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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처 Jun 07. 2024

동작을 말로 설명하기

달리기와 플라잉디스크

남에게 체육을 가르치는 일에는 자신의 운동 능력과 별개로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수학을 잘한다고 꼭 수학을 잘 가르치는 건 아니듯 말이다. 인간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체육은 이 본능의 영역에 불편한 제약과 어려운 테크닉을 넣어 이렇게 한 번 해봐, 라고 요구한다. 운동 신경이 좋다면 뭐든 곧잘 따라 하고 남보다 빨리 배운다. 몸에 대한 이해가 좋다고 할까. 대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캐치하고, 눈으로 본 걸 그대로 따라 할 수 있고, 자기 몸의 성공적인 움직임을 기억하고 되풀이하는 것 등. 그런 능력이 아주 뛰어나면 일절의 설명 없이도 체육을 배우겠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에겐 몸을 풀이해 줄 언어라는 보조 수단이 필요하다. 이때의 언어는 가급적 쉬운 말과 키 포인트 위주의 간결한 설명이 되어야 한다. 걷기와 달리기가 동시에 이뤄질 수 없는 것처럼 순간의 동작에 딱 적합한 언어는 따로 있는 법이다.


체육에서 달리기만큼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게 또 있을까.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달리기도 체육 종목으로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면 더 오래 뛰거나 빨리 뛸 수 있는 여러 훈련법이 필요해진다. 다리를 높게 드는 연습, 스타팅 자세, 후후, 하하 식으로 두 번에 나눠서 호흡하는 방법 등. 나는 수업을 준비하며 주로 동영상을 찾아서 가르치는 팁을 얻곤 하는데 가끔은 글로 된 설명을 찾아볼 때도 있다. 어쨌든 동작을 말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키백과에서 '달리기'를 찾아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달리기는 양 다리를 교대로 앞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각 다리가 움직이는 과정은 대략적으로 '지탱', '추진', '회복'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지탱과 추진은 발이 땅에 닿은 상태에서 일어나며, 회복은 발이 땅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일어난다. 달리기의 정의상 언제나 적어도 한 발은 회복 상태에 있다."




이거 뭐야, 싶을 정도로 난해하게 느껴지다가 어쨌든 생각해 보니 흥미롭긴 하다. 특히, 언제나 한 발은 회복 상태에 있다는 부분. 달리기를 하는데 발이 회복되고 있다고? 어쨌든 정의상으로는 한 발씩 교대로 회복하고 있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면 어떨까? "얘들아, 달리기라는 건 두 발을 교대로 지탱, 추진, 회복 단계를 반복하는 거야. 해 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가르치는 데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플라잉디스크를 이용해 수업하고 있는데 공과 달리 아이들이 많이 다뤄보지 않아서 나는 매번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동작을 말로 설명하곤 한다. "백핸드로 잡을 때는 이렇게 '가위'를 내듯이 집게로 감싸서, 포핸드는 물수제비 알지? 물수제비 던질 때처럼 이렇게 탁!" 플라잉디스크는 백핸드보다 포핸드 익히는 게 더 어려운데 말로 설명하기도 좀 어렵다. 돌로 물수제비 던지는 것에 빗대어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내 머릿속엔 물수제비 한 번 안 던져본 아이들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 아이는 결국 내 말의 '탁!' 이라는 단어와 순간의 시범에 의존해서 이해해야 한다. "팽이 돌릴 때 줄 당기듯이 이렇게 탁!" 요즘도 팽이 돌리며 노는 아이들이 있을까? 팽이 돌리는 법도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손목 스냅으로 딱 끊어서." 손목의 스냅이 무엇인지까지 설명해 줄 요량은 없다. 설명하는 언어가 더 복잡해지면 곤란하다. 이쯤 되면 말을 부연하기 위해 동작을 보여야 하는 지경이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개떡같이 설명해도 찰떡으로 알아듣고 하는 애들은 한다는 것이다. 운동 신경이 좋은 아이들의 경우다. '그래, 그거야!'라는 칭찬은 결국 그 동작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 체육이라는 게 대신 몸을 움직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잘한 동작이 나오면 판별해서 강화하는 게 최선일 때도 있다. 수업 때마다 아이들은 동작을 성공해 보려고 애쓰고, 나는 말로 이해되게 설명하려고 무지 애를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눈에 밟히는 건 몸으로 배우는 게 더딘 아이들이다. 몇 번을 도와줘서 알려주고 난 이후에는 숙달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다. 잠시 돌아서서 다른 학생들을 보다 보면 어느새 친구들이 가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알려주고 있을 때도 있다. 내가 말로 하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본능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언젠가 해보았던 것처럼 친구에게 다가가 알려주고 따라 하고 그렇게 함께 학습한다. 역시 그걸 보고 내가 할 일은 '그래, 그거야!' 정도 랄까. 수업을 하는 동안에는 계속 몸을 쓰도록 지시하고 격려하고 있지만 실상 늘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내가 말로 한 것과 말로 하지 않은 것,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수업의 목표가 분명할수록 가끔 깜빡하기도 한다. 번번이 실패하더라도 동시에 매번 성공하는 일이 수업에선 가능하다는 것을. 동작을 말하는 내 언어가 좀 미흡해도 아이들은 상관없이 성장한다. 말하자면 '체육 수업에서 아이들의 두 발은 늘 시도와 실패, 성장 번갈아 딛고 있다.'라고나 할까. 그러니 틀림없이 최소한 한 번은 성장을 딛고 나아가는 것이다.


늘 무언가를 더 정확하게 자세히 알려주고 싶다는 교사스러운 강박이 어깨를 누르다가도 결국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부담을 조금 내려놓게 한다. 동작을 말로 하는 것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은 몇 번이든 시도할 수 있는 분위기와 협력하는 태도를 갖도록 하는 걸지도 모른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언어보다 수업 공기의 질감을 바꾸는 언어가 필요한 것일까? 분위기라는 건 시범보일 수도 없으니 결국은 다시 말을 골라 수업에 들어가는 수밖에. 그렇다면 다음번에는 '그래, 그거야, 잘했어!'하는 칭찬을 더 많이 해보자. 동작을 해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내 언어는 그걸 잊지 않도록 하는 데 쓰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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