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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Oct 25. 2024

먹을 복이란 무엇인가?

내 인생, 먹을 복 덕분에 조금 더 의미있다.

하이 브런치.

나다.


나에겐 애증의 점이 있다. 바로 입술 오른쪽 위에 있는 점이다.

흔히들 말하는 미인점은 아니지만 내 얼굴을 특징 짓는, 눈에 띄는 점이었다.

점에 대해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어느 순간 점이 있던 자리에 뾰루지가 나고, 뾰루지를 짜낸 그 자리가 옅어지더니 점보다는 하나의 흉처럼 흐려졌기 때문이다.

예전엔 이 점을 지우고 싶어서 피부과도 갔었는데(그 때에도 뾰루지가 나서 레이저 시술이 어렵다고 하여 돌아왔더랬다.) 막상 흐려지고 나니 나의 큰 특징 하나가 떼어진 느낌이었다.

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고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된 기분.


단순히 나를 설명하는 큰 특징이라서 이 점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한 건 아니다.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지나가듯 하신 말로 "미나는 입술 위에 점이 있구나. 복점이네, 먹을 복이 있어."라고 한 기억이 있다.

왜곡된 것이겠지만, 다른 학생들은 거의 없고 나와 그 선생님만 딱 교실에 있던 기억이 그려진다.

정말 어린 나이었고, 막상 학생 땐 이 점에 대해서 가타부타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성인이 되면서 그 기억을 계속 돌아보게 된다.

특히 나는 정말 우리 가족들이 먹을 걸 시켜서 받는 순간, 혹은 맛있는 반찬을 한 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간 경험이 많다. 늘 가족들에게도 "먹을 복이 많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학생 때는 아무런 생각없이 커오다가(그땐 또 나름의 고민이 있었고 치열했지만) 성인이 되며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니 이 복점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나보다.

가족들에게 듣던 소리와 어릴 적 선생님의 그 말이 겹쳐 마치 나의 먹을 복은 이 점으로부터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애착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점이 흐려졌을 때,

그때가 마침 결혼을 하게 되며 독립을 하게 되었던 시기였는데 마치 독립과 함께 내 먹을 복도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인생의 큰 변화를 앞둔 상태에서 그 좋아하던 먹을 복점이 흐려지다니, 이 결혼은 맞는 결혼일까? 혹시 잘못된 선택이라는 하늘의 계시일까? 라는 생각도 했더랬다.

그 때 마침 다이어트도 하면서 맛있는 음식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다보니 이젠 나에게 맛있는 음식은 없을 것 같고, 인생은 힘들어질 것만 같다는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독립하고 나와산지 이제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복점은 여전히 흐릿하지만 나의 먹을 복은 어디 가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마음을 붙잡고 내 먹을 복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1. 나의 남편은 나와 식성과 양이 비슷하다.

2. 나의 남편은 요리를 잘한다.

3. 나에겐 온갖 맛있는 음식과 식재료를 제공해주시는 시댁이 있다.

4. 무엇보다 난 여전히 모든 음식을 전부 좋아하고 잘 먹는다.


하나씩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1. 나의 남편은 나와 식성과 양이 비슷하다.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할 수 있었고, 결혼 후의 삶이 이전보다 조금 더 행복한 것은 나와 음식을 함께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나만큼 잘 먹고, 또 새로운 음식을 꺼리지 않으며 강한 향도 즐기는 사람. 먹을 걸 특히 좋아하는 나이기에 내가 '이거 먹을까?' 하는 순간 '오케이!'를 외쳐주는 사람과 매일 붙어있자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고기의 향을 즐긴다. 특히 양고기를 먹을 땐 너무 냄새를 잘 잡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양고기는 응당 양의 냄새가 나야 맛있는 것이다. 또 흑염소도 즐겨먹는다. 마찬가지로 그 쿰쿰한 냄새가 좋아서 잡내가 안 나서 맛있다는 집은 피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생선은 어떠한가. 회로도 즐기고, 세꼬시로도 즐기고, 구이로도 즐기고. 한가로운 주말, 할 일도 없는데 날이 약간 쌀쌀하면 눈 마주치는 순간 "해물칼국수!"를 외치며 바로 오이도로 달려간다.

먹는 빈도는 또 어떠한가. 둘 다 삼시세끼를 거르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 주말이면 8시에 기상해서 제대로 밥상을 차려 먹고, 12시, 18시 딱딱 맞춰 세끼를 챙겨 먹는다. 휴일을 앞둔 저녁이라면? 밤 10시 즈음 구운 통닭을 시키는 데에 거절이 없는 것은 내 먹을 복에 추가 점수를 부여한다.

