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글쓰기(1)
2008년 가을로 접어들 무렵 한 홍보대행사 직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한번 보자고 묻는데 딱히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 사회부 기자로 경찰청을 출입하던 때로 사건 사고를 다루던 때여서 홍보대행사 직원이 줄수 있는 기사거리는 없었다. 경찰의 비리나 잘못을 캐러 다녔고, 사회 정의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했다. 홍보는 기사의 공정성에 독약과 같다고 봤다. 당시 나에게 전화를 하는 홍보 직원은 대부분 기사에 대한 항의를 위해 전화했다. 그들의 해명을 듣고 있으면 ‘또 뭘 고쳐달라고 이러나’ 짜증이 나던 시절이었다.
그냥 전화를 끊으렸더니 홍보대행사 직원은 간곡하게 시간이 날 때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는데 또 전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 직원은 저녁 때 다시 전화를 했고, 자신이 홍보할 분야에 대해 기사를 많이 쓴 기자를 추린 결과 내 이름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 만난 그가 말한 홍보 대상은 외국계 인력회사였다. 우리나라 기업들에는 당시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는데, 일용직이나 노무직 인력을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직이나 대기업 직원을 파견하는 형태였다. 예를 들어 어떤 대기업 직원이 2년 정도 육아 휴직을 했다면, 혹은 3년짜리 프로젝트에 투입할 사람을 찾는다면 이 인력회사가 전문직을 파견하는 형태였다. 파견 직원은 대부분 대졸 이상이었고, 파견 직원의 보수도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간접고용 문제가 불거지던 상황이었다. 기업들이 인력 관리를 쉽게 하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간접고용을 확대하면서 사회적으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파견 문화의 확산이었다.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면서 임금을 적게 주는 등의 기업의 간접고용 문제는 일용직이나 노무직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행정직 및 전문직 파견자들은 평생직장을 얻기 보다 파견을 더 원하는 경우가 꽤 많다”고 했다. 이 지점부터 나는 파견 회사의 사익이 아니라 공익의 단면을 봤다. 자발적으로 정규직이 아니라 파견직을 원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갑자기 질문이 많아졌다.
‘파견을 선호한다면 그들은 쉬는 기간에는 무엇을 하느냐’, ‘쉴 때는 보수가 없을 텐데 무엇을 먹고 사느냐’, ‘평생직장이 없으면 안정성이 없고, 결혼도 힘들고 한데 부모가 걱정하지 않느냐’, ‘파견직원으로 일하면서 차별은 없느냐’, ‘기본적으로 임시직으로 평생 산다는 건데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 진짜 있냐’ 등이었다.
사실 당시 그가 이런 질문에 대해 모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는 못했지만, 차분하게 말하길 ‘해당 회사와 깊이 대화를 나누어 보고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홍보대행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된 신입이어서 서투른 면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의 요지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만일 행정직 및 전문직 파견자가 2~3년간 일하고, 그간 번 돈으로 여행이나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경우가 광범위하다면, 이는 새로운 트랜드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프리터(프리+아르바이터)족'이 일본에서 나타나 그 개념이 우리나라로 퍼지던 시기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평생직장, 가족중심 등 기존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었다. 물론 프리터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했다. 취직이 안 되고 능력이 없어 프리터가 됐는지 아니면 안분지족의 자유로운 삶이 좋아 프리터가 됐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옳고 그름보다는 새로운 트랜드의 등장으로 사회의 변화를 관측할 수 있으니 의미가 있었다.
홍보대행사 직원은 해당 외국계 인력회사와 4일 정도 충분히 얘기를 나눴다며 실제 내가 제시한 변화가 발견된다고 알려왔다. 그는 일정 기간 행정직이나 전문직 파견자로 일하고 수년간의 휴식을 반복하는 이들을 부를 새로운 조어도 작명했는데 ‘프리커(Free+Worker)’였다. 그도 나도 당시에는 생각도 못했지만 해당 기사가 나간 후에 프리커는 백과사전에 신조어로 올랐다.
두산백과사전(온라인판)에 오른 프리커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프리커족] 프리커는 보통 1~2년간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1~2년을 쉬며 자신이 하고 싶은 여가나 취미 등을 누리는 계층으로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정착된 노동유형이다. 여가를 중시하고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는 점은 프리터와 비슷하지만 저축이나 보험을 통해 노후를 준비하는 등 자기 보장활동을 한다는 점은 전통적인 직장인과 비슷하다.
그와 기사 준비 기간은 1개월로 잡았다. 외국계 인력회사에 소속된 320명의 프리커에게 설문을 했고, 여러 명의 프리커와 인터뷰를 했다. 사회학과 교수들에게 의미 있는 현상인지 수차례 확인했고 새로운 노동계층으로 볼 수 있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기사는 2008년 11월 10일 1면 톱기사와 4면 톱기사로 게재됐다. 간단하게 설문의 결과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평균 연봉은 2000만~3000만원이 54%(173명)로 가장 많았고 3000만원 이상도 16.3%(52명)였다. 종사하는 직종은 경영·재무·인사·홍보 등 일반사무직이 37.8%(121명)로 가장 많았으며, 이외 IT전문가(26.3%·84명), 통·번역(19.1%·61명)·영업(10.3%·33명)·서비스업(4.7%·15명)·기타(6명·1.8%) 등 다양했다. 이들은 대부분 한 직장에서 1~2년(262명·81.9%)씩 근무했고, 쉬는 기간은 1년미만(302명·94.5%)이 많았다. 쉬는 동안 ‘여가 및 자기계발’(213명·66.5%)을 하며, 구직활동을 하는 이들은 10.6%(34명)에 불과했다. 직장에서 일하는 동기는 ‘다양한 경험이나 자유로운 시간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65.6%(210명)였고,‘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라는 대답은 33.8%(108명)였다.
사실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홍보대행사 직원과 공익을 우선시하는 신문이 1면 톱기사를 함께 만드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그 신입 홍보대행사 직원은 이 경험을 선배들 앞에서 성공사례로 발표했다고 한참 후에 전해왔다. 나는 눈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홍보직원이 무조건 적은 아니라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익과 공익의 경계는 깻잎 한 장 차이라고 생각했다.
이 기사를 통해 외국계 인력회사가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처음 얘기한것처럼 인력파견에 대한 편견의 해소가 본래 목적이었다면 적지 않은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많은 블로그나 SNS 등에서 '나의, 혹은 우리의 이익'에 머문 주장을 다수 발견한다. 사익은 다른 이의 동의를 얻기가 어렵다. 하지만 공익의 관점을 바라볼 수 있다면 사익도 그 자체로 공익이 될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상 명분을 찾는다. 그 명분은 어떤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공익의 지점을 찾고 정확히 소구하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첫 작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