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청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집은 깔끔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내가 집을 정리 정돈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끔 청소와 정리 정돈을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청소를 세신으로, 정리를 다이어트로, 정돈을 필라테스로 비유한 어느 전문가의 말을 들은 이후부터 나도 헷갈리지 않게 되었다. 2년 전 정리수납 자격증 2급을 취득할 때도 매우 재밌었고 이를 통해 배운 지식을 우리 집에 잘 적용하는 열의가 현재도 가득하다.
내가 처음부터 정리정돈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미니멀라이프에 한창 관심이 생긴 이후부터 이와 관련한 책과 동영상을 많이 보고, 집의 물건을 줄이기 위한 중고거래 앱도 자주 이용하였다. 아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책장이 무려 4개나 있었으나 지금은 1개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웠던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현재의 나름대로 깔끔한 집을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습관이 어느덧 몸에 배었고 이는 나의 행복한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의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주방으로 가서 전날 설거지 후 마른 그릇들을 제자리에 넣는다. 아침식사를 위해 그릇을 다시 빼더라도 그릇들에게 자기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우리 집의 모든 물건에는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 물건의 자리를 찾아줄 때 다 내 손을 거쳐 가서 우리 집에 있는 물건이 어디에 얼만큼 있는지 알고 있다. 견본주택이나 잡지, SNS에 나오는 집처럼 물건이 최대한 없는 것이 깔끔한 집의 기본 요소가 될 수 있으나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가 어릴수록 더더욱 힘들다. 대신 모든 물건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주면 해결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물건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3-4년 전쯤 집안의 물건을 상당히 많이 정리했었다. 일종의 물건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중고로 많이 팔기도 하고 중거거래에 지칠 때쯤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를 하니 마음이 더 좋았다. 책과 레고작품으로 가득한 책장 3개,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던 이불청소기, 결혼할 때 입었던 한복, 화장대, 수많은 옷가지를 포함한 잡동사니를 정리하니 내 삶은 더 가벼워졌고 청소하기도 수월해졌다. 결혼할 때 제법 비싸게 샀던 가방도 내놓으니 엄마가 놀라시며 아깝다고 챙겨가신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 왜 그동안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들을 이고 지고 살았는지 나 자신을 많이 반성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다이어트에 성공을 하더라도 요요가 오듯이 방심한 사이에 물건 요요가 우리 집에도 왔다. 물건이 세포분열하는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서랍을 보면 물건이 많아진 게 보일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 주는 옷들, 어디서 받아온 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수건과 텀블러 및 장바구니들, 아이의 새로운 문제집이나 학용품들, 그 사이 새로운 취미가 생겨 그에 따라오는 온갖 장비들은 우리 집을 또다시 살찌우게 만들었다. 일상에 지쳐 집을 잘 돌보지 못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물건을 사는 날, 여행 갔을 때를 조심해야 했다. 이럴 경우 정리정돈과 미니멀리즘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보며 많은 팁들을 얻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다.
수많은 팁 중 가장 중요한 건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사지 않는 것이다.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안 좋아서, 유행해서, 남들이 사서, 단지 예쁘고 귀여워서 사는 물건들이 만들어준 행복한 기분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음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매우 잘 알고 있다. 새로운 물건들도 시간이 지나면 여느 물건처럼 다 똑같아진다. 집도 마찬가지고 차도 매한가지다. 새 집과 새 차를 사더라도 그 새롭고 행복한 기분은 길어도 1-2년을 넘어서지 않는다. 물론 이는 개인의 성향과 취향이므로 물건을 수집하고 많이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양도 존중한다. 나 또한 아직 로켓배송이 되는 어플을 자주 이용하며 아직도 물건을 많이 구입한다. 다만 예전보다 많이 신중해졌고 기분에 좌우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집안의 물건이 쌓이지 않도록 자주 서랍과 창고를 들여다 보고 우리 집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 판단되면 무료 나눔을 많이 한다. 3년 전에 대대적으로 정리한 이후 조금만 신경을 쓰면 물건을 감당할 수 있는 깔끔한 집을 유지할 수 있다. 취미부자로서 물건이 적은 것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으나 정돈을 잘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재봉틀과 같은 취미는 방 한 칸을 내주어야 하고 그에 따른 원단과 부자재도 만만치 않다. 골프와 같은 운동 장비와 라탄공예도 커다란 부피를 자랑한다. 스윙댄스나 무에타이, 줌바댄스와 같은 운동에 관련한 옷도 참 많이 샀다. 그럼에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각자 자리가 있고, 끊임없이 아주 사소한 것의 비움을 현재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약품이나 화장품, 1년 동안 입지 않은 옷들, 나무젓가락이나 빨대 같은 일회용품 등을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비움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쓰겠지 하고 모아둔 일회용 도시락도 정리정돈의 신이 강림하면 정리 대상 1순위가 되곤 한다.
