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자들은 미움을 받는다.
그런 것이 인지상정이라면 마땅하지는 않더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로되, 서글픈 심정이 밀려오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연암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이 삼십 년 전이다. 어릴 적에야 멋도 모른 채 재미로 읽었고,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세월을 넘나드는 그의 기지에 탄복하며 읽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어느 사이엔가 나는 그분의 글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 발짝만 앞서도 미워하고 흉보는 인간들인 것을, 반짝이는 재주가 무려 삼백 년을 앞서간 그였으니 그 고충이야 오죽했을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연암이 면천의 군수로 봉직하던 시절 충청 감사가 그를 무척이나 총애하였다 한다. 올릴 때마다 번번이 퇴짜를 맞던 장계가 연암의 손을 거치기만 하면 시원스레 윤허되곤 하였던 것이다.
감사씩이나 해 먹은 자가 얼마나 글을 못썼으면 기획안 하나 제대로 꾸미질 못해서 아랫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것일까. 수상쩍은 기운은 이미 여기서부터 풍겨나고 있으니, 과연 이 소인배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 자는 사랑채로 연암을 불러들여 충청의 인사고과를 논하고자 하였다. 연암이 평가 대상에 포함된바 이것은 명백히 부정한 행정이다.
그따위 일을 후의라 여겼다면 이 역시 그 자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로되, 이를 불편히 여겨 병을 핑계 대고 나가지 않은 연암에게 그자는 진노하여 최하의 성적을 매기고는 그대로 조정에 보고하였다.
후에 연암은 이 일을 떠올리며 추연가슬(墜淵加膝)이라 평하였는데, 이는 예기에 나오는 고사다. 예뻐할 때는 무릎에 앉힐 것처럼 하다가도 심기가 틀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연못에 내던져버리는 윗사람의 행태를 일컫는 것이다.
사람 사는 꼴이란 세월이 아무리 지난들 그 모양인 법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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