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미사를 아버지와 함께 다녀왔다.
성탄 전 판공성사를 보기 위해 조금 빨리 나왔지만 다른 사람들이 더 빨리 줄을 서고 있었기에 아쉽게도 성사를 보지는 못했다.
원래는 성사를 본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미사를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다소 무거운 마음을 가졌다.
나는 조금 늦게 와 성사를 보지 못해 여전히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미사를 무사히(?) 봤다.
본가에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 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나는 간단히 짐만 다시 챙겨 집을 나왔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집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계속된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런 그에게 말할 수 있는 건 몸조리 잘하라는 한 마디뿐이다.
나는 의사가 아니지 않은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휘리릭 몰아치는 바람과 구름, 그리고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바라봤다.
그렇다.
지금 내 마음엔 어둠과 혼란, 그리고 희미하게 빠져나오려는 희망의 빛이 공존한다.
이 모든 마음은 아버지와 관련한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 줄기 빛에 집중하려고 한다.
오늘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먼저 내가 아버지께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나는 큰 맘을 먹고 아버지께 먼저 동행을 제안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버지께서 아실 지는 모르겠다.
모르실 수도 있고, 아시지만 모른 척하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내게만은 더 이상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하신다.
나마저 멀어진다면 더 이상 그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나는 더 이상 그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오늘이 처음이지만 이걸로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
여전히 그는 내가 커리어적으로 존경하고 있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이제는 늙었으며, 자신의 병에 의연하기보다는 위로를 받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셨다.
어릴 적에 받지 못한 위로와 안정, 이제는 늙어서 자식에게 받고 싶어 하신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에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의 기대와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와의 심리적 거리는 여기서 더 멀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 정말 힘들지만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려 한다.
내가 주고 싶은 만큼 그에게 마음을 열되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선은 유지하려고 한다.
어쩌면 그도 이를 원할 테니까!
아버지, 제가 다가가 그대의 마음에 닿기 전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전에야 어떠하셨든 그는 제게 영원한 태산이자 성전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이는 진심입니다.
이제 그 태산과 성전에 발을 디뎌 그의 마음을 알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니 남은 여생, 불안보다는 편안함, 초조함 보다는 담담함, 위축보다는 당당함을 가져 주십시오!
그 옛날 내가 범접할 수 없던 그때의 아버지처럼!
인생에 감성을 더하다~!
감성부산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