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

나는 아버지가 정말 무서웠다.

by 감성부산댁

어린 시절, 부모님께 혼난 경험이 한두 번씩은 있었을 것이다.

사소한 것부터 사고를 치는 일까지!

이유도 가지각색이지만 부모의 훈육하는 방식도 제각각이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40대를 바라본다.

나와 비슷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얼마나 체벌이 심했는지 알 것이다.

내 친구 중에서는 시험을 잘 못 쳤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나게 매질을 당한 이도 있었다.

형제자매 간 싸워도, 실수를 저질러도 말보다는 매가 먼저였다.


나도 물론 많이 매를 많이 맞았다.

이는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훈육을 받은 후의 아버지의 행동이었다.


내 아내 또한 아버님(내게는 장인어른)께 회초리를 많이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의 기억 속 아버님은 훈육을 한 후 꼭 안아주고 맞은 상처를 치료해 주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는 자상한 분이셨다고 한다.


반면 나의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의 비해서 매를 많이 드시지는 않았다.

내 친구들이나 아내처럼 기억날 정도로 매를 많이 맞았던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을 내신 후 다가와서 타이르거나 안아줬던 기억 또한 없었다.

대신 나와 내 동생을 바라보던 표독스러운 눈빛만이 기억날 뿐이다.


그렇다.

나의 아버지는 혼을 내신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에게 실망을 하셔 더욱 나를 몰아붙이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이를 두고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인자함보다는 단호함!

따뜻한보다는 차가움!

다독임보다는 매몰참!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오래 남았는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학창 시절엔 성적이 낮아서 혼날까 봐 무서웠다.

성인 시절엔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지 못해 혼날까 봐 무서웠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남자가 되긴커녕 여전히 아버지 앞에서는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한 못난 아들일 뿐이다.


흔히 아들에게 아버지는 태산과도 같은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내게 아버지는 태산을 넘어 전지전능한 신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가혹함과 자비함을 주었다면 내게 아버지는 가혹함만을 안겨주었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무섭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무서움, 과연 이 생에 끝날 때까지 지울 수 있을까?

keyword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4화아버지라는 사람의 배경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