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무자녀, 여전히 나는 삶의 방향을 고민중이다.
하이 브런치.
나다.
최근 "엄마 아닌 여자들"이라는 책을 읽고 공감과 위로도 받고, 또 새롭게 든 생각이 있어서 끄적여본다.
동거 1년, 결혼은 4개월.
우리 부부는 자녀 계획을 고민하고 있고, 여러 이유로 주저하고 있다.
아이를 가지고 싶으면서도 다양한 이유로 망설이게 된다.
이런..고민을 저 책에서 잘 다뤘기에 한 번 글을 써본다.
예전에 한창 이런 말이 풍문에 돌았다.
자녀는 그랜드 피아노와 같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랜드 피아노를 두기 위해선 큰 피아노를 수용 가능한 충분한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게 걸맞는 환경을 조성하고 나서야 들일 수 있다.
자녀를 갖는 것도 그와 마찬가이지이다. 아이를 위한 환경과 조건이 확보 되었는지 확인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당시에도 큰 공감을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는 것보다 수백 배 어려운 것 같다.
그랜드 피아노처럼 들이는 환경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요, 계속 변화하는 상태에 맞춰서 나도 변해야 하고 아이는 내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또, 아이는 결국 생각하는 생명이라서 더욱더 어렵다.
정말이지 그냥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내가 자녀계획에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환경적 이유
① 계속될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확실히 갈수록 환경은 파괴되고, 그에 따른 기후변화가 여실히 느껴진다. 유독 더운 여름,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여러 곳에서 다루는 녹아버린 빙하들도 마찬가지이다. 주기적으로 보도되는 세계 곳곳의 이상기후 뉴스도 한몫 한다.
이런 와중에 앞으로 태어날 자녀가 겪을 지구는 어떠한가?
이 아이가 보게 될 세상이 좋은 세상일까? 그나마 과거를 경험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우리 둘이 환경오염을 막겠다고 일련의 행동을 실천하는 그런 사람들도 아니다.
쓸 건 쓰고 버릴 건 버리고, 친환경을 찾아다니거나 하진 않는다.
그러니 이 아이가 겪게 될 미래가 걱정되어서 주저하게 된다.
② 혐오와 쉽게 부딪히는 환경
얼마 전 남편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봤더니 남녀를 갈라치는 그런 컨텐츠가 꽤 많이 노출되고 있었다.
퐁퐁남이니, 사치부리는 와이프, 혹은 맨몸으로 결혼하겠다는 신부 등등...
자극적이고 성별로 서로의 갈등을 부추기는 컨텐츠가 정말 많았다.
어쩐지 남편도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냐며 말을 꺼내는 주제들이 내 생각에선 말도 안 되고, 그냥 커뮤니티에 절여진 사람들이 맘대로 지껄이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예상컨데.. 격투기와 게임 컨텐츠를 좋아하는 30대 남자에게 나타나는 알고리즘에 그런 컨텐츠가 섞여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런 내용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겠지.
이런 컨텐츠가 조회수를 끌고 자연스럽게 돈까지 끌고 오니, 사람들은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더욱 컨텐츠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 같다.
간혹 회사 블라인드 글이 뭐가 올라와있나 하고, 블라인드에 들어가보곤 하는데 그곳에도 정말 혐오적인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혐오가 단순히 무엇인가를 증오하고 미친듯이 싫어하는 모습은 아니다.
편견을 가지고 본인도 모르게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미움, 그리고 혐오의 모습이다.
블라인드에서 나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정말 많이 느꼈다.
뉴스에서 나오는 데이트폭력, 노인 폭력 또는 무작위적 폭력 등도 끊임이 없다.
이런 사회에서 과연 아이는 행복할까? 설령 가정 내에서 행복하더라도 아이가 커가며 겪게 될 혐오의 사회가 안타깝다.
내 아이에겐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그런 걸 겪도록 만들고 싶지도 않다. 나아가 본인이 그런 혐오적 행동을 하는 것도 보고싶지 않다.
2) 개인적 이유
① 생각중독자는 삶이 괴롭다.
나에게 삶은 축복이 아니다.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것이다.
생각중독자는 깨어있는 모든 순간 순간 뇌가 쉬지 않고 생각하고 말한다. 얼마나 큰 에너지 낭비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와 닮은 아이가 나온다면.. 그 아이에게도 삶이 고통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응당 겪어야 할 것들, 취업부터 친구 관계, 갈등 등등이 나에겐 꽤 벅찼기 때문에 그런 당연한 괴로움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② 신체적 변화
출산에 따른 나 스스로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신체적 변화가 가장 두렵다.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면 탈모도 오고, 관절도 약해지고 또 임신 중 찐 살을 빼느라 애먹는 경우도 많았다.
입덧의 고통도, 출산의 고통도 또 그 이후의 고통도 모두 겪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계속 고민하게 된다.
