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는 없는 유일한 인간만의 능력 ,인성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외부 경험을 조망(眺望)하여 수용하고, 경험치를 재구성하여 이를 의미화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기능을 명리학에서는 인성(印星)이라 합니다. 인성(印星)은 지구상의 생명체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갖고 있습니다. 내가 의미를 부여한 특정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며, 내가 추상화한 의미를 언어로 함축하여 시(詩)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는 것도 인간만이 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AI도 예술의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치를 보이지만, 이는 AI가 인간의 예술을 모방하여 기술적으로 구현하고 있을 뿐, 창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때 모든 예술분야의 창작물에서 AI와 인간의 다른 점은 ‘나만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승화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예술적 영감과 예술적 기교의 차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향후 기술(기교) 면에서는 AI가 앞으로 인간을 무한대로 앞지르겠지만, AI가 신체를 갖추고(로봇), 의식의 영역을 갖추지 않는 이상, 인간의 추상화하는 능력(나만의 의미를 창조하는 능력)을 갖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현란한 AI의 예술작품들과 조우하게 되겠지만, 인간이 노력해 증진해야 할 능력은, AI와의 기술 경쟁이 아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치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작품이라 해도 이를 감상하여 나만의 의미로 만들지 못한다면, 예술은 기술(기교)의 의미 외에는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체 중 서로 다른 개체끼리 의사소통(식상)하고, 협력하여 자기 몫을 나누고(재성), 개체들 사이의 위계를 정하는 기능(관성)은 일부 고등한 동물들도 갖추고 있지만, 인간과 신의 존재를 구분하고, 특정 교리를 수용하여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의미화하는 작업은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행위입니다. 인간은 초월적 존재인 신과 인간을 구분하여, 인간의 나약함, 부조리, 삶의 고통등을 종교적 의미로 재해석합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인간의 삶이 재구성(의미화)되는 것이지요. 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이치를 겸허히 모두 신의 뜻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성(印星)이 종교, 학습, 깨달음, 통찰을 의미하는 이유입니다. 이기적 생존과 경쟁 에너지에 불과한 비겁(比刦)은 자신을 표현하는 식상(食傷), 타인과 교섭하는 재성(財星), 외부를 조망하는 관성(官星)을 거쳐, 경험을 의미화하는 인성(印星)으로 발전합니다. 인성(印星)은 최종적으로 일간(혹은 비겁)을 생(生)합니다. 이러한 발전단계를 거쳐낸 인성의 생조를 받는 일간(혹은 비겁)은 나를 위한 깨달음과 통찰로 이어져, 더 이상 생존과 경쟁을 향한 이기심이 아닌, 나와 하나로 합일(合一)된 건강한 자기애(自己愛)로 승화됩니다.
인간은 나의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하는지에 따라 삶이 크게 달라집니다. 만약 신장(腎臟)에 이상이 생겨 혈액투석을 받는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면, 물리적 고통을 괴로워하며, 투석하는 상황을 형벌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들어 고통스러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 상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 혈액투석까지 일주일간 또 한 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똑같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내 삶에 부여하는 의미는 육체적인 고통마저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원리입니다. 내가 겪은 경험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여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집니다. 이는 인성의 깨달음과 성찰이 인간의 생존을 돕고, 진정한 자기애로 향하게 되는 순환의 이치입니다.(인성 생 일간)
"자신을 사랑하기를 멈춘 인간은 살해당해도,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갖는다. (미국) 문화마저 파시즘에 장악되지 않으려면 이기심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애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개인이 형식적인 의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성(人性) 전체를 펼칠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자유는 인성(人性)의 일부가 나머지를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양심이 본성을, 초자아가 이드를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유란 인성(人性)의 통합을 말한다. 이렇게 온전해진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실제로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124P - 에리히 프롬
생사고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게 현재를 재구성하는 의미화(인성 印星)는 인성(人性)이 펼쳐질 조건으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에릭 프롬의 주장처럼 현대인의 문제는 이기심이 많아서가 아닌 진정한 자기애의 부재입니다. 명리학의 순환원리는 이처럼 모든 과정을 거쳐 본질로 환원됩니다. 진정한 자기애는 이 모든 과정(비겁-식상-재성-관성-인성-비겁)을 모두 거쳐야만 획득할 수 있는 인성(人性)의 통합을 의미합니다. 이때 획득할 수 있는 자유는 특정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진정한 나를 온전히 느끼고, 진정한 나로서 삶을 펼쳐나갈 의지와 능력치를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해탈의 단계는 인간을 진정한 자유로 이끌 것이며, 이는 AI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기능이자,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기능이기도 합니다. 모든 십신의 순환 원리를 살펴보면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비겁의 생존욕구를 식상의 자기표현 및 돌봄(양육)으로 승화하고, 발달한 자기표현 능력은 사회성(재성)으로 발전합니다.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사회성(재성)이 무리에서 돋보이면 권력(관성)을 얻을 수 있으며, 드높은 명예와 권력은 세상을 나만의 의미를 이해하여 수용하는 깨달음(인성)으로 완결됩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부와 명예를 추구해야 하는 최종목표로 살아가지만, 명리학에서의 인간의 최종 목표는 '내 삶을 나만의 의미'로 재정의하는 능력치(인성)로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재정립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진정한 자기애는 나의 이득만을 챙기는 이기심이 아닌, 나만의 의미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총체적 기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정인,편인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