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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30. 2024

잔반 줄이기 대작전

 우리 학교 급식은 정말 맛있다. 진심으로 하루라도 맛없는 날이 없다. 식단을 영양소에 맞게 매번 다르게 짜시는 영양선생님이 대단할 뿐이다. 다만, 성장기 어린이에 맞춘 영양소 가득한 음식을 중년의 여성이 다 먹고 있으니 뱃살이 자꾸 나와 고민이 되기는 하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몇 안 되는 해피타임을 놓칠 수 없기에 행복의 결과인 뱃살을 잠시 모른 척하기로 한다. 

 

 나의 경우 급식이 맛있어서 다 먹는 것도 있지만, 잔반을 안 남기려는 노력은 내 나름의 기후위기에 맞서는 의미 있는 실천이다. 아주 미약하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잔반을 남기지 않기 위해 먹을 만큼만 조리원 선생님께 달라고 하거나 중간놀이 시간에 군것질을 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덕분에 교사인 나는 잔반을 많이 남기지 않는 편인데 우리 반 학생들의 잔반량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급식 지도 시 먹을 만큼만 받으라고 하면 "조금만 주라고 해도 많이 주세요", 잔반을 남기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하면 "그럼 먹기 싫은 안 받아도 돼요?"라는 반응들이 뒤따라온다. 알레르기가 있지 않는 한, 아주 조금이라도 받아서 맛은 보라고 지도는 하고 있으나 내 맘처럼 잔반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학기 초부터 급식을 다 먹는 친구들에게 칭찬스티커를 주는 보상제도도 시행하고 있으나 이는 급식을 항상 잘 먹는 몇몇의 친구들에게만 잘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없어도 급식을 원래 잘 먹는 아이들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잔반을 줄이고 싶은 열망이 강해 잔반 줄이기 대작전을 혼자서 펼쳐본다. 그 시작은 우리 반 아이들이 잔반을 많이 남기는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첫째, 점심시간에 빨리 먹고 빨리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이 크다. 특히, 우리 5학년이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사용할 수 있는 월요일과 목요일은 급식을 3분 내로 먹고 뛰쳐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는 대충 허기만 채우고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하는 그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타이머를 도입하였다. 10분 동안 밥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5분 내로 급하게 먹는 친구들은 사라졌지만 10분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잔반을 모으고 우르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허탈감이 밀려온다. 나와 한두 명의 아이들만 남는다. 그마저도 조금 있다가 급식실을 나가 우리 반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급식을 먹는 사람은 언제나 나다. 타이머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잔반 줄이는 목적이 있지만 음식을 천천히 먹으라는 나의 의도였는데 아이들에게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 타이머가 울리기 전까지 먹으라는 급식은 안 먹고 필요하지 않은 휴지를 가져오거나 물을 먹으러 가는 등 엉덩이를 가만히 두지 못한다. 10분 동안 천천히 밥 먹는 게 그렇게 힘이 든 건지 잘 이해가 안 간다. 


 둘째, 튀김이나 육류는 잘 먹으나 나물이나 김치는 확실히 많이 남긴다. 나도 어렸을 때 나물반찬은 별로 안 좋아하긴 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어느 반찬보다 귀한 음식이다. 아이들이 나물 반찬을 받을 때 "조금만 주세요"하면 조리사 선생님이 진짜 쥐똥만큼 주시는데 이마저도 잔반통에 그대로 골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선생님이 국민학교를 다녔을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급식이라는 게 없었어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우리 학교 급식처럼 맛있는 음식은 꿈도 못 꿨어요"라며 잔소리를 하는 꼰대가 된다. 


 셋째,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모른다. 물론 음식물을 남기면 기후위기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하루동안 우리 학교에서만 몇십 kg에 달하는 잔반이 나온다.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과 시간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본인들에게 문제가 될 건 없으니 아무리 '잔반 없는 수요일'을 외쳐도 별로 효과가 없다. 


오늘도 맛있는 학교 급식, 내 급식판의 잔반양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학급회의 시간에 기타 토의로 잔반을 줄이는 방법에 논의를 해본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지만 강압적인 내용도 있어 마음에 썩 와닿지는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동시에 잔반도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한 건 내 욕심인 걸까? 이 친구들도 나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학교 급식이 정말 맛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 음식을 남기면 나중에 죽어서 다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런 말을 하면 나를 옛날 옛적 사람으로 볼 아이들의 눈빛이 선하다. 타이머의 효과가 생각보다 미미하지만, 10분 동안 천천히 밥을 먹어야 하는 우리 반 급식시간 규칙은 당분간 유지할 생각이다. 오늘도 엄마의 마음을 살짝 섞어 내 앞에서 밥을 먹는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OO야, 가지나물 진짜 맛있다. 한번 맛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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