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Jun 07. 2024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갑자기 생각난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소설이 있다.

일본의 마쓰이에 마사시라는 작가가 쓴 첫 장편 소설이다. 1958년생 작가가 2012년에 소설을 냈으니, 대학 때 짧은 단편을 썼다고는 하지만, 54세에 늦은 데뷔를 한 셈이다.


며칠 째 여름처럼 더운 날씨가 계속 되고, 휴일 다음에 온 금요일이라고 휴가를 낸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사람들과 차들이 많이 줄어든 여름 한낮같은 길거리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이 소설이 생각났다.


여름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일찍 일어난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노건축가와 그의 건축사무소에 취업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도쿄 시내의 건축 사무소, 여름철에만 가 있는 시골의 사무실같은 별장에서 벌어지는 건축과 일상 생활 이야기가 멋지고 세련된 문장으로 써 있어 마치 영화를 보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건축을 하고 싶어해 건축학도가 된 큰 아이가 몇년 전 군대를 가게 되었다. 군대 가는 아이에게 줄게 없나 이것저것 찾다가 건축과 관련된 소설이 있길래 내가 먼저 읽게 된 것이 이 소설을 만나게 된 계기였다. 뜬금없었지만, 서울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듯 책을 만나게 되는 계기도 그럴 것이다.


소설의 감각적이면서 멋진 문장들, 술술 읽히면서도 가슴과 머릿속으로 뭔가 차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을 보며 작가의 솜씨가 부러웠다. 시골 별장의 신선한 새벽 공기와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로 시작하는 건축사무소의 아침과 책 속에 등장하는 아스플룬드라는 스웨덴 건축가의 시립 도서관과 공동 묘지 눈 앞에 보이는 것같아 마치 내가 책 속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앞에 쓴 것처럼 소설속에는 스웨덴의 에릭 군나르 아스플룬드라는 건축 거장이 설계한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공동 묘지 등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같은 사무실에 있던, 열심히 책을 읽던 직원에게 이 책을 선물했는데, 일주일 후에 '이사님, 저 스웨덴 가는 비행기표 끊었어요'라는 말을 해 깜짝 놀랐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아이가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 책을 샀지만, 내가 더 열심히 읽고 '나도 아직 늦지 않았어' 하는 열의를 불태웠으니 책은 아이보다는 나에게 더 큰 영향을 준 셈이다. 건축을 하는 아이는 군대에서 책을 다 읽지도 않고, 제대할 때는 부대에 두고 왔다고 한다.

책 제목,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처럼,

책은 오래도록 아이가 복무하던 부대, 그곳에 남은 셈이 되었다



제가 쓰고 있는 브런치북과 매거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실행하며 고쳐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