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었기에
오늘은 순전히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한 가족의 장남으로서 가족의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 가정형편은 좋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모님(내게는 조부모님)께서는 교사셨다.
지금은 많이 처우가 좋아졌지만 옛날의 교사는 그야말로 박봉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마저도 술을 마시고 놀러 다니는 등 가정에는 소홀했다.
할머니의 수입으로 그나마 생활을 유지했지만 그마저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필연적으로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와 자신의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아버지의 동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공부를 잘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두 동생들(내게는 고모와 삼촌이 되겠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에게 할머니는 의학계열로 가기를 희망하셨다.
성적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의학계열로 보낼 수 있는 가정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자신이 희망하지 않던 사범대로 진학하였고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되고 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결혼의 문제 앞에 또다시 어쩔 수 없었다.
아는 분의 소개를 받아 지금의 내 엄마를 알았고, 그때 당시로는 늦은 30대 초반에 결혼을 하였다.
서로 사랑하였겠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그게 맞는지도 의문이 들 정도로 이 결혼도 어쩔 수 없었는 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았던 가정 형편, 원하지 않았던 진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결혼 생활!
그런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표정이 늘 그늘에 드리운 건 어쩌면 살아온 인생에 자신의 의지가 담긴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다 그랬다.
우리 아버지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쩔 수 없던 그의 삶을 그는 온몸과 표정으로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내신 거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무뚝뚝해지고,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졌다.
살아남았음에도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고, 그것은 주변 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해해보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기 위한 것이었음을!
그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덕분에 우리 가정이 지켜짐을 인정해야 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써 가장 처절하게 생존하신 가장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