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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06. 2024

자격증

일정한 자격을 인정하여 주는 증서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 메신저는 아침부터 바쁘게 일을 한다.

2024학년도 초등 교육공무원 인사기록 변경 신청을 다음과 같이 안내하오니, 해당 교육공무원(교원)은 기한 내 신청하여 정비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림이 뜨자마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읽어보고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 거라 생각한 내 뇌는 내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에게 메시지 창의 엑스자를 누르라고 빠른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매년 하는 의례적인 일로서 특별한 인사기록 변경이 없었기에 오늘도 메시지 한 건은 쉽게 패스를 한다. 하지만 나의 손가락은 다시 메신저의 창을 열었고, 내 눈은 메시지 내용을 꼼꼼하게 읽고 있었다. 나의 20년 가까운 교직생활에서 인사기록을 정정한 일이 별로 기억에 남질 않는데 이번에는 웬일로 자격취득 영역을 추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도 가끔은 나를 잘 모르겠다.


 이미 인사기록에 올라와 있는 자격증은 총 4개!
줄넘기 지도사 자격증 2, 3급
컴퓨터활용능력 2급, 사무자동화산업기사

 초임시절 음악줄넘기가 한창 붐이었다. 음악줄넘기 연수도 방학을 이용해 열심히 받았고 그 결과 자격증도 그리 어렵지 않게 딸 수 있었다. 줄넘기 지도사 자격증 2급을 따기 위해서 여러 항목 중 이중 뛰기 20번을 연속으로 해야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얼마 전 강당 체육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과 줄넘기 수업을 하면서 이중 뛰기를 거의 10년 만에 시도를 해보았는데 3-4번이긴 하였지만 성공하였다. 아직 몸이 기억한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아이들의 와- 하고 놀라는 감탄 소리는 소소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담임을 오랜만에 맡은 터라 체육수업이 항상 쉽지 않은 나에게 줄넘기지도사 자격증은 요즘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아이들과 줄넘기 수업을 할 때 내가 제일 열심히 참여하기에 체육 시간이 끝난 후엔 믹스커피를 찾지 않을 수 없다. 커피를 별로 즐겨하지 않지만 믹스커피는 학교생활을 잘하기 위한 나만의 상비약이다. 우아하게 커피 머신에서 아메리카노를 내려 시나몬 가루를 무심하게 툭툭 두 번 친 후  마실 수도 있지만 급속충전을 하기 위해서는 믹스커피만 한 게 없다.

 

 컴퓨터활용능력 2급과 사무자동화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증은 대학교 시절 컴퓨터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자격증 공부를 한 결과이다. 아마도 임용고시 볼 때 가산점을 준다고 했었던가? 왜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열심히 땄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 학원에서 함수, 엑셀, 파워포인트 등 여러 가지를 배웠었는데 자격증을 위한 공부여서 지금은 딱히 생각나질 않고 별로 활용도 하지 않는다.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다 잘하는 건 아니다. 아끼면 똥이 되는 것처럼 자격증도 제대로 쓰지 않고 묵혀두기만 하면 똥이 되는 것 같다. 아무튼 현재 직장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능력은 경험치가 쌓이면 자연스레 습득되는 것으로 자격증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인사기록에 추가할 자격증은 총 5개!

정리수납전문가 2급, 라탄소품공예 2급, 성교육 및 성상담지도사
점핑(트램펄린) 자격증, POP 예쁜글씨 3급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인사기록 변경 신청에 관한 메시지를 받은 날, 퇴근 후 집에 가자마자 그동안 취득한 자격증을 찾아보았다. 아이 방 책장의 A4 파일에서 착실하게 자격증들이 나를 맞이하여 주었다.


 사실 '성교육, 성상담지도사'는 언제 취득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자격증이었다. 자격증 날짜를 보니 무려 14년 전이다. 솔직히 이걸 왜 공부했는지, 어떻게 공부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질 않았지만 이왕 인사기록을 정정하는 거 목록에 넣기로 한다. 참으로 나도 열심히 살았구나.


