숏컷의 장신 여배우가 나왔다면 '또 리플리의 답습이야?' 하는 생각과 함께 영화에서 쉰내가 느껴졌을 것이다. 레인은 키 작고 아이 같지만 대담하고 똘똘했기에 리플리 못지않은 매력을 뽐냈고 영화에 새로움을 더했다. 사견인데, 아담하고 영특한 이 이미지는 <프로메테우스>의 쇼 박사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에이리언 시리즈의 법칙 중 하나가 막판에 신종 에이리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1편의 케인의 자식(후반까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므로 마지막에 우주선 밖으로 사출되는 신에서 관객에게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편의 퀸, 3편의 퀸 체스트버스터, 4편의 뉴본, <프로메테우스>의 트릴로바이트(성체)와 디컨, <커버넌트>의 월터로 위장한 데이빗(에이리언은 아니지만 마지막 반전을 주는 존재라는 뜻에서). 그리고 이것들은, 이제 다 끝난 줄 알아서 관객이 방심한 사이 깜짝 나타나 지금이 진짜 마지막임을 알린다는 것이다. 이번 <로물루스>에서도 막판에 신종 에이리언이 나온다. 근데 이놈은 기존 것들과 다르게 상상을 초월한다. 생김새도 가장 무섭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걸 보면 공포를 넘어서는 괴상망측한 감정이 든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괴물을 보면서 그런 해괴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처음이다. 오프스프링이라 불리는 그것은 역대 에이리언 시리즈 중 가히 최고의 피조물이라 불릴 만하다. <로물루스>에 좋은 점수를 주는 이유도 그 존재 때문인 점이 크다. 마지막에 레인이 그것과 대결하는 신은 에이리언 모든 시리즈의 공포 총합을 능가한다. 이 영화는 오프스프링, 그놈 하나 때문이라도 지금 극장에 가서 꼭 봐야 한다. 스포일러 당해서 보면 재미없으니까 말이다.
재밌는 사실 두 개. 고치에서 나온 제노모프를 피해 케이가 열쇠로 문을 열고 발이 걸려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 후 비계의 통로를 기어가는 모습이 알에서 나와 성장해 화물칸에서 선내로 들어온 오프스프링의 모습, 즉 앤디와 케이가 그것을 처음 목격했을 때 그것이 통로에서 기어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너무 닮았다. 모전자전. 그리고 재밌는 사실 중 나머지 하나는, 유튜브 댓글로 본 건데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쌍둥이인 것처럼 오프스프링도 한 놈이 더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알에서 두 놈이 나온 건데 레인이 한 놈만 물리친 뒤 다 끝난 줄 알고 동면에 들었다는 것이다.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었고 오프스프링이 케이의 젖을 먹었으니(장면으로 나오지 않지만 유추가 가능하다.) 레무스에 해당하는 쌍둥이 하나가 더 있다는 게 영화적 논리로 충분히 가능하다. 놀라운 건 2편에서 퀸을 제거하고 우주선이 무사해진 줄 알았는데 퀸이 이미 낳아 놓은 알에서 페이스허거가 나와 동면 중인 리플리를 덮치고 선내의 화재를 일으켜 3편 처음에 우주선이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다는 것이다. <로물루스>가 전작의 오마주에 굉장히 충실했다는 점에서, 레인이 동면에 들어간 코벨란 호에도 오프스프링 한 마리가 남아 있어 레인을 습격하고 우주선을 이바가로 가지 못하게 하진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로물루스> 후속작이 나온다는 소식이 있던데 그 다음 영화에서 코벨란 호가 이바가가 아닌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다면,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