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나 Jun 24. 2024

말그릇이란 무엇인가?

인정하고, 이해하고, 당해주자.


하이 브런치.

나다.


오늘은, 사람 간 관계에 있어 나 스스로 감히 정의를 내린 개념이 있어 가져왔다.

몇 주 전 블로그에 올린 글로, 나와 남편은 이 싸움을 계기로, 그리고 이 개념을 토대로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끈따끈한 이야기이다. 오늘 아침에 딱 싸우고 나갔다 왔다. 결과적으로는 싸우고 바로 화해하고 사이 좋다.

느낀 점으로는 정말 사람은 복잡한 동물이 맞는지 7년을 넘게 봐도 새롭게 알아갈 게 남았다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역시..골프..


늘 필요 이상의 과한 설명으로 나의 의지를 꺾어버리던 남편에게

과한 피드백을 거절하겠다며 싸움 아닌 싸움을 하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듣다 듣다 지쳐서 당시엔 울면서 요청했는데, 역시나 그는 며칠 못 가 날 붙잡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밥먹고 한가로이 유튜브나 보던 내 앞에 와서 채를 들고 자기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한다~ 설명을 하는데.. 또 똑같이 반복된다는 생각에 내 표정은 한껏 굳어갔다.

남편은 굳은 나의 표정을 눈치채곤 본인도 기분이 나빴던지, 어느 정도 내가 칠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따로 다니자 했다. 입으론 "그래, 그러자."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어느 정도 치고 난 뒤에도 저 놈은 나한테 계속 설교하겠지 라는 생각에 레슨이 끝나면 내 골프 취미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그냥 안 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부부끼리 같은 취미 좀 가져보자는 생각에 관심도 별로 없던 골프를 하라고 조르고 졸라 시작했더니(심지어 본인이 돈을 내준 것도 아니었다.) 이젠 연습을 따로 다니자고 해? 서운하고도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화가 났음을 잔뜩 표현하며 혼자서 생각을 정리했다. 누가 봐도 내 상태를 알고 있지만 열심히 모르는 척 하던 남편을 불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분명히 약속을 했음에도 또 설명을 과하게 하고 있는 모습에 약속을 저버린 것 같아 화가 났고, 나는 내가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저도 너한테 설명을 듣고 있을 것 같다. 알아서 하게 둬라. 심지어 너는 내가 더하면 더한 헬스를 해도 나한테 와서 설명을 할 것 같다. 내가 너 뭐할 때 설명했냐. 그냥 어어, 잘했다. 해주지 않냐. 그냥 둬라.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프로님이 고쳐줄 거고, 그게 안 되면 난 그냥 이상하게 치는 사람 되는 거고 그렇다.


남편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과잉해석이다. 최근에 설명 안 하다가 이번에 이렇게 한 것은 너가 다칠 수 있는 자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비뼈, 손목, 엘보 다치면 손해다. 취미하다가 다치면 그게 취미냐. 걱정되니까 말하는 건데, 너는 그렇게나 이기적이냐. 너도 내가 위험한 것 같으면 하지말라고 하지 않냐. 그거랑 똑같다. 내가 걱정하는 마음은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듣고 싶은 것만 듣냐. 나 말하고 싶은 거 진짜 많은데 참고 참고 그 와중에 니 걱정되서 고르고 골라 얘기한거다.


이 때 남편 말을 듣곤 처음엔 내가 정말 이기적인가? 내가 선택적으로 들었나? 라는 생각도 들다가 문득.. 서로의 그릇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무조건 피드백을 싫어하느냐 그것은 아니다.

나도 안 되면 남편을 불러다 안 되는 것을 묻고 답을 받으면 그대로 해본다. 칭찬만 듣고싶은 게 아니고 그 설명이 1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2절, 3절까지 나아가는 걸 싫어한다.


본질적으로 나는 듣는 그릇(호기심 포함)이 간장종지다.

말이 길어지는 걸 정말 싫어하고 딱 핵심만 말하고 끝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외의 정보는 내 관심 밖이다.

그런데 남편의 저 말 그릇은 들통이다. 그냥 사골 우리는 엄청 큰 통.

남편은 호기심도 많아서 a가 궁금하면 a의 역사, 종류 등을 찾아보는 성격이다.


근데 내가 설명을 듣기 싫다고 하니 본인 딴에는 한 사발만 퍼서 주는데, 이 간장종지는 그 마저도 많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니 넘치고 넘치다 이렇게 화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그릇이 서로 다른 것 같아. 라고 하니 남편도 수긍했다.

이 사람은 원래 설명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알고는 있었는데, 살아보니 이렇게 말 그릇이 클 줄은 몰랐다. 매일 나에게 할 이야기를 주제를 선정하고 이런 얘기를 해야지! 라고 생각을 한단다.

들통에서 몇 사발을 퍼서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간장종지는 그것을 모르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사발 앞에 앉는다.

그리고 갑자기 물을 들이부으니, 종지는 넘쳐버리고 쉬는 시간인데 냅다 수업이 시작된 학생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왜 이걸 갑자기 나한테 설명해...?'라는 생각만 드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남편이 보통 설명을 시작하는 때에는 컴퓨터 방에 내가 앉아있거나 거실에 하릴없이 폰 보며 앉아있을 때. 즉, 학생이 쉬는 시간일 때다. 그러면 이 남편이라는 선생님은 본인만의 커리큘럼으로 냅다 학생한테 설명을 시작해버리는 것이다.


1년을 그렇게 말의 홍수 속에서 젖었고, 버티고 버티다 골프를 도화선으로 터진 것 같았다.


그릇이 다름을 인정하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다름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인정하고/이해하고/당해주자"를 실천하자고 약속했다.

단, 스스로 당해주지 못할 땐 명확히 주지시켜서 서로의 선을 지키자는 약속을 했다.


그릇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우리의 분위기는 빠르게 온화해졌고, 해결도 쉬웠다.

남편 말로는 본인은 들통보다 댐이라고 했다. 수문을 만들어 필요한만큼 흘려보내야 한다 했다.

그러니 나는 종지임을 알고, 수영복을 준비해야 한다.


단...물이 고여 썩을 것 같아 다 흘려보내야 할 땐.."오늘 방류함."을 보내주기로 했다.


"오늘 방류함."


진심으로 무섭다.

아마 듣고나면 귀 한 쪽에 피가 흐르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약속한 바.. 이 날은 들어주는 것으로 당해줘야겠다.


여튼 이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본질적으로 정말 다른 종류의 사람임을 한 번 더 알게됐다. 원래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부분에서까지 이럴 줄이야.. 진짜 사람은... 몇년을 봐도 이렇구나...복잡하고 복잡한 동물이다.


알고 당하는 게 모르고 당하는 것보단 덜 억울하니..알고...당하자..서로..


일단 오늘은...첫날이니 많이 들어준다..



결혼 100일차, 연애는 8년차.

오랜 시간을 봐왔지만 서로의 "말그릇"이 다르다는 것은 처음 깨달았다.


이 일이 있고난 후 남편이 말을 할 때는 "그래도 고르고 골라 얘기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그리고 더이상 집중이 힘들 때에는 "나 이제 그만."을 알려준다.

그러면 수문의 닫히고, 그는 나의 말그릇을 인정해준다.


그러니 혹시 서로 간 대화 혹은 수다의 양이 달라 힘든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 이 개념을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말그릇]


그리고 말그릇이 다른 이를 인정하고 가끔은 당해주는 걸 감히 제안해보고 싶다.


끝.



작가의 이전글 관리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