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정리신이 강림하여 집에서 안 쓰는 잡동사니들을 모아 중고거래 앱인 당근에서 무료 나눔을 하였다. 베란다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과시하는 화분을 무료 나눔으로 올리니 바로 연락이 온다. 몇 년 전 언니집에서 가져온 식물로 화분 자체가 찻잔 모양이어서 매우 독특하고 이뻤다.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쑥쑥 자라 새순을 보는 맛으로 키우는 화분이었는데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는지 보다 깨끗한 베란다를 위해 과감한 비움을 하고 싶었다. 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사진을 찍고 당근에 올리니 채팅 3개가 거의 동시에 울린다. 무료 나눔이기 때문에 대략적인 시간을 잡고 현관 앞에 두면 비대면으로 자유롭게 가져가는 식이라 판매자와 구매자의 부담이 덜하다. 이 중 내가 나눔을 드리고 싶은 사람의 기준이 되는 것은 얼마나 물건을 빨리 가져갈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채팅을 빨리 준 사람 가운데 오늘 중으로 가져갈 수 있는 분을 선택하여 '되도록 빨리 가져가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답변을 드리고 화분을 현관에 두었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구매자는 화분을 가져가면서 '감사하다'는 톡을 남겼다. 이를 통해 우리의 거래는 깔끔하게 끝났다. 아무리 무료 나눔과 비대면이지만 약속한 시간 안에 물건을 가져가고, 감사인사를 남기는 것은 당근 앱을 이용하는 사람의 기본 매너이다.
분기별로 오는 정리신이 올 때 가장 비움이 잘 된다. 평소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던 물건들이 이 시기에 빨리 비움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몇 년 전 목공 연수에서 직접 나무를 재단하고 만들었던 여러 가지 나무 소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편백나무를 사용한 사과상자와 미니테이블, 미니선반, 경첩이 달려있는 미니 서랍장을 무료 나눔으로 내놓았다. 나무가 주는 편안함과 따뜻함이 좋아서 잘 사용하지 않지만 보관을 잘해두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바로 사진을 찍어 당근 무료 나눔으로 올리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채팅이 빨리 온다. 무료 나눔은 사진을 대충 찍어 올려도 연락이 금방 오는 특징이 있다. 선택받지 못한 분들께는 '불발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톡을 남긴다. 대략적인 시간 약속을 당일 오후 5시로 잡고 물건 장소를 알려드렸다. 보통은 약속시간에 거의 맞춰 물건을 내놓았으나 오후에 일정이 있어 약속된 장소에 물건을 미리 두었더니 한 3시쯤 물건을 잘 가져갔다고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다. 미리 물건을 내놓지 않았다면 곤란한 상황이 되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 역시 수월하고 깔끔하게 거래가 성사되어 좋았다.
진짜 무료 나눔이 쉽지 않다고 느낀 것은 세 번째 나눔 때였다. 집안을 둘러보며 여기저기 잡동사니를 모아보니 새 물건이 많아 그냥 버리기가 매우 아까웠다. 언젠가 박람회에 가서 받았던 새 텀블러, 몇 번 사용하지 않은 노래방 마이크, 나비 모양의 새 골프 마커, 수제비누, 2025 탁상용 달력, 스펀지 비누 새 케이스, 와인오프너, 신발 깔창, 트지도 않은 식물 영양제 등 잡동사니가 한가득 나와 사진을 찍고 무료 나눔으로 올렸다. '일괄적으로 다 빨리 가져가실 분'을 조건으로 내놓으니 조금 있다가 한분께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제가 나눔 받고 싶습니다."
"언제 오실 수 있나요? 가급적 빨리 가져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가져가도 될까요?"
그날이 목요일이었지만 일요일에 가져가시라고 답변을 드리고, 일요일 날 오실 때 약속 장소를 알려준다고 하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빨리 가져가는 게 제일 좋았지만 톡을 제일 먼저 주신 분이어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예약중'으로 바꾸었다. '예약중'으로 바꾸면 다른 분들에게 톡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왠지 느낌이 싸하였지만 약속을 해버린 상태였다. 역시 싸한 느낌은 그동안 내가 인생을 살아온 나만의 데이터 베이스로서 매우 과학적인 것이었다. 결국 일요일 점심때가 되어도 연락이 없어 내가 먼저 연락을 하였다.
"오늘 언제쯤 오실 수 있나요? 가급적 빨리 가져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안 가져가시면 다른 분께 나눔 하겠습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에 꼭 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연락이 없길래 다시 내가 먼저 톡을 보냈다.
"언제 오실 수 있나요?"
"제가 갑자기 감기 몸살이 나서 못 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사를 해서 감기 몸살이 났습니다."
역시 싸한 나의 느낌이 맞아 별로 화도 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하고 채팅에서 나온 후 다시 나눔을 하기 위해 판매내역을 끌어올리기 하였다. 조금 있다가 다른 분께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제가 받을 수 있을까요?"
"네, 빨리 가져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갈까요? "
이때 시각이 정확히 저녁 9시 20분이었다.
"지금도 상관없어요. 문 앞에 두겠습니다."
"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주소를 알려주고 문 앞에 물건을 두었다.
"가지고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때 시각은 9시 51분이었다. 연락과 거래까지 30분 밖에 걸리지 않은 세상 쿨한 거래였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 남에게는 도움이 되는 나눔이 되므로 버리는 것보다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무료 나눔도 쉽지 않다.
오늘 무료 나눔 실패는 그래도 양반에 들어간다. 나름대로 사정을 설명하고 미안하다는 사과까지 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아빠가 해외여행 후 딱 한번 사용했던 캐리어를 무료 나눔으로 내놓았는데 가져가겠다는 사람에게 미리 약속장소를 알려주고 물건을 내놓으니 아무 말 없이 잠수를 타버린 경우도 있었다. 매우 당황했지만 이 또한 경험이 되었기에 장소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비우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주변 지인에게 줄 수도 있고 중고거래 앱을 이용할 수 있다.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곳에 기부를 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방법이고 연말정산 시 기부금 혜택이 있는 등 좋은 나눔이 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간편하고 깔끔한 방법은 당근 앱을 이용한 무료 나눔이다. 물론 가격을 매겨 팔 수도 있지만 이는 생각보다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한다. 내가 그동안 만난 판매자 및 구매자는 대부분 매너를 지키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 이제는 팔 수 있는 물건이어도 그냥 비대면 무료 나눔을 선호하는 편이다. 약속 시간을 잡고 대면으로 만나는 것도 이제 나에게 상당히 피곤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근 중고거래 앱을 사용하면서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무료 나눔이지만 잘 쓰겠다는 감사인사를 받으면 따듯해짐을 느끼고 내가 원하는 비움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어 애용한다. 구매자보다 판매자로서의 역할을 많이 하는 편이며 중고거래에 관한 웃긴 에피소드를 접할 때 매우 공감을 한다.
사람 냄새가 나고 물건의 가치를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이 앱에서 많은 사람들이 약속 시간을 잘 지키고 매너 있는 쿨거래를 하면 좋겠다.
[대문사진 출처: 당근 브랜드 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