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에 가다
멜버른에서 제대로 맞이하는 첫날.
오늘은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일주일 동안 NGV KIDS SUMMER FESTIVAL이 열린다.
우리가 머물렀던 2024년도 1월에는 8일부터 14일까지가 행사 기간이었다.
호기롭게 숙소를 나섰건만...
시드니에 도착했던 첫날에도 대중교통 때문에 한바탕 애를 먹었었는데,
멜버른에서도 출발지인 서던 크로스역에서 길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던 크로스역은 규모가 상당해서 목적지에 잘 맞는 플랫폼 번호를 잘 확인하고 타야 한다.
우리나라 KTX 광명역과 분위기가 비슷하게 느껴졌던 서던 크로스역.
직원들에게 몇 번이나 길을 물어본 덕분에 무사히 Werribee line 전철을 타는 데 성공했다.
전철역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야라강.
미술관으로 가려면 야라강을 따라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 길을 걸으며 우리가 시드니가 아닌 멜버른에 왔음이 실감이 났다.
드디어 도착한 미술관.
우리는 미술관에 도착하자마자 cloak room에 아이들 킥보드를 맡겼다.
호주를 여행하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어느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든 아이들 킥보드를 무료로 보관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주는 킥보드로 여행하기 참 좋은 나라였다.
나중에 우리 가족이 미국 동부와 영국 여행을 하면서 보니,
호주처럼 무료로 아이들 킥보드를 맡아주는 곳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부의 비공식 짐 보관소에 상당히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맡겨야 했다.
뉴욕 현대미술관과 유엔 본부, 영국 버킹엄 궁전 등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킥보드를 가지고 갔다가 난감한 일을 겪었다.
지나고 보니, 호주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편 미술관 안에서는 이미 오전 키즈 페스티벌 일정이 시작된 상태였다.
첫 프로그램은 키즈 요가 수업.
무대 위 선생님의 동작을 열심히 따라 해 보는 아이들이다.
다른 공간에서는 앵무새를 만드는 미술 활동이 한창이었다.
빈자리가 있으면 누구나 착석해서 미술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으며,
테이블마다 만들기 활동에 필요한 재료들이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점심은 밖에서 파이브가이즈 버거로 해결했다.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오니, 아까 키즈 요가 수업이 열리던 자리에서 이번에는 댄스 수업이 한창이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율동을 따라 하다 보니, 아이들은 어느새 무대 바로 앞까지 나가 춤을 추고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아기 상어 음악까지 울려 퍼져, 새삼 아기 상어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댄스 수업이 끝난 뒤에는
미술관에 왔으니 이제 미술관 다운 미술관을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만 따라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바나나와
그림을 그리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로봇만이 유일하게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전시였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Children’s Gallery라고 표시된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 1층에 위치한 이 공간은 오직 어린아이들을 위한 장소였는데, 미술관이라기보다는 키즈 카페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우리가 방문했던 기간에는 이 공간에서 RIFIFI: Jean Jullien for Kids라는 이름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해양 쓰레기를 주워 수거하며 바다를 깨끗하게 만든다는 의미 있는 참여형 전시였다.
아이들은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하나라도 더 많은 쓰레기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나 보니 어느새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미술관이 문 닫는 시간까지 이곳에서 한참을 놀았음에도, 아이들은 숙소로 돌아가는 걸 아쉬워했다.
나 역시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은 내가 가본 미술관 중 가장 즐거운 미술관으로 기억될 것 같다.
큰 아이는 숙소로 돌아와 저녁도 못 먹고 잠이 들어버렸는데...
어린이집 다니던 유아 시절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