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하루를 덜 살아도 충분하다
태풍 힌남노(2022년 9월)는 라오스 ‘국립 보호구역’이라는 뜻이다. 최대 피해를 낸 사라(1959년 9월)와 최대풍속을 지닌 매미(2003년 9월)에 이어 역대급 태풍으로 남을 전망이다, 그 역대급 태풍 흰남노의 비바람을 뚫고 한남동의 어느 방까지 왔다. 때마침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어디에 있냐고 묻길래, 호텔에 있다고 했다.
호텔의 어원은 라틴어의 호스피탈레(Hospitale)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호스피탈레에서 현재의 호텔, 하스피탈, 호스탈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하스피탈은 현대에 병원으로 사용되지만 옛날에는 여행객의 숙소와 휴식공간이었다. 여행객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고 피곤함을 풀어주는 일은, 결국 병자나 고아를 수용하는 자선시설의 의미가 되어 오늘날의 하스피탈, 병원으로 발전되었다.
나는 힌남노가 서울을 덮친 날, 한남동의 하스피탈 5층에 입원해 있다. 그러니 그 친구에게 거짓말 시킨 것은 아니다. 비덕에 바깥 풍경은 유럽 같다. 높이 솟은 뾰족 십자가 건물이 한 몫을 한다. 멀리 그랜드 하이야트 호텔이 보인다. 젊은 날 라운지에 있는 피아노 연주를 듣고, 한강을 바라보며 커피마시길 좋아했던 호텔이다. 문득 돌아보니, 30여년이 흘러와 있다. 이제는 호텔이 아닌 하스피탈에 앉아 자동판매기에서 뽑은 원두커피를 마신다.
히트작도 없이 몸만 망쳤다고 투덜대던 글쟁이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나라에서 하라는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오른쪽 가슴에 수상한 게 보인다고 조직 검사를 하란다. 조직검사 결과 암(癌, cancer)이다. 그래서 정밀 검사를 받기 위해 힌남노를 뚫고 입원한 거다. 암이라는 한자를 보면 입 구(口)자 세 개가 있다. 많이 먹으면 걸릴 수 있는 병이다. 그 동안 참 많이 먹기는 했다.
예순이 넘으면서 술은 마시지 않는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도 절친 몇몇을 남기고 모두 가지치기를 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저녁 약속이 없다.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 남아 있다. 상담하고 밥 먹고 자고 산책하는 시간 이외는 온통 내 지적 성장을 위한 공부만 했다. 그 결과 산문집 ‘석복수행 중입니다’와 ‘콤플렉스 사용 설명서’ 두 권을 출간할 수 있었다. 청탁 받아 썼던 산문이 세 번째 초옥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허무를 아는 일에 일생을 바치는지 모른다. 그 허무를 아는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었고, 마침내 그 허무와 맞닥뜨렸을 때는, 욕망을 들어내는 마지막 힘든 여정이 남아 있다. 깨달은 자란 이미 허무를 아는, 순환되는 우주의 원리를 아는, 죽음이 또 다른 시작임을 아는, 하여,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닐까.’
2년 전 어느 칼럼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누군가 나를 실험하는 느낌이다. 너는 깨달은 자인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라고 묻고 있는 듯하다.
내가 죽으면 세 번째 산문집은 유작이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작가의 말은 이미 지난 봄에 써 두었다. 마치 유서처럼.
간신히, 외롭지도 않다.
간신히, 부럽지도 않다.
간신히, 평화롭고 자유롭다.
혁명가처럼 유토피아(Utotia)를 꿈꾸었고, 피안(彼岸)을 꿈꾸었다. 오래도록 아파했고, 오래도록 사색했다. 그러다 문득 유토피아와 피안은 ‘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내 안에 있음을 알았다. 수행의 첫걸음이다. 글쓰기는 농부의 쟁기처럼 수행을 위한 나의 쟁기구나 싶었다. 수행은 욕망과 집착과의 투쟁이다. 물이 범람하는 강가에서 모래 탑을 쌓는 일 같다. 언제나 실패하고 실패 한다.