③ 생활 변화
이제는 퇴사한 팀 대리님의 생활을 보면 오롯이 아이에 맞춰 돌아갔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시고 퇴근하면 곧장 아이를 데리러 가서 육아 출근, 주말엔 꼭 아이와 나들이 다녀오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다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섣부른 걱정일 수 있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니.. 벌써 피곤하다.
평일 퇴근하면 완전 소진되는 내 에너지도, 그리고 주말에 약속없이 집에만 있는 게 가장 행복한 내 성향도 고려했을 때 아이에 맞춰지는 삶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아이에게 괜히 스트레스를 풀게 되진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난 아이를 낳고 싶으면서도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1) 환경적 이유에 대해선 남편도 공감하고 있어서 둘 다 원하면서도 "아 근데 아이를 위해선 안 낳는 게 나아"이런 말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아이를 낳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비논리적이다.
1) 나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받았던 것 이상으로 신뢰와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고, 적어도 남편과 나의 품 안에선 부족함과 아쉬움 없이 최선을 다해 원하는 걸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로 인한 생활 변화가 두렵다곤 했지만 성격상 모든 걸 쏟아부어 아이에게 맞춘 생활을 할 것도 같다.
이상한 자신감이 들어서 가져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2) 더..행복할 것 같다?
내 인생이 무료한 것도, 또 부부 사이가 아이가 있어야 유지되는 것도 아니지만 아이가 있다면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도 아이를 좋아하고, 남편은 또 본인이 겪은 바와 반대로 더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행복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이름도 지어놨다. 딸이면 민영, 아들은 진웅. 순전히 어감으로만 지어놨는데 딸이면 영특하고 똑부러지길 아들이면 유순하고 우직하면 좋겠다 싶어서 생각도 해놨더랬다.
어쨌든 이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이성은 안 된다고 외치고 있어 결정은 더욱 어렵다.
그렇다면 "엄마 아닌 여자들"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는가?
환경주의적 무자녀에서 아무래도 크게 공감을 했다.
기후변화 등 환경을 이유로 자녀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을 "환경주의적 무자녀"라고 칭한다.
맙소사,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현재도 아니고 과거부터 있었다니 이렇게 반가울수가.
책에선 인간이 늘어날 수록 환경은 더욱 파괴되기 때문에 그 이유로 자녀를 안 가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사실.. 한 번 사는 삶.. 그 부분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일부는 다른 의견이었지만,
어쨌든 환경이 자녀의 삶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무자녀의 삶이 옳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었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위로를 받았다.
임신 중지와 관련된 의견에도 공감했다.
나는 역시 임신중지에 찬성하는 입장인데, 여기서 제시한 시험관 시술과의 비교가 인상깊었다.
시험관 시술 개발을 위해 인간 배아 400개를 수정하고 검사한 후 폐기한 것은 괜찮고 임신중지라는 명목 하에 수정란을 폐기한 것은 모성을 피한다는 이유로 엄격하게 대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생각지도 못 했던 부분이다.
자녀없는 이들을 어머니로 만들어 줄 시험관 시술은 인간배아를 파괴해도 납득 가능하고, 원치 않는 임신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임신 중지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니. 과연 사회가 여성을 자궁 혹은 인간 생산 기계로 보는 것인가 인간으로 보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공감한 부분이라기 보단 총체적으로 들었던 생각.
자녀 유무 혹은 결혼 유무는 정말이지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러니 물어볼 필요도 없고, 어떻든 그에 대해 평할 필요도 없다.
지금 사회는 자녀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 부모만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문제이다.
자녀 양육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며, 자녀 양육은 개인의 일로 취급당해 온전히 그 부모가 감당해야 한다.
생활 자체도 마을의 공동체적 생활에서 개인주의적 생활, 이웃과는 단절된 생활로 변화하다보니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네트워크 마저 사라졌다.
하루종일 누군가가 붙어있어야 하는 어린 아이들을 두 명이서 돈도 벌며 감당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또 동시에 자녀가 없다면 왜 자녀가 없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마치 자녀가 있어야 완전한 가족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정작 자녀를 가질 환경적, 사회적 준비는 안 되어 있는데 말이다.)
결국 이런 논쟁은 자녀-무자녀 간 대립이 아니다. 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줄 사회적 요건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자녀-무자녀 부모 간 갈등이 될 수 있는 이 주제에서 관점을 달리해 이런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한 원인에 집중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 공감했고,
또 관점을 달리해 자녀와 관련된 논쟁을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읽는 내내 마냥 흥미진진한 책이었다고 할 순 없지만 최근 나의 가장 큰 고민을 다룬 책으로 꽤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곤 할 수 있다.
어떻게 끝내야 하지..
뭐.. 그랬다.
아직 나의 고민은 ing.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