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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타명리 Jul 10. 2024

13.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요?

나는 누구인가를 세상에 묻는 우리들을 위한 메시지


앞서 AI와 인간을 비교하여 살펴보았듯이, 나의 고유한 의식이나 관념을 상징하는 불변의 자아(自我)라는 것은 없습니다. 타고난 기질과 경험(과거)을 바탕으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리스크)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습관적 행동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기질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패턴화 된 상태가 '현재의 나'입니다. 자아는 없고 습관으로 굳어진 성격(경향성)이 있을 뿐이지요.



"변화란 각인된 성격적 성향을 벗어나 가능성의 빗장을 여는 것이다. 성격은 타고난 성품이 후천적 경험과 상호작용하면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우리 자신이다. 때로는 우리 생각에 결코 변할 수 없는 우리 성품의 어떤 특성이라 할지라도 사실은 학습된 성향인 경우가 많다. 즉, 유전적 영향을 받은 뉴런의 패턴에 경험으로 인해 생겨난 뉴런 연결이 결합된 것이다. 신경가소성은 평생 지속되므로 뇌는 자기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 변화는 행동, 느낌, 생각의 변화로 이어진다. 그것이 곧 성격(나 됨의 경험)의 변화다."


'알아차림' P428  발췌, 대니얼 J 시겔


'정해진 운명을 예언하는 주술적 학문'으로 알려진 명리학의 고전들을  살펴보면 정해진 운명을 예언하는 비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사주팔자는 본원(本原)에 해당하는 일간(日干)과  나머지 7 글자 간 생극(生剋) 관계를 통하여 그 사람의 사회적 기질과 경향성을 기호로 표기한 도식표입니다. 고전 명리 서적들은 도식표의 오행 및 십신의 구성별로 맞이하는 환경변화(대운)의 길흉(吉凶) 사례를 수록했을 뿐, 예언적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명리학을 공부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발생할 미래의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설령 인간보다 월등한 학습능력을 보이는 AI가 명리학 이론을 학습한다 해도, 인간에게 발생할 수 있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명리학의 놀라운 점은 사주팔자라는 도식표에 나타나는 유의미한 특징을 분류하여 명주의 기질 및 경향성에 대입해 보면 매우 높은 적중률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명리학은 사주팔자에 나타나는 경향성과 가까운 미래에 맞이할 변동성을 의미하는 운(運)의 상호작용을 검토하여 해당 명주의 미래를 예측합니다. 이기적 생존 의지와 경쟁심을 의미하는 비겁(比刦)이 많은 반면, 교섭 및 협상을 통해 타인과 관계하는 재성(財星)이 취약한 사주를 가진 명주를 분석하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이러한 명주의 경우, 해당 일간의 고유한 기질이 과도하게 발현되어 타인(외부)의 영향력이 명주에게 잘 작용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병화일간의 명주인 경우, 병화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발산하는 기질이 강력하게 작동하여 상대적으로 외부를 잘 인지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외부(타인)보다 나(일간)에게 집중하는 비중이 더 큰 상황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명주에게 비겁(比刦)이 운(運)으로 들어오는 경우, 명주의 타고난 기질을 고수하는 성향이 더욱 강화되어, 타인과의 관계성(재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원리입니다. 이런 시기(흉운)에는 타인과 타협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능력이 저하되어 점진적으로 인맥을 잃어가거나, 사업 실패 혹은 배우자와 불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굳이 역술가가 아니더라도, 외부보다 나에게 더욱 집중하는 성향의 인물이 대인관계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명리학에서는 군겁쟁재(群刧爭財)라 하며, 역술가가 군겁쟁재 명주가 맞이하는 비겁 운에 사업 실패 혹은 배우자와 불화 가능성을 예견하는 원리입니다. 이러한 예측은 매우 높은 확률의 가능성일 뿐이며, 실제 현실로 발생할 수도,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보어의 요점은, 그리고 양자 이론의 요지는 단 하나의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어떤 간단한 현상도 인지된(관찰된) 현상이 될 때까지는 현상이 아니다."

- Weeler, "Low without Law" P184~185


미래 결과치는 현재의 행위가 완료되어야 비로소 확정 지을 수 있습니다.



