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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Jul 06. 2024

결혼이란 무엇인가?

가까운 각자로 이루어진 덩어리를 이해하는 것.

하이 브런치.

나다.


이번 주 남편의 생일과 함께 동거 1년, 신혼 4개월이 되었다.

웨딩홀 잡기가 어려워 1년~1년 반 전부터 날짜를 잡는 요즘 세태에 맞게 우리도 1년 전에 결혼날짜를 잡았고, 결혼날짜도 결정된 김에 못 참고 동거를 빨리 시작했다. 7~8년 연애를 하다 결혼을 하려고 하니 함께 살 수 있는 날을 더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1년 간의 동거를 하며, 두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결혼생활(이건 아래에서 첨언하기로 한다.)을 시작하며 연인 간의 관계에 대해 떠오른 생각들이 있어 풀어내려 왔다.

관련해서 최근 주우재가 연인이란 "가까운 각자"라고 말하는 숏츠를 보게 되었다.

함께 나온 박진주는 어째서 연인이 각자냐며 결사반대 했지만, 나는 이 개념에 100% 동의한다.

딱 내가 생각하고 있던 연인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결혼은, 이 가장 가까운 각자가 한 덩어리가 되어 굴러가는 일인 것 같다.

그러나 하나로 융합되기 보단 각자의 상태를 유지한 채로 굴러가는 덩어리인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연인이라면 완벽히 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자라왔고 서로를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와중에 이 사람과 나를 완벽히 융합시키려 하다보면 당연히 안 맞는 부분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 때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갈등은 갈등으로만 남아있고 그 골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회를 먹지 못하는 연인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회를 함께 먹어주지 않았다고 날 사랑하지 않는거라 생각하고 싸우면 이 싸움에는 끝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회를 좋아하는 이, 싫어하는 이임을 인정하고 이를 사랑의 감정과 별개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연인은 누구보다 서로를 제일 많이 보여줄 수 있는 가까운 존재임은 틀림없다.

그렇기에 연인은 "가까운 각자"이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함에 있어 "룰"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명확히 제시하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걸 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을 뭉갠 관계에선 본인도 모르게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배려없이 행동할 위험이 크다.

업무를 할 때를 생각해보자. 가이드라인이 명확한 업무를 할 땐 그 기준에 맞춰 업무가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잘못된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불명확하고 주먹구구로 운영되는 업무를 할 땐 매번 기준이 바뀌고 잘못된 것이 잇어도 어떤게 잘못되었는지 발견하기 조차 쉽지 않다.

이걸 연인 관계에도 대입해보면 서로 간의 선과 요구를 반영한 일종의 "룰"을 만들어두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어떤 수준인지 파악하기도 쉽고,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이제 그만", "나 한 번 더 하면 화 낼 거 같아."라고 선을 명확히 긋고, 어떤 행동은 안 했으면 하는지를 명확히 주지시킨다.

그러면 서로의 선을 인지하기가 쉽고, 또 받아들이는 것도 쉽다. 갑자기 상대방이 화내는 것에 당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경고 사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긴게 "가까운 각자" 개념이 또 결혼에 있어선 조금 다르다.

커플에게 "룰"으로 규칙이 필요했다면, 결혼과 동거에 있어선 관용이 조금 더 요구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연애와 달리 결혼에 있어선 하나의 덩어리(one team)로 살아가야 함을 알고 다음을 마음에 새기면 좋을 듯 하다.

• 이 사람을 애정으로 바라본다.

  앞서 나는 연인 간 "룰"을 말했다. 그러나 결혼으로 넘어오면 간혹 이 룰에 맞지 않는 상대방을 애정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건 마치 가족으로 나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가령 '빨래는 빨래통에'라는 규칙을 세웠을 때 간혹 침대 옆 구석에 양말을 널브러뜨리는 이 사람에 대해 피식 웃으며 '으이구~'하고 넘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룰을 어겼다고 득달같이 달려들 필요는 없다. 우리가 부모님과 살 때 내 기준에 안 맞는다고 냅다 싸우진 않지 않는가. '에휴' 한숨 한 번 쉬고 넘어가곤 한다. 이처럼 이 사람은 이제 나의 가족이니 설령 서로가 세운 룰에서 조금 벗어나더라도 약간의 관용으로 넘어가는 애정어린 시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덩어리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혼 준비를 하고, 물리적으로나 행정적으로 하나로 묶이는 과정(동거와 혼인신고 등)를 지나보니 서로가 서로를 짊어지고 의지해 나가는 것인 것 같다.


우리는 22년 말 즈음 처음 결혼을 얘기했고, 조금은 조급하게 동거부터 준비해서 결혼식을 올리려 했다.

당시 부모님의 반대 아닌 반대도 있었는데, 엄마의 말씀으로는 우리 둘이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하셨다.

"너는 너, 나는 나"가 강해서 합쳐질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결혼은 하고 싶지만 막상 이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불안한 마음도 컸던 건 사실이다.

이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모든 걸 물리적으로 의탁한다기 보단 어떤 상황이든 믿을 수 있을 것인가의 의미가 강하다.), 나는 이 사람의 모든 것을 짊어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마침(?) 남편도 혼자 운영하던 사업이 불안정해지면서 스스로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파혼 아닌 파혼(실제로 웨딩홀을 잡은 건 아니었으므로)에서 나아가 이별까지 고민하고 있던 터였다. (남편은 결혼이 어려운 본인의 능력과 상황으로 나의 앞 길을 막고 싶지 않아 이별을 고민했다 한다.)

동거부터 준비하며 이곳 저곳 보다가 생각보단 비싼 금액에 지쳐 귀가하던 어느 날,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이유로 불안한 마음에 눈물과 함께 결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우린 다시 한 번 결혼 의지를 다졌다.

거기에는 사실 나의 결심이 큰 작용을 했다.

22년 이직을 해 자리를 잡던 내가, 1년 정도를 다녀보니 내 사회생활 중 받은 급여로는 가장 안정적인 급여를 받고 있었고 업무적으로도 안정되며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졌다.

23년 초, 남편에게 결혼 준비를 하자며 강하게 말했을 때 나의 마음가짐은 이것이었다.

'이 사람이 어떤 상황이든, 설령 직업이 없는 무일푼이 되더라도, 내 월급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어떻게든 가정을 이끌어나갈 수 있겠다. 그리고 난 그럴 의사가 있다.'

이 사람의 모든 것을 짊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그리고 이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책임을 다 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졌고 그 덕에 결혼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 땐 신기하게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의 시도 끝에 결혼을 준비했고 현재는 신혼을 잘 즐기고 있다.


이처럼 결혼은 연애와는 차원이 다른 책임감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동시에 그런 쉽지 않은 과정을 지나 함께 나아가게 되었다면 둘 사이의 약속과 관용을 토대로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짧은 기간 결혼 생활을 해 본 이의 줄줄이 소세지 마냥 나오는 생각.


끝.


p.s. 내가 이 글에서 ’~인 것 같다.‘ 의 표현을 많이 쓴 것은 말그대로 신혼이기 때문에 아직 겪은 바가 부족하고 부족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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