여행을 가서도 식성은 여전하다. 여행 갈 때 컵라면과 햇반을 챙기는 것은 수치라 생각한다. 그 나라에 갔으면 응당 그 나라 음식을 먹는 것이 맞다며 현지 음식을 즉흥적으로 찾아다닌다. 만약 음식을 가려서 해외 나가서도 한식을 찾는 이였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만큼 행복할 수 없었을 거다. 그만큼 우리의 식성과 양은 매우 비슷하고, 내 흐려진 복점의 빈자리를 이 사람이 채워주고 있다.


2. 나의 남편은 요리를 잘한다.

나의 잘먹는 남편은 요리도 잘한다. 선천적으로 후각과 미각이 발달한 사람 같다.

레시피대로 해도 맛없는 나와 정반대로(보통 레시피를 잘 따라가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다.) 남편은 아무런 계량 없이 슥슥 재료를 넣어 만들어도 모든 음식이 맛있다.

그래서 집 앞 순대트럭에서 모둠순대를 사다가 뚝딱뚝딱 양념장을 만들어 맛있는 순대볶음으로 재탄생 시켜준다거나, 나보다 일찍 일어난 아침 맛깔난 된장찌개를 끓여놓는다거나, 너무 많이 먹어 질린 주물럭에 이것저것을 넣어 새로운 맛을 창조해낸다.

부모님과 살때보다 살이 15kg이 찐 것은 단순히 마냥 행복해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퇴근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맛있는 음식이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3. 나에겐 온갖 맛있는 음식과 식재료를 제공해주시는 시댁이 있다.

우리 아버님은 걸어다니는 화수분이시다. 음식을 잔뜩 사다가 가족들을 먹이시고 또 주변에 나눠주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분이다. 그래서 시댁에는 음식이 마르지 않고 늘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려 한다.

연애 때부터도 수시로 과일이니 고기니 하는 것들을 많이도 받았다.

결혼하니 더하다. 2주에 한 번은 같이 식사를 하는데 배터지게 고기를 먹고 당 폭발할 만큼 과일을 먹는다.

집으로 돌아갈 땐 꼭 반찬과 과일이 가득 쥐어져 있다. 지금도 포도 두 박스가 쌓여 열심히 먹고 있다. 사주신 파김치가 맛있다고 말씀드렸을 땐 근 한 달 간 파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사다 주시기도 했다.

오히려 친정은 부모님 두 분 다 몸관리 하신다고 식단하기 바쁘고, 여전히 맞벌이를 하셔서 음식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독립하기 전에는 식단을 하고 간단히 먹는 데에 꽤 익숙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친정에 가면 먹을 게 없어서 당황스럽다. 먹을 게 넘치는 우리집과 시댁에 그새 익숙해졌나보다.(참, 친정도 2주에 한 번 꼴로 가는 데도 그렇다.)

이렇게 챙겨주시는 시댁이 있는 걸 보면 내 먹을 복이 안 죽었다 싶다.


4. 무엇보다 난 여전히 모든 음식을 전부 좋아하고 잘 먹는다.

위에 내 주변을 설명했지만 무엇보다 내 먹을 복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게 아니겠는가.

나를 돌아보자면 난 여전히 복있는 사람은 맞다. 모든 음식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 누군가 상 위에 올라온 음식을 보고 "어우, 너무 많은 거 아니야?"라고 하면 말한다.

"많은 건 걱정하지 마세요. 부족한 걸 걱정하세요."

입이 길고도 길어서 맛있으면 길~게 먹는 편이다. 1번에 쓴 것처럼 향이 나는 음식도 즐긴다.

온갖 향신료는 새로움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제3세계 음식은 영감의 원천이다.

요리 잘하는 남편을 곁에 둔 사람이 복을 유지하려면 또한 맛깔나게 먹을 줄 알아야 한다. 다행히 나에게 그건 어려운 영역이 아니다. 음식을 평할 새 없이 맛있다며 행복하다며 입에 한가득 넣는 사람이니 말이다.

내 입으로 날 칭찬하기란 거만하기 짝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먹는 분야에 있어선 칭찬을 할 수 밖에 없다.

음식을 해준 보람을 느끼니 요리사는 계속 요리를 하고, 나는 내 역할에 충실히 임한다.



이처럼 나의 애증은 점은 흐릿해졌지만 먹을 복은 아직 여전하다.

나는 먹는 행위를 통해 지루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짜릿함으로 힘들었던 평일을 치유하고, 주말의 평안함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똑같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친밀해지고 깊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 같이 한 음식과 함께 그때를 추억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나는 삶은 축복이 아니라 생각한다.

내 삶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존재 자체의 의미를 찾지 못한 상태이다.

많은 좋은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돌아가 선택할 수 있다면 태어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태어난 김에 열심히 살아가며 느끼는 점은, 나의 먹을 복은 나에게 삶의 의미를 더해준다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하며 느끼는 이 좋은 감정들이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진 흐려진 점을 대신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내 먹을 복을 채워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나도 열심히 내 복을 지켜야지 싶다.

이번 주말엔 뭘 먹을지 미리 미리 고민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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