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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10. 2024

나이가 들면 발표불안도 옅어지나요?

생애 첫 교외공개수업

 국민학교 통지표의 행동발달특성을 보면 나는 어린 시절 일처리도 빠르고 꽤 똘똘한 아이였던 것 같다. 손을 들어 발표도 곧잘 하고 학급반장도 하는 등 나서는 데에 주저함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대학교 시절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수줍고 내향적인 사람으로 점점 변해갔고 어느 순간 남들 앞에 나서는 걸 꺼리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여전히 내 의견을 자신있게 말하거나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면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도 금세 붉어지는 나에 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내세우며 표현하는 사람이 제일 멋지고 부럽다. 발표불안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아주 취약한 약점이다.

 

 보통, 초등교사는 1년에 학부모 공개수업을 포함해 기본적으로 2번 이상 자신의 수업공개한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발표불안이 있는 나는 초임 시절부터 공개수업이 교직생활에서 가장 큰 부담이었고 끝나고 나서도 벌게진 얼굴을 감출 수 없어 부끄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열심히 준비를 하지만 항상 나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로 다가왔고 그 결과는 공개수업에 대한 어려움을 더 키우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공개수업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짧지 않은 교직 경력 덕분일까? 물론, 여전히 약간의 부담은 존재하고 공개수업이 끝나면 조금 상기된 볼을 가진 나를 발견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올해도 학부모공개수업을 하였는데 거의 20분의 학부모들이 오셔서 교실에 다 들어오지 못하고 복도에서까지 참관을 하셨다. 예전 같으면 당황했을 텐데 이제는 공개수업 중 궤간순시도 잘하고 학부모님들과 농담도 주고받는 여유까지 부린다. 저경력 시절 공개수업을 할 때면 나의 수업이 곧 나라고 생각하였고, 그것을 평가하는 많은 눈들에 기가 죽어 교실 뒤쪽으로 궤간순시를 하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일상 수업과 다른 텐션, 어색한 수업 진행이 나를 더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면 이런 느낌도 옅어지나? 경험이 쌓이면 남들이 나를 평가한다는 것에 무뎌지나? 평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뿐임을 경험을 통해서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드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제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나에게 공개수업은 예전만큼 더 이상 큰 부담이 아니다.


 올해 열정적이고 좋은 동학년 선생님들을 만나 수업성장인증제와 동학년수업살이라는 사업에 공모를 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수업성장인증제는 수업참관, 수업공개, 수업성찰을 통해 일정한 점수가 쌓이면 인증이 되는 사업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도전을 해보았다. 여러 활동은 나의 수업을 성장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으며 수업뿐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도 조금씩 발전시키는 데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동학년수업살이는 말 그대로 우리 5학년끼리 합심하여 우리가 정한 주제에 맞는 수업을 잘하기 위해 지원금을 받고 활동하는 것이다. 동학년수업살이를 하자고 2반 선생님이 처음 제안을 하셨을 때 내용도 별로 살펴보지 않고 흔쾌히 "YES"를 외쳤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할 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거리낌이 없이 일단 저지르는 내 성격이 여기에서도 보인다. 주제를 정하고 일상의 수업을 보다 더 의미 있게 하기 위해 우리 동학년이 뭉치는 게 매력적이었다. 물론 평소에도 전학공(전문적학습공동체)을 통해 수업 연구를 함께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동학년이 으쌰으쌰 하는 모습이 오랜만에 동학년을 갖게 된 나에게 또다른 소속감을 느끼게 하였다. 다만 계획서 작성을 비롯하여 예산을 항목에 맞게 잘 사용한 후 정산을 하고, 나중에 보고서도 써야 하며 수업살이에 관한 출장도 다녀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동학년 선생님들 덕분에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일이 술술 풀렸다. 항목 중에 교외공개수업도 있었는데 덕분에 생애 최초로 교내를 넘어 교외를 대상으로 공개수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 수업살이 사업에 공모를 할 때 교외공개수업 일정도 제출하였는데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일상수업공개를 하는 것이라 대상이 교외든 교내든 상관이 없었고, 무엇보다 수업살이 경험이 있었던 2반 선생님의 "교외에서는 별로 오시지 않는다"는 말을 내심 믿고 있어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수업살이 교외공개수업 일정이 다가오자 수석 선생님의 면담 요청이 있었고 우리 동학년은 지도서과 지도안을 들고 수석실에 가 수석선생님의 수업에 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교장, 교감선생님께 미리 수업공개 기안을 올렸고 내부결재가 끝난 상태였지만, 일이 점점 커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수석선생님과의 면담 후 공개수업 전 관리지분들께 지도안 가져다 드리기, 교내 전체 메신저로 수업공개 일정 한번 더 안내하기, 1층에 공개수업장소 프린트 하여 부착하기, 배움터지킴이 선생님께 교외에서 차량이 올 수 있다는 것 미리 말씀드리기 등 할 일이 많아졌다. 그냥 나는 단순히 일상수업공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조금씩 일이 커져가는 걸 보는 건 아무리 부담이 적다 해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교외공개수업 당일,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약간의 귀여운 거짓말을 했다. "우리 5학년 1반 친구들의 수업태도가 너무 좋다고 소문이 나서 오늘 다른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수업을 보러 오실 거예요. 바른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5학년이지만 아직 순수한 우리 반 아이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우아한 모습으로 교실로 들어오신 교장선생님을 필두로 수석선생님과 교감선생님, 교무부장님이 등록부에 사인을 하셨다. 하지만 교외공개수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른 학교에서는 한 분도 오시지 않았고 등록부는 4분이 전부였지만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라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에 손을 들어 발표를 하지 않는 친구들도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내가 의도한 학습목표와 동학년수업살이의 주제에 맞게 큰 무리 없이 내 생애 첫 교외공개수업 같지 않은 교외공개수업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끝난 후 교장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는데 3반 선생님의 교장선생님 성대모사가 떠올라서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우리 5학년 1반 친구들~ 자랑스럽습니다아~ 사랑합니다아~ 바른 자세로 수업에 잘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


 부담은 안되었어도 교외수업공개가 끝나서 마음이 후련하였다. 일말의 실수나 후회가 남지 않는다. 완벽한 수업을 했다기보다도 이미 끝난 수업에 대해 실수를 복기하지 않는다. 덕분에 학교재량휴업일을 포함한 4일간의 연휴를 맘 편히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다. 아직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편안해졌다. 특히 공개수업은 저경력 시절에 했었던 쇼타임이 아니라 일상수업을 보여주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더 공개수업에 대한 부담은 적어지고 있다. 남들이 나의 수업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던 뭐가 대수인가? 내가 우리 아이들과 교실에서 현재 행복하게 잘 지내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거지.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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