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긋 Jun 12. 2024

큰일이다, 급식이 너무 맛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신조를 가지고 아침 일찍 교문에 들어선다. 상추와 부추가 심어져 있는 우리 반 텃밭 상자를 둘러보고, 학교 화단에 못 보던 꽃의 사진을 찍으며 소소한 행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퇴근 후 안마의자를 하지 않으면 그다음 일상이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피곤하지만 다행히 올해는 학교 가는 게 정말 즐겁다. 장난꾸러기지만 귀여운 반 아이들, 비슷한 나이대라 공감대 형성이 잘 되는 동학년 선생님들, 개인적으로 커피는 즐겨하지 않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 수 있는 수업카페 덕분이다. 하지만 내가 학교 가는 재미의 1등으로 치는 건 바로 우리 학교 급식이다. 올해 새로 전입해 오신 영양선생님은 외모부터 요리고수 느낌을 풍기셨다. 역시나 3월 급식의 첫날, 나의 촉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급식이 너무 맛있었다. 먹으면서 감탄을 하고, 먹고 나서도 두둑해진 내 배를 어루만지며 "오늘도 역시 훌륭한 급식이었어!"라고 또 한 번 감탄을 한다. 또는 연구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는 동학년 선생님과 "오늘 급식 너무 맛있지 않았어요? 진짜 많이 먹었어요."라며 간단한 담소를 나눈다. 더욱더 행복한 사실은 영양선생님이 나와 같이 전입을 해오셨기 때문에 앞으로 이렇게 맛있는 급식을 4년 동안 먹을 있다는 것이다. 등 따습고 배 부르면 행복해지는 나란 여자, 너무 단순하다.


 그런데 급식이 너무 맛있어서 큰일이다. 조리사 선생님들도 맛있는 부분을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기 위해 사랑을 듬뿍 담아 배식을 해주신다. 때론 그 사랑이 넘쳐 국물을 흘릴 때가 있지만 급식판에 음식을 가득 담아 자리에 오는 동안 내 입가에 미소는 떠나질 않는다. 학교가 아니면 어디에서 이렇게 훌륭한 밥상을 매번 받을 수 있을까? 우리 엄마도 나를 위해 날마다 이렇게까지는 못하실 거다. 사실 학교 급식은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맞춰진 영양소로 구성되어 있어 나 같은 성인이, 그것도 가만히 있어도 나잇살이 찌는 중년의 여자가 배식을 받는 대로 다 먹으면 살이 찔 수밖에 없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나만의 해피 타임을 놓칠 수 없다. 항상 그렇듯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다.


 하지만 옆에서 급식을 먹는 아이들은 몇몇을 빼고 국 칸에 남은 음식을 한가득 모아 그것들을 잔반통에 능숙하게 처리한다. 고기류나 튀김류는 잘 먹지만 나물이나 생선은 별로 손을 대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그냥 버리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예전 초임시절에 먹을 만큼만 받고, 받은 음식을 다 먹도록 지도했었는데 요즘은 아동학대에 걸려 더 먹으라는 소리도 섣불리 할 수 없다. 물론 현재도 먹을 만큼만 배식받고, 받은 것은 맛이라도 보라고 지도는 하고 있으나 내 맘 같지가 않다. 버려지는 양이 상당하다. 아무리 잔반 없는 수요일을 외쳐도 별로 소용이 없다.


 5학년 실과 시간에 '학교급식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식단으로 이루어져 있다'(초등학교실과 5, 동아출판)는 것을 강조해도 아는 것과 생활 속 실천의 거리감이 상당하다. 아이들은 우리 학교 급식이 엄청나게 훌륭한 지 알고는 있을까? 너무나 당연하게 급식을 받고 엄청난 양의 잔반을 버리고 있다. 우리 반에서 끝까지 다 먹는 사람은 무엇이든 잘 먹는 급식 부장과 몇몇의 남자친구들 뿐이다. 아, 나도 있다. 담임교사인 내가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서 급식을 끝까지 오랫동안 먹는다. 물론 억지로 먹는 것도 아니고, 기후위기에 맞서 아주 미약한 나만의 실천 방법으로 잔반 남기지 않기를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학교 급식은 정말 심각하게 맛있어서 내 급식판에는 보통 잔반이 많이 남지 않는다.


5학년 실과책에 나오는 식품구성 자전거


 진짜 문제는 점점 나오는 내 뱃살에 있다. 3월 한 달은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담임 업무를 처리하느라 살이 좀 빠졌었다. 하지만 급식만 보면 눈이 돌아가고 주말마다 시원한 하이볼과 맥주를 찾는 내 모습 때문에 살 빠진 기쁨은 오래 누리지 못했다. 이제 내 몸무게 십의 자리가 5에서 6으로 곧 바뀔 것 같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솔직하게 운동도 많이 하지 않는다)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많이 먹어서임을 부정할 수 없다. '먹어서'라는 말 앞에 '처'를 붙여야 맞다. 일주일에 두 번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로 바뀐 지 오래지만 주민센터나 동사무소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하다)에서 줌바댄스를 배우는데 어제는 유독 나의 육중한 몸이 거울에 가득 비쳤다. 살을 빼야 하는 건 잘 인지하고 있고, 그 방법도 명확히 잘 알고 있다. 다만 실천을 못할 뿐. 어른인 나도 힘들기에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에 거리감이 있는 아이들을 마냥 나무랄 수도 없다. 다이어트 브이로그 영상을 볼 때면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배가 고프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급식을 먹지 못하는 방학 때 살이 빠질 거라 조금은 기대하고 있다. 어쨌든 급식이 맛있을수록 내 위는 점점 늘어났고 그 위를 채우기 위해 더 먹으며 시나브로 살이 찌고 있다. 이를 통해 또 한 번 인생의 깨달음을 얻는다.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다.


작가의 이전글 대한민국 아줌마의 피아노 도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