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브리지를 건너다
시드니가 여름이기에 일주일에 한 번꼴로는 시드니 근교 바다에 물놀이를 가려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흐리고 한낮에도 최고기온이 24도에 불과하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는
이런 날씨에는 물놀이를 갔다가 되려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걱정되어
금, 토, 일요일에만 열린다는 록스마켓(Rocks Market)에 가보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물욕이 없는 우리 가족은 쇼핑을 그리 즐기지 않기 때문에
록스마켓이 유명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직접 가보려는 계획은 없었는데
숙소에서 마켓까지는 걸어서 20분이면 충분하기에 산책 삼아 걸어갔다가 점심을 해결할 요량이었다.
그렇게 다소 즉흥적인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걷는걸 참 싫어한다. 조금만 걸어도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아이들.
오늘도 한국에서 가져온 킥보드가 빛을 발휘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아무리 날이 많이 흐렸다고 해도 여름은 여름.
목이 탄 남편이 록스마켓 초입에 위치한 레모네이드 가게 앞을 서성이다 결국 한잔을 사서 아이들과 나눠 먹는다.
탄산음료를 좋아하지 않던 둘째도 맛있다며 엄지를 척.
한국에서였다면 1인당 한잔씩 마셨을 텐데… 여행자가 되고 나서부터는 계획에 없던 소비는 무섭다.
록스마켓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니 사람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는 구경은 포기하고 빠른 속도로 마켓의 끝자락에 모여있다는 푸드트럭 존을 향해 이동했다.
하버브리지 다리 아래에 위치한 먹거리 구역에는 푸드트럭뿐만 아니라
넓은 공터에서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간단한 오락을 즐기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푸드트럭에서 먹거리를 사 와 점심을 두둑이 먹고
세계 각국에서 온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가
하버브리지까지 온 김에 하버브리지를 건너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하버브리지 위로 올라가는 길을 간신히 찾아내어
하버브리지 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너무 멋져서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호주에서 아이들과 도보 여행을 가능하게 했던 것에
킥보드가 1등 공신이었다면, 2등 공신은 포켓몬고 게임이다.
아이들에게 하버브리지 중앙에 떡하니 위치해 있는 포켓몬고 체육관을 보여주며
호주에 온 기념으로 이 체육관을 격파하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엄마의 꼬임에 넘어온 아이들.
하버브리지에 체육관이 없었다면 아이들이 하버브리지를 건너가는데 동의했었을까?
하버브리지를 건너 바다 건너편에 도착한 우리들은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일러
지하철과 트램을 타고 텀발롱 놀이터로 향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가족단위로 텀발롱 놀이터를 찾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고
때마침 많은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어른들이 밀어주는 대형 그네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부러운 듯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리 아이들.
잠깐 그네가 멈춰 섰을 때
쭈뼛쭈뼛 서있던 우리 아이들에게 함께 타도 좋다고 고맙게도 먼저 제안해 주던 호주의 부모들.
호주에서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여행담도 종종 들을 수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다행히 호주의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다.
영어가 짧아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지 못했던 나...
우리 아이들도 함께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