불환(不還). 욕망이 존재하는 세계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 3초마다 번뇌에 멱살 잡히는 마음을 끄고, 적멸의 강에 이르러야 가능하리라. 눈먼 거북이가 백년에 한 번 물 위로 올라와 떠다니는 판자에 머리가 끼일 확률보다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더 어렵다는데. 이 귀하고 귀한 생(生)을 탕진하고 있다니. 아, 난 얼마나 더 억겁의 생을 태어나고 태어나서, 이 카르마(Karma) 다 같은 공덕으로 그 강에 닿을까.
그 강에 이르는 계단에 한 발을 올려놓은 자는 아주 느리지만, 현장법사가 온갖 요괴를 물리치고 구법(求法)을 향해 서쪽으로 나아갔듯,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다. 하여, 마침내 평화롭고 자유롭기를 꿈꾼다. 또한 이 생의 마지막 날엔 내 육신이 눈발처럼 날려 우주 속으로 사라지길 꿈꾼다.
- 2023년, 산문집 ‘굿모닝, 카르마’. 작가의 말 전문
앞으로 내게 이 별에서의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어느 순간 2년 후면 노인의 반열에 끼인다. 나는 노년의 삶을 설계 한 적이 없다. 친구들과 수다 떨고, 맛있는 거 먹고, 쇼핑하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노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겠다는 플랜이 없다. 평생 그런 짓들이 재미가 없었다.
오히려 요즘 더 공부를 열심히 한다. 유튜브라는 스승이 생겼다. 철학 강의 들으면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뭐한다고 이렇게 좋은 공부를 안했는지. 철학, 불교철학, 초기불교, 심리학, 종교심리학, 노자, 장자, 사마천의 사기열전, 인문학 특강. 세상의 모든 구루(Guru)들의 보고다. 각 분야의 일타 강사들이 쉽고 단순하게 알려준다. 주로 재야의 고수들이다.
하수들은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한다. 고수들은 쉽고 단순하게 설명한다. 유튜브는 고수열전이다. 평생 갈증에 시달리던 지식과 지혜와 지성의 흡입에 노후의 삶이 즐겁다. 공부를 통해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성찰하고, 인격을 완성해 가는 위기지학(爲己之學) 중이다. 다다를 스승이 있다는 건 생(生)의 축복이다. 또한 공부는 생의 향연이자, 노년의 선물이며, 다음 생을 위한 저금이다.
다시 돌아가자. 나는 힌남노 태풍에 휩쓸리듯 휩쓸려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 정밀검사를 하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 왔다. 마치 여행 온 듯하다. 일주일 후 검사결과가 나오면 수술을 할 것이다. 의술이 좋으니, 금세 생을 마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로병사는 공평하게 주어지니 불평할 일이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산책 정도는 하겠지만, 온통 몸을 위해 젊은이를 따라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카오스로 가득 찬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 동안 공부하는 거 외에 어떤 즐거움을 가질 것인가.
서울대 어느 교수가 자신이 이미 이룬 것을 새삼 소원해 보라는 팁을 줬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는 게 소원이었다. 근데 글쟁이가 되었다. 안나 카레리나,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같은 소설을 반드시 쓰고 죽을 거라 소원했는데, 장편소설 5권과 소설집 2권과 산문집 3권이나 냈다. 작은 아씨들을 보며 나는 꼭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거라 소원했는데 첫사랑과 결혼했다. 멋진 아들을 낳고 싶었는데 멋진 아들을 낳았고, 예쁘고 똑똑하고 따뜻한 며느리를 보고 싶었는데 그리 되었다. 또 무엇을 소원했던가. 자매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원했는데,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다섯 손가락은 족히 넘는다. 작가도 되었고, 결혼도 해 봤고, 아들도 낳아봤고, 짝사랑으로 아파도 보았고, 외국여행도 할 만큼 했고, 힘든 사람들에게 상담도 해주고, 이렇게 이룬 게 많다니. 이만하면 복 받은 삶이었던 것 같다.
인생은 하루를 더 살아도 아쉽고
하루를 덜 살아도 충분하다.
조조의 아들 조식의 이 시(詩)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