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머니이자 나의 할머니
여러분은 부모님 중 어느 분과 많이 닮았는가?
내 경우엔 아내가 말하길 아버지와 어머니를 4:6 정도로 닮았다고 말해줬다.
외모와 겁이 많은 성격은 어머니를, 예민하고 무뚝뚝함은 아버지와 닮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럼 나의 아버지는 누굴 닮았을까?
그럴 때 생각나는 한 분이 계시니, 바로 나의 할머니이시다.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이다.
식사 준비 등 일상생활을 보살펴준 것은 물론이며 초등학교 때는 등학교부터 준비물 준비, 중학교 때는 도시락 반찬 준비까지 해주셨다.
때로는 학교 행사에도 함께 하시며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주셨다.
내 삶에서 할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지도 모를 만큼 할머니는 내게 소중한 분이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할머니는 미운 존재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유독 어머니를 싫어하셨다.
어릴 적 할머니의 방에만 들어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어머니에 대한 험담이었다.
어린 시절, 나를 유독 예뻐해 주시면서 방에 들어가면 마치 한탄하듯이 내게 어머니에 대한 욕을 퍼부으셨는데 어린 나는 그저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교주가 교인에게 세뇌를 시키듯이 말이다.
또한 나의 할머니는 의외로 무뚝뚝하고 화난 표정으로 가득하신 분이기도 하다.
다른 할머니들과는 다르게 따뜻함보다는 차가웠던 기억이 많았다.
물론 내게 잘해주기는 하셨지만 기억 속에 할머니는 아버지와 싸우시고 어머니를 미워하셨던 악녀이셨다.
그런 할머니 또한 할아버지와 함께 사시면서 살아남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그랬던 거처럼 할머니 또한 생존의 방법으로 무뚝뚝함과 인내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 할머니 밑에서 살았던 아버지는 당연히 할머니를 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모도, 성격도 닮았기에 할머니와 똑같은 언행을 하신 것이다.
물론 이를 나와 내 동생이 겪은 고초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행동하실 수밖에 없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자 한다면 아버지뿐만 아니라 할머니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할머니 영정 앞에서 최근에 우는 모습을 부쩍 자주 보이셨다.
어쩌면 미워했지만 닮았기에 자신의 삶에서 떨어질 수 없었던 할머니께 보내는 후회의 눈물일 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의 아버지의 뒤에는 언제나 늘 할머니가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