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식당 오픈합니다
그날 밤, 그녀는 식당에 온 여러 손님들의 인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인상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분위기 하나하나를 기억했다. 아기자기한 인형이 달려있는 가방을 멘 단발머리 아가씨, 카리스마 있는 옆건물 병원 간호사분들, 담배 피우다 들어온 젊은 총각. 사람 만나는 게 익숙지 않았던 그녀가 따뜻한 밥으로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노트북을 열었다. 온 메일이 있나, 약간의 기대를 하고. 다섯 명이 지원했다. 울고 싶었다. 너무 좋아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안녕하세요, 이제 서른다섯이 된 김민주입니다. 연락처 대신 메일을 마지막에 적어놓겠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러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2년의 연애를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무려 24살 때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중략) 여기까지 제 사연입니다. 부디 제가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길 바라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메일:minj0j@smile.com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들의 아픔을 내가 쉽게 읽어내려도 되는 건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이 모든 게 걱정이 되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숨은 카펫 바닥으로 푹 꺼졌다. 생각이 생각을 끌고 다시 도망치던 시절로 돌아갔다. 숨고 싶어졌다. 무서웠다.
새벽에도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손에 쥐어진 펜은 일정한 크기로 겹쳐진 원을 계속 그리고 있었고 축축한 손은 펜을 놓쳐 갈 곳을 잃었다가 다시 펜을 잡았다가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테이블 위, 아직 마르지 않은 원 위에서 그녀는 잠들었다.
아침이 왔다. 테이블 위에서 꺾인 채 잠든 그녀의 손목을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친정엄마에게서 그렇게 배웠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청소부터 하라고. 테이블 의자를 모두 치우고 바닥부터 쓸었다. 매일 하는 청소지만 오늘은 먼지가 유난히 눈에 밟혔다. 테이블 모서리, 바닥 가장자리, 의자 밑부분. 모든 게 걸리적거렸다. 닦고 닦고 또 닦았다. 열어둔 창문 틈으로 뜨거운 바람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그녀는 땀에 흠뻑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대충 닦았다. 그리고 창문을 다 닫고 에어컨을 틀었다. 21도로 맞췄다.
딱 7시 30분. 오픈 전 조금만 숨을 고르려고 앉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 창을 켰다. 떨리는 손으로 메일함에 들어갔고... 역시나,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래 그렇지 뭐. 그녀는 승엽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식당에서 북콘서트를 해달라는 제의를 보낸 지 하룻밤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하늘이 무너질 듯 비가 내리는 화요일이었다.
“똑똑.”
문이 열려있어서 들릴 리가 없는 노크소리에 당황한 그녀의 손은 머리를 묶다가 세게 잡아당겨 고무줄이 끊어졌다.
“아야.”
고무줄은 그녀의 손에 튕겨 바닥에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한승엽입니다.”
“어어.. 어...”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메일 주신 거 봤습니다. 식사도 하고 상의도 할 겸 왔습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얼떨결에 받은 주문서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원두를 갈고 작은 유리컵에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후 7~80도의 물을 넣어 아메리카노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녀는 승엽 앞에 앉았다.
“메일 봤습니다. 정확히 무슨 이벤트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오게 되었어요.”
아차차, 무슨 이벤트를 하는지를 안 알려줬구나.
“먼저, 참여자의 사연과 관련된 책을 선정할 거예요. 작가님을 모시고 책에 관해 얘기를 한 다음, 그 책과 어울리는 요리를 만들어 같이 먹는 이벤트예요. 책에서 가장 좋았던 챕터를 같이 살펴보고, 그 챕터 속의 레시피로 요리하는 걸로요. 메뉴는 참여자가 정할 수도 있고요.”
그는 이벤트 종이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긴장감 때문일까,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은 그녀를 더 뜨겁게 했다. 콩닥콩닥.
“여기서 듣고 대답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들어도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저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진득한 소설 한 권 써본 적이 없습니다. 동화책 몇 권 썼을 뿐인걸요. 제 동화책을 문학이라고 표현하기도 저로서는 부담스럽고 어렵습니다. 제 책으로 사람들이 요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동화가 사람의 마음을 치료한다는 것도요.”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당황한 그녀는 티 내지 않으려고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셨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럼 이건 어떠하실까요? ‘작가와 함께하는 요리 치료, 문학을 요리하다.’ 제가 매주 사장님께 오는 사연을 받아 책을 정하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단편소설이나 에세이로요. 책의 한 구절을 가져올 수도 있고요. 저는 문학을 담당하고 사장님은 요리를 담당하는 것이죠.”
그러고 커피잔을 잡고 있는 두 손이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이 그녀의 눈으로 올라갔다.
“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장님의 이벤트 의도가 궁금합니다. 제게 요리는 그저 생존의 수단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동생의 밥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로 요리가 싫었고 지금은 간단한 요리밖에 하지 못합니다. 요리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게 가능할까요?”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런 질문을 언젠가는 받으리라고. 누군가에게는 요리라는 수단이 자신을 알리는 것이고 다른 이는 지겹지만 생존을 위해 반복해야 하는 것일 수 있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한 줄이, 다른 이에게는 타인에 의해 읽어야만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기 전까지는요. 배우리라고 다짐하기 전까지는요. 어릴 때 배운 이탈리아어로 간신히 살아가며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울 때 제 옛 기억까지 치유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가게를 열고 셋째 날에 지폐를 꼬깃꼬깃 들고 앉아서 김치볶음밥을 시킨 손님이었어요. 학생인지 가방에 책이 가득했고 머리는 안 감은 지 꽤 되는 눈치였어요. 설거지를 하고 자리에 와보니 손님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5천 원 지폐 한 장과 쪽지 하나가 남겨있었어요. 제 생명 살려주셔서 고맙다는 쪽지와 함께요.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졌다고요. 마음이 내려앉았습니다. 내가 사람을 살렸다는 것보다 요리에 이런 힘이 있다는 사실이 저를 더 들뜨게 했습니다. 이번 이벤트도 그래서 준비해 봤습니다.”
그녀는 커피잔에서 손을 떼고 무릎 위에 얹었다.
“요리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파를 썰고 기름에 볶고 밥과 김치를 넣어 볶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손님에게 음식을 갖다 드릴 때의 미소와 발걸음, 목소리 톤과 손짓 하나하나가 중요하죠. 받는 입장에서의 기분을 좌우하니까요. 손님의 근본적인 갈등은 해결해 줄 수 없지만 따뜻한 밥 한 끼가 차갑게 언 마음을 녹여주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승엽은 미소식당의 이벤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다른 손님이 오고 나서야 대화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