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식당 오픈합니다
“어서 오세요! 몇 명이세요?”
꼬마 손님 다섯 명이 우르르 들어와 앉았다.
“일곱 명이요. 어른 두 명 더 올 거예요.”
그리고 전화통화하며 들어오는 여자 한 명과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손을 잡고 들어왔다. 여자는 남자에게 애들 먹을 거 시켜놓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모님, 여기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김치볶음밥 세 개, 크림치즈 크로와상 단품으로 한 개 주세요. 아 참, 아메리카노는 한잔은 따뜻하게 한잔은 시원하게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달그락.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창가자리 앉을게요.”
달그락.
“어서 오세요!”
“여기 주문이요!”
“네 잠시만요, 토마토 스튜 하나, 브런치 세트 하나인데 아메리카노 말고 오렌지 주스 맞죠? 금방 갖다 드릴게요.”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여기 앉으세요!”
점심시간의 시작이었다. 그 시각 승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토요일에 뵙죠.”
“네, 작가님. 그때 봬요. 감사합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가는 사이에 어떤 여자가 가게를 기웃거리며 지나갔다. 그녀는 여자를 봤지만 정신없는 시간이라 아는 체하지 못했다.
따르릉따르릉.
“네, 감사합니다. 미소식당입니다!”
그녀는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당연히 가게 전화라고 생각했다. 울리지도 않은 가게의 전화기를 들었다. 아, 내 핸드폰이구나. 가게에서는 전원을 꺼놓기 때문에 올 수가 없는 전화였다. 그렇다, 그녀는 아침에 승엽이 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폰을 꺼놓지 못했다.
폰을 꺼놓지 못했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기를 주저한 건 아니었다. 온 전화의 상대가 그녀의 시어머니였던 것이다. 전화를 받아야 할까. 일 중이라는 핑계로 안 받을 수는 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받고 싶지도 않았다. 받아도 드릴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밖에 없었다.
“네, 어머니.”
그럼에도 받았다. 이제는 더 피하고 싶지 않아서.
“얘야, 마음이가 아프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너를 찾아. 꿈에 네가 나오는 모양이야.”
전화기 안으로 딸아이의 흐느끼는 신음이 들린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게 안은 여전히 잼 냄새로 가득했고 그녀의 두 발은 땅에 단단히 붙이고 서 있었지만, 어딘가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할머니, 엄마야? 엄마....”
듣고야 말았다. 13년 만에 들은 딸의 목소리가 이럴 줄 그녀는 기어코 상상하지 못했다. 손에 들려있던 그녀의 행주는 카운터를 한번 부딪히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느렸다. 느리고 어렸다. 48년 동안 산 세월이 허송세월로 느껴졌다.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아이는 수십 번을 혼자 아픔으로 견뎌야 했겠지.
갈 수 없었다. 걸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땅에서 떨어지지 않은 걸음 위에서 그녀는 주저앉았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보통의 엄마라면 뛰어가고도 남았을 거다. 보통의 엄마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그녀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뛰라고, 일단 뛰라고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달그락.
“안녕하세요, 여기가 요리 프로그램 진행하는 곳 맞나요?”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일어섰다.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고 손은 앞치마에 닦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런 곳이 새로 생겼다는 걸 모르고 있었네요. 조명이 너무 이뻐요.”
그녀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메뉴 정하시면 불러주세요!”
손을 깨끗이 씻고 세수를 했다. 지금 감정은 제쳐두고 할 일에 집중을 해야 한다, 괜찮아, 괜찮아. 계속 생각해도 진정되지 않았다. 고요한 바닷속에 그녀 혼자 몸부림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에어컨 바로 앞 테이블에 앉은 여자는 그녀의 마음을 안다는 듯 한참 동안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을 양팔을 싱크대에 짚어 흐느꼈다. 엄마라는 사람의 역할이 이리도 어렵고 힘들었던가, 아니면 내가 해버린 짓들이 날 이렇게 괴롭히는가. 한없이 벅차오르는 마음을 부여잡기는 쉽지 않았다.
“언니, 김치볶음밥에 계란프라이 추가요. 점심시간 지나고 와서 죄송해요. 천천히 해주세요.”
“아니에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개인 사정으로 손님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는걸 너무 잘 아는 그녀는 마음을 다 잡았다. 그녀는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갓 지은 밥을 1인분 떠서 식혀놓고, 대파와 양파를 송송송 썰어 올리브 오일에 중불로 볶았다. 파기름이 자글자글 끓으며 고소한 향을 퍼뜨렸다. 김치도 국물을 짠 후 썰어서 같이 볶았다. 식은 밥과 굴소스를 넣어 간을 맞추면 간단한 김치볶음밥 완성. 노란 계란프라이를 얹어 깨를 뿌렸다.
“맛있게 드세요.”
그녀는 평소보다 더 웃어 보였다.
꼬르륵. 그녀도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내가 밥 먹을 자격이 있나, 그러면서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얼른 만나려면 그녀가 힘이 생겨야 했으니. 삶아놓은 감자를 까기 시작했다.
“아뜨.. 뜨거워라.”
아직 식지 않은 감자는 그녀의 손을 날카롭게 찔렀고 양손으로 겨우 깐 감자를 먹기 시작할 때 여자가 그녀를 불렀다.
“말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저 김민주예요.”
“김민주면... 아, 안녕하세요!”
여자는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보고 알았어요. 요리치료 프로그램이요. 처음에 보고 이런 걸로 어떻게 상처가 치유되냐는 의문이 있었어요. 심리 상담도 맞지 않던 제게 이런 게 의미가 있을까?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생각해 보니 요리가, 그리고 음식이 제게 주는 기쁨이 있더라고요. 책도요. 그래서 신청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울고 있던 그녀는 자신이 남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제 마음을 울렸던 건... 사장님의 메일 답장이었어요. 난 불행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저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하신 말씀, 그건 누구도 제게 해주지 않은 말이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프로그램 전에 온 이유는 도대체 얼마나 따뜻한 사장님인지 궁금했거든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행복한 자격 있는 사장님이잖아요.”
이 감정은 뭘까, 내가 했던 위로를 내가 받는 기분. 내가 흘려보냈던 위로가 돌아와 나를 감싸는 순간, 이름 모를 감정이 나를 두드렸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가슴 한편에서 잊고 지내던 온도가 다시 되살아났다. 볶아진 김치가 내는 고소한 향이 가게 안을 채웠다. 향 속에는 서로를 알고 이해한다는 그녀와 여자의 마음까지 섞인 채로 가게를 맴돌았다. 그 둘의 기류는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