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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19. 2024

그 참새는 어디에서 왔을까?

 갑자기 복도가 시끄러워진다. 여느 쉬는 시간과는 다른 시끄러움이다. 많은 아이들이 우르르 복도로 몰려나온다. 무슨 일이 있는지 나가보니 참새 한 마리가 복도를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파리 한 마리만 교실에 들어와도 난리법석인 우리 아이들인데 참새가 복도를 날아다니다니, 소리 지르며 참새를 보려고 달려 나오는 아이들로 인해 전쟁터가 따로 없다. 모든 5학년 선생님들이 나와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참새가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창문을 열어둔다. 나는 이동수업을 준비하던 우리 반 아이들에게 다시 교실로 들어가 줄을 서라 하고 참새가 잠시 어딘가 숨어 있는 틈을 타 아이들에게 영어체험실로 가라고 재촉을 한다.


 4교시가 시작되고 복도에서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복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아이들이 영어체험실에 가있는 동안 복도에 있는 우리 반 사물함 위 화분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2반 쪽 사물함 위에 숨어 있던 참새가 다시 날아오른다. 순간 내 입에서 악- 소리가 나오며 경기 수준의 점프를 한다. 평소에도 담이 약한 내가 이걸 보고 안 놀라는 건 말도 안 된다. 당연히 참새가 창문을 통해 나갔을 거라 생각한 나는 무방비 상태였고 나의 소리는 수업 중인 5학년 복도를 가득 채웠다. 나중에 옆반 선생님이 "그거 선생님 목소리였어요? 나는 무슨 물건을 깨뜨린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다.


 그때 조용한 성격의 2반 남학생이 복도에 있는 사물함 물건을 빼러 나오면서 나의 놀람을 목격하고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항상 선비같이 조용한 그 남학생에게 나의 화들짝 놀란 모습을 온전히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 남학생은 이런 나를 보며 "아이고야" 탄식이 섞인 한마디를 옅은 웃음과 함께 내뱉고, 자신의 일을 본 후 다시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 아이의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창피함이 밀려왔다. 순간 너무도 어른스러운 반응에 웃음도 터져 나왔다. 이 아이는 반응도 참 양반스럽구나. 숨어있다 다시 날아오른 참새는 그 아이랑 더 가까이 있었는데 과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어른인 내가 오히려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서 부끄러웠다. 만약 어떤 아이가 나처럼 소리를 지르며 반응을 했다면 그 아이의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부르며 한마디 했을 거다. 항상 그 입장이 되어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도 보인다.


 가끔 파리나 꿀벌 같은 곤충들이 교실에 들어와 우리를 놀라게 하기는 하지만 참새를 복도에서 만난 건 내 교직생활 중 처음이다. 어떻게 4층 복도로 들어와서 창문도 못 찾고 이 고생을 하는 걸까? 복도의 창문은 다 방충망이 있는데 아직도 의문이다. 나와 아이들은 참새가 정신을 못 차리고 여기저기를 날아다니고 있을 때 혹시라도 우리를 쪼아댈까 봐 무서웠는데 정작 그 참새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두렵고 당황하여 복도를 종횡무진 날아다녔을 것이고 그 행동은 우리를 더 무섭게 만들었다. 다행히 영어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입에서 별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참새는 무사히 탈출을 한 것 같다. 그 참새도 오늘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난 '참새 복도 습격 사건'은 나에게 옆반 남학생의 웃는 모습을 발견한 뜻밖의 기회가 되었다. 옆반이라 오며 가며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그 아이의 행동이 항상 차분하고 어른스러우며 조용해서 오히려 내 눈에 띄었다. 반에서 나온 우유갑을 깨끗이 씻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 요즘 아이 같지 않는 분위기를 느꼈다. 찰나지만 이 아이의 입가에 슬며시 번진 그 희미한 웃음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한동안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많이 겪어보지는 않았으나 그 남학생은 기질 자체가 조용하며 성실한 것 같다. 5학년 남학생이 가지고 있는 장난꾸러기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괜히 믿음직스럽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지만 듬직함도 느껴진다. 과하지 않고 차분한 그 아이의 기질에서 여유와 담대함도 볼 수 있어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하다.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몸개그로 그 아이에게 신선한 웃음거리를 선사해 준 것 같은 나만의 뿌듯함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친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지만 우리 둘만의 이야기가 생긴 것 같아 나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도 생겼다. 다음에 그 아이를 복도에서 만나면 반갑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야겠다.


 OO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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