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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처 May 17. 2024

나는 체육교사입니다

체육을 가르친다는 것

올 한 해 초등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게 되었다.

어떤 것을 가르친다고 말했을 때 듣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역사라든가, 수학, 또는 요리 같은 것들. 그에 비해 체육을 가르친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뭉뚱그리고 있거나 부정확하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축구를 가르쳐요, 배드민턴 코치입니다, 태권도를 가르쳐요, 라고 하면 아, 그러시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갈 것만 같다. 저는 체육을 가르쳐요, 라는 말은 마치 저는 음식을 가르쳐요, 와 같은 느낌 아닐까? 왠지 범주가 살짝 벗어나 있는 그 느낌. 뒤에 한 마디 덧붙이는 미세조정을 해줘야만 듣는 사람이 편안해질 것 같은 불편함이랄까.


작년까지 초등학교 담임을 하다가 학교를 옮기면서 올해는 체육 전담 교사가 되었다. 자의라기보다는 상황과 여건에 맞춘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볼 때 초등학교에서의 체육 전담은 대체로 비선호인 편이다. 1년 내내 운동장에서 먼지 마시면서 수업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육체적으로 체력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마음껏 뛰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통제하며 다치지 않게 신경 써가며 수업해야 하는 교과 특성에 부담이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주로 남자 교사가 맡거나 중등 자격증을 가진 기간제 교사가 맡게 되는 일이 흔하다. 나로서는 전에 해본 적 없는 체육 전담을 맡기로 하면서부터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에 빠졌다. 뭘 가르친담.


초등학교에서의 체육 수업을 떠올리라고 하면 흔히 피구를 하거나 남자 애들끼리 축구를 하는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런 게 가장 만만하게 한 시간 때우는 건 아이들끼리 공놀이를 하게 하는 것이다. 요즘도 아예 없다고 할 순 없겠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체육 수업은 그렇게 지나갈 때가 많았다. 나는 스스로 목표를 세웠다. 적어도 처음 한 달간은 피구 하지 않는다. 피구가 무슨 죄라고. 혼자 결연히 다짐하고 꿋꿋이 밀고 나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약속을 혼자 지키며 여태껏 두 달 동안 아이들에게 피구를 시키지 않았다. 대신에 매번 준비해 간 놀이와 운동을 알려주면서 적당히 뛰어놀게 하고 때로는 꽤 열심히 운동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 담임으로 체육 수업을 할 때와 다른 나름의 고충과 노하우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다.


체육을 가르친다는 것. 특히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체육의 의미라는 건 어른들의 체육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체육이란 곧 신나는 시간이다. 그런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다보면 매번 공만 쥐어주는 우를 범할 수 있는데 사실 의외로 피구는 아이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이다. 잘못하여 오히려 체육 시간 자체에 대해 호불호가 나뉘어 버리면 다른 교과에 비해 수업 진행하기가 어려워진다. 교사로서 제공해줘야 하는 건 마냥 신남만이 아니다. 자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일, 어려운 동작과 과제를 수행한 뒤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일,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자기 몸을 돌보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는 일, 규칙을 지켜가며 또래와 적절히 소통하도록 하는 일, 온전히 힘껏 몸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가며 건강히 성장토록 하는 그야말로 교육에서 말하는 전인교육이 곧 체육의 목표이지 않나?


의미에 골똘해지다 보면 이렇듯 거창한 방향으로까지 사고가 전개되곤 한다. 그렇지만 몸짓과 움직임 하나에도 의미가 담길 수 있다고 믿으며 나는 아이들에게 체육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런 면에서 축구를 가르쳐요, 배드민턴을 가르쳐요, 가 아니라 체육을 가르쳐요, 이 말이 딱 적절하고 맞는 얘기다. 솔직히 남들 앞에 스스로 체육인이라고 할 만큼 운동을 잘하지도 많이 하지도 못 한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가며 수업이 끝난 오후 혼자 체육관 바닥을 닦곤 한다.


체육에 대해 나름의 미세조정을 하고 나니 찾아오는 편안함과 동시에 부담감도 더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렇다고 달리 뭐라고 말하겠나. 난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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