 POP(point of purchase advertising, 구매시점광고) 예쁜글씨는 저경력 교사일 때 학교 교사 동아리에서 시작한 취미활동이었다. 그때 한창 눈에 확 띄는 '예쁜글씨' 쓰는 것이 엄청난 인기여서 방과 후 교실 프로그램에도 학생들이 많았고, 카페의 메뉴판이나 상점의 안내 등에도 많이 쓰였다. 나에게도 이 자격증은 매우 유용하여 교실의 환경정리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요즘은 교실환경 정리할 때 별로 활용하지 않지만 미술시간이나 전지에 눈에 띄는 큰 글씨를 쓸 때 아직도 도움이 많이 되는 재주이다. 물론 POP글씨와 비슷한 폰트가 많이 있지만 손으로 직접 쓴 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트램펄린자격증, 이건 또 뭔가?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나는 점핑운동하는 곳의 자칭, 타칭 에이스였다. 트램펄린(일명, 방방이) 위에서 다양한 점핑동작을 하고 기합소리도 힘차게 내면서 나름 관리를 열심히 했었다. 원장님의 추천으로 트램펄린 자격증에 도전하였고 적지 않은 돈과 많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자격증을 어렵지 않게 딸 수 있었다. 트램펄린 자격증이 점핑다이어트 운동하는 곳에 게시되었고 원장님은 운동비를 10% 할인해 주었다. 점핑운동을 안 한 지 거의 5년이 다 되어간다. 현재는 별로 사용되지 않은 자격증이다. 그냥 운동만 다니면 됐는데 왜 자격증까지 땄을까? 같이 자격증을 따셨던 분들은 다들 점핑다이어트 창업을 하려고 오신 분들이었는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을까 생각하니 모든 것에 의욕적인 나의 기질로부터 온 것이라 결론을 낸다.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라탄소품공예 자격증도 교직생활에 매우 쓸모가 많았다. 코로나 직전의 여름방학 때 라탄공예 특수분야연수를 다른 학교 선생님이 개설하셨고, 5일 동안 아주 재미있게 라탄바구니 만드는 것을 배웠다. 워낙에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주 매력적인 활동이었다. 한 1년 동안은 라탄 티코스터, 라탄바구니, 라탄전등 등 밤을 새우며 엄청나게 많은 작업을 하였다. 학교에서도 학생들과 라탄동아리를 하면서 나의 자격증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었다. 인터넷의 수많은 라탄 공예 영상을 보며 수없이 많이 만들었던 라탄 바구니를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었는데 그때마다 반응은 정말 좋았다. 확실히 손으로 만든 공예품 특유의 감성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름 집순이 성향이 있는 나에게 영화를 보며 라탄공예를 할 때는 정말 힐링의 시간이었고 그 결과물은 매번 나를 만족시켰다. 그동안 나에게 또 다른 취미활동들이 생겨 라탄공예를 안 한 지 좀 되었지만 언제든 나를 기다려주는 라탄공예 재료들을 보며 나이 들어서도 할 게 많아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정리수납전문가는 가장 최근에 딴 자격증으로 이 또한 나의 성향과 너무나 잘 맞았다. 자격증 취득을 하기 위해 수업을 듣는 내내 너무나 재밌었고, 강사님이 내준 집안 정리 숙제도 신이 나서 했었다. 냉장고 정리, 싱크대 상부장 정리, 옷장정리를 한 후, 정리 전과 후 사진을 찍어서 제출하는 숙제도 좋았다. 숙제를 할 때마다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면 뭐가 달라졌냐는 피드백이 돌아오고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겉뿐만 아니라 속도 단정해지는 우리 집을 보며 뿌듯했던 시간을 보냈다. 모든 물건의 위치과 재고 파악이 쉽게 될 수 있어서 원래 정리 정돈과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내가 가지고 싶던 자격증이기도 하였다. 또한 5학년 실과 '3단원. 생활 자원의 관리 - 옷의 정리와 보관, 정리 정돈과 재활용'을 수업할 때마다 이 자격증을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을 하는데 이때도 놀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역시 교사는 이유 있는 자신감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함을 또 한 번 느낀다.


추가 신청 한 5개 중 하나만 등록 가능?!


 인사기록 정정 신청을 하고, 자격증 사본 제출 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한 달쯤 흐른 어느 날 교실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OO교육청 장학사인데요. 선생님 자격증 5개 추가 신청하셨죠? 인사기록이 될 수 있는 자격취득 내역은 자격증 코드에서 검색이 된 것만 등록할 수 있어서요. 그래서 아쉽게도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증만 인사기록에 등록이 됩니다. 선생님께서 그동안 열심히 자격증 취득하셨는데 그렇게 되었네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지만 큰 타격은 없었다. 원래도 자격취득기록에는 관심이 없었고, 인사카드에 기록이 안된다고 해서 내가 딴 자격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내가 취득한 9개의 자격증을 보며 교사가 된 이후로도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라는 남들이 들으면 어쩌면 식상할 수도 있는 말을 언제나 가슴 한쪽에 품고 산다. 아무리 좋은 교육과정과 교구가 있어도 학생들과 직접 생활하는 교사가 어떻게 그것을 적용하고 전달하는지가 교육에서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교육연수원에서 진행하는 연수를 계속해서 들으며 수업과 교실에 어떻게 적용시키면 좋을까 항상 고민하고 있다. 교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오늘도 요즘 친구들 말로 "갓생"을 살고 있는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멋지다! OO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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