수학을 활용하여 물질의 시공간에서 운동과 에너지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도 원자적 사건들은 확실성 있게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 '발생하려는 경향'을 나타내 보이는 편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하물며 인간은 수 백조개가 넘는 원자들로 이루어진 각각의 주관성을 갖춘 존재입니다. 사주팔자를 분석하는 명리학은 개인의 경향성을 파악하여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도구이지, 미래를 오차 없이 읽어내는 전지전능한 학문이 아닙니다. 명리학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인간이 모두 각기 다른 경향성을 갖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음입니다.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상처받고, 경계하고, 때로는 동경하는 타인에게 자아를 투영하는 이유는 나와 타인의 궁극적인 차이를 이해하지 못 함에 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그(녀)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각기 다른 선천적 기질을 갖추고 태어나,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합니다. 나와 그(녀)는 동일한 현상을 관찰하지만, 관찰한 정보를 각자 다른 주관적 방식으로 수용하여,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의미화합니다. 나와 그(녀)는 마치 MS와 리눅스처럼 상이한 운영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동일한 사안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존재이므로, 관계의 오해는 인간의 기본값인 셈입니다.


앞서 소개한 영화 'AI'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언어가 아닌 상대방과 손가락을 접촉하는 방식으로 소통합니다. 접촉된 손가락으로 서로의 지식과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므로, 외계인간의 소통에는 오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외계인은 로봇 데이비드에게 인류는 서로에 대한 오해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지만, 필연적으로 서로를 오해했기에 우수한 지능의 외계인들이 창조할 수 없었던 예술, 신, 사랑과 같은 개념을 만들고 이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인간과의 차이는 잦은 오해를 만들고, 서로에 대한 오해는 대상에 대한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게 만듭니다. 마치 첫눈에 반한 상대가 나에게 세상 모든 행복을 안겨 줄 완벽한 대상으로 보이는 마법 같은 순간처럼 말입니다. 인간에게 '상대를 알 수 없기에 생기는 오해'가 없었다면 사랑도 없었을 것입니다.



필자가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그동안 품어왔던 타인을 향한 부정적 감정 대부분이 나의 주관적 해석이 만든 오해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녀)의 경향성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녀)가 했던 행동과 결정의 인과 또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구동방식(사주팔자)을 이해하면 그 사람을 향한 미움과 적개심 대부분이 사라집니다. 더불어 그동안 내 주변에 있는 그(녀)가 해주었던 나를 향한 이해와 교감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마음 깊이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선 근현대사의 역동적인 변화부터 AI의 등장까지 우리들의 변화들을 살펴보면서 현재 나의 좌표점을 조금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회에 속한 나, 정치적 이념에 속한 나, 기술의 진보 속의 나까지 우리는 큰 변화의 흐름 속에 분명한 의미로 존재하고 있으나, 그것들은 진정한 내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끊임없이 작용하며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외부를 인지할 수 있다면, 비로소 외부와 작용하며 특정한 경향성을 보이는 나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특정한 경향성을 보이며 외부와 작용하고 있지만 현재 상태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의 내가 고정값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제부터 나를 이끌어 갈 주체가 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AI처럼 입력값(타고난 경향성)에 의해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내가 아닌, 나와 사회, 나와 부모, 나와 배우자, 나와 다른 다양한 지인들 간의 작용력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그 순간의 나를 인지하는 것이지요. 명리학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와 작용하는 방식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이 친절한 도구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타고 난 경향성에 휘둘려 반복적인 실수 혹은 반복적인 흉사를 겪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그가(내가) 더 이상 고통 속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나를 아는 길은 나를 괴롭히는 나에게서 벗어나 나를 응시하는 것입니다. 그 시점부터가 진정한 의미의 성장의 시작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합니다. 명리학은 인간의 미래를 예언하는 주술적인 학문이 아닌,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운의 흐름에 따른 나의 변화, 나와 관계하는 그(녀)의 변화, 사회현상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변화를 관조하고 오직 나에게만 매몰된 삶이 아닌, 관계 속의 나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고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욱 많은 이들이 명리학을 통해 진정한 나와 조우하시길 소망하며 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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