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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처 May 17. 2024

쑥이 자라날 때

단편소설

  알다시피 5월 이맘때면 쑥을 캐러 다니는 게 유행이다. 그런데 특히 이곳 발전소 주변의 쑥을 캐려는 사람이 몰리는 건 여기 쑥이 특별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소문은 이 동네 쑥을 먹으면 키가 큰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쑥을 먹으면 원래 키가 크기 때문에 식물 이름도 쑥이 아니겠냐고 했다. 나는 그런 소문 따위 믿지 않았지만 쑥을 캐려는 엄마를 따라나서야 했다.

  "조심하렴, 혹시라도 귀한 쑥을 밟으면 안 되니까."

  허리를 숙인 채 땅을 짚어가며 거의 기다시피 하는 엄마를 지켜보았다. 내 키는 작은 편일까, 그런데 키는 어차피 커지는 것 아닌가. 한 번도 키에 대해선 고민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에 가면 더 큰다고 하니 지금은 적당한 편인 것 같은데, 하는 정도의 생각만 있었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상관없어도 다른 집 자식들이 다 쑥을 먹으면 그땐 어떡하겠니. 뒤처지지 않으려면 먹어야 되는 거야."

  엄마는 뿌리의 흙을 조심스레 털어내며 반짝이는 쑥을 소쿠리에 담았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엄마가 주는 쑥을 먹지 못했다. 여기서 캐낸 쑥이 무려 1kg에 30만 원에 팔린다니 무턱대고 목구멍에 밀어 넣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요 며칠 쑥을 캐는 족족 내다 팔았다.

  "정말 키 크는 게 맞아요? 이상해요. 옛날부터 쑥은 있었을 텐데."

  "다른 데서 나는 건 소용없어. 여기가 특별하니까 그런 것 아니겠니. 옛날에 호랑이랑 곰도 쑥을 먹었다니까 지천에 널려서 그런 줄로 알았지. 가끔 국 끓일 때 넣기나 하고. 그런데 이게 키 크는 특효약이었다니…. 우리가 곰과 호랑이보다 못했지 뭐니."

  엄마는 나를 보지도 않은 채 듬성듬성 자라난 쑥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장갑 낀 손으로 산비탈을 훑을 뿐이었다.

  "근데 키가 작을 때 좋은 것도 많아요. 줄 설 때 앞으로 나올 수 있고, 후프를 빠르게 통과할 수도 있고. 또…."

  "그래그래, 너도 얼른 더 커야지. 얼른 커야 한시름 놓을 텐데."

  엄마는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쑥 캐는 데 정신이 팔린 엄마를 등지고 있다가 이내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송사리나 개구리 같은 걸 잡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멀리서 쿠우웅하고 발전소의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저것 덕분에 우리 마을이 잘 살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밤 중에도 쿠우웅하는 소리는 끊임없이 울렸는데 아무도 못 들은 척 앞으로 우리 마을은 더 커지고 잘 살게 될 거라고 말했다. 불안함에 떠날 작정이었던 사람들은 이미 조용히 떠난 뒤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물가의 돌멩이들을 아무리 뒤집어봐도 잡을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주변은 어둑어둑해져서 처음 어느 방향에서 내려왔는지도 분간되지 않았다.

  "엄마아!"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몇 번을 더 불러봐도 엄마의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대로 길을 잃고 하루가 지나면 얼어 죽거나 겨우 밤을 보내도 동물들에게 물어뜯긴 채 발견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같은 자리를 맴돌았을 뿐인데도 배가 고프고 힘이 없었다. 먼저 굶어 죽을지도 몰랐다.

  그때 저만치 언덕 너머로 하얗게 빛나는 것들이 보였다. 다 자란 쑥이었다. 무더기로 자라 언덕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나는 언덕 위로 기어 올라갔다. 이걸 본다면 환하게 웃을 엄마의 표정이 상상됐다. 이게 다 얼마니. 이게 다 얼마야. 기뻐하며 내뱉을 말까지도 떠올랐다.

  내가 살아 돌아와도 그만큼 기뻐하겠지? 완전히 내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굶어 죽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쑥을 뜯어 입에 넣었다. 보드라운 잎의 느낌과 함께 진한 쑥향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닥치는 대로 쑥을 뜯어먹었다.

  얼마간 정신없이 쑥을 먹고 나니 힘을 내서 여길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환히 불을 밝힌 발전소 쪽을 향해 걸었다.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질 만큼 이상하리만치 거리감각이 달라져 있었다. 얼마 뒤 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그때 어디선가 자동차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발밑이었다.

  장난감처럼 조그마한 자동차들이 내 발에 가로막혀 사정없이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발 끝에 툭툭 채이는 것들은 마치 풍뎅이처럼 느껴졌지만 역시 사람이 탄 자동차였다. 한 번 더 발을 옮기려 했을 때 무언가 내 무릎에 부딪힐 뻔해서 깜짝 놀랐다. 그건 내 키보다 작아진 우리 동네 아파트였다. 모든 게 너무도 작아져 있었다.

  더 움직이지도 못하고서 문득 뒤를 돌아보자 입을 틀어막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녀의 소쿠리엔 은빛으로 반짝이는 쑥이 한가득이었다. 너무나 놀라 어찌할 줄 모르는 얼굴로 얼어붙어 있었다. 개미만큼이나 작아져버린 엄마를 향해 나는 가져온 한 줌의 쑥을 내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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