이번 주말에도 3건의 중고거래앱 무료 나눔을 하였다. 무료 나눔은 역시 비움 하기에 최고이다. 베란다에 있던 우리집의 유일한 큰 화분을 올리자마자 거래가 성사되어 우리 집 베란다가 더 환해졌다. 한창 식물을 키운다며 수경재배를 했었는데 지금은 많은 식물비움을 하고 4개의 작은 식물만 우리 집에 함께하고 있다. 몇 년 전 목공연수에서 만들었던 사과상자, 미니테이블, 나무 서랍 등을 나눔 하니 마음이 더 가벼워졌다. 나는 비움을 해서 좋고, 필요한 분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들어서 무료 나눔을 매우 선호한다. 중고거래의 특성상 시간약속을 잡고 거래하는 것이 매우 스트레스였는데 무료 나눔은 비대면으로 거래할 수 있어 애정하고 있다. 이 기세를 몰아 집안의 잡동사니를 모아보니 꽤나 많이 나온다. 올해의 탁상달력, 사용하지 않는 새 골프 마커, 스펀지비누케이스, 새 텀블러, 노래방 마이크, 식물 영양제, 와인오프너 등을 사진 찍어 일괄로 무료 나눔을 올리니 바로 연락이 온다. 신기한 건 이렇게 많은 비움을 해도 나중에 아쉽거나 생각나는 물건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정리 정돈에 비해 청소는 많이 하지 않는 편이어서 한 번씩 창틀이나 화장실을 보면 매우 더러울 때가 있다. 남편과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이 있어도 왜 이런 더러움은 나에게만 보이는지 정말 신기할 뿐 가족들과 나를 위해 청소를 하는 것이어서 억울한 마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청소 후 말끔한 집에서 혼자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순간이다. 현관은 집의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하고, 깨끗해야만 좋은 에너지가 들어온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우산 보관함에 빗자루를 항상 두어 더러운 것이 보일 때마다 쓸고 있다. 현관의 걸레질은 거의 하지 않고 더러운 것이 묻어있을 때만 물티슈로 한 번씩 닦고 있다. 청소에 나의 에너지를 많이 쏟지는 않는다.
무선 청소기를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5분에서 10분 정도 돌리고 피곤할 때면 주말에 몰아서 할 때도 있다. 먼지통을 비울 때면 우리 집의 먼지량에 놀라기도 한다. 물걸레질은 로봇 청소기로 주 1회 정도만 할 정도로 청소에 대해서는 게으름을 피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청소아이템인 돌돌이를 자주 하는데 무선 청소기를 돌린 후에 해도 돌돌이에 어찌나 많은 머리카락과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들이 묻어 나오는지 참 재미있다. 돌돌이 사용 후 한 겹 씩 벗겨 낼 때마다 약간의 쾌감도 든다.
청소는 자주 하지 않지만 나름의 깔끔한 집 상태를 항상 유지할 수 있는 건 물건 제자리 찾아주기, 물건 신중히 사기, 물건 자주 비움하기에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기에 가족 구성원의 물건을 함부로 비움 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아이방에 있는 수많은 피규어나 보드게임들은 내가 건들면 절대 안 된다. 먼지가 쌓여가는 레고 작품들을 보면 한숨이 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존중의 대상들이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내 생각과 다를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집 상태는 집주인의 상태라는 말이 있다. 내가 집을 돌보는 건 나를 돌보는 것과 같다. 쾌적하고 깔끔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집의 크기나 가격은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다. 30년이 넘은 30평대의 아파트지만 아끼고 돌보면 이 세상 어느 공간보다도 나와 사랑하는 가족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된다. 청소와 정리정돈 후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는 해본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고귀한 시간이다.
물건 대신 좋은 에너지와 따뜻한 기운이 가득 찬 공간을 위해
오늘도 서랍을 한 번씩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