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앤젤레스의 서쪽으로 가면긴 해변 언덕을 따라 부촌들이 송이버섯처럼 햇빛 좋고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몇 채씩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한다. 옛날에 내가 말리부라는 부촌에 잠시 거주했었는데 너무나도 조용한 마을을 둘러보다가 진한 핑크살구색으로 올 페인트칠이 된 집을 발견했다. 있을 수 없는 생각을 들은 듯 고개를 젖혀보다가 통째로 튀는 그 집의 담장 위에 연자주색 꽃송이들이 바닷가의 파랗고 강한 햇빛을 덩굴 끝에 달려 그대로 맞고 있는 그림이 내 눈에 찍혔고 그 후로 내내 잊히지 않고 한 번씩 생각이 나고 그랬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 그 식물이 따뜻한 나라에는 흔하게 볼 수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봄에 꽃집에 갔다가 그 꽃을 보고도 그 꽃인 줄 몰라봤다. 내가 본 그 꽃은 큰 키로 덩굴이 져 있었는데 화분에 작은 몸으로 꽃송이를 달고 있으니 꽃도 그 꽃이 아닌 거 같고 그래도 비슷해서 이름을 알아왔었다. 월동이 되지 않는 부겐베리아는 실내에서 키워야 한다. 햇볕을 아주 좋아해서 영양 좋은 흙에 볕까지 좋으면 줄기가 쑥쑥 자라 베란다천정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키가 자랄 수 있는 식물이 월동이 되지 않으니 실내에서 키우기 좋게 자주 전지를 해주야 해서 원래의 이쁨을 보여주지 못한다. 몇 년 전에 인터넷으로 흰색 노란색 핑크살구색 부겐베리아를 주문해서 여태 베란다에서 잘 키우고 있다. 이 꽃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오직 햇빛만 있으면 자라고 꽃이 피는 게 신기하게도 남향인 우리 집 베란다는 10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고 11월이면 송이가 되어 만발하는 데 이게 참 보기 좋다. 밖은 쌀쌀하고도 한적한 겨울인데 꽃이 가득한 베란다를 바라보면 그림처럼 멋지다. 이 꽃이 온실 같은 베란다에 갇혀 꽃을 지나치게 많이 피운 것이 아닐까 해서 자주자주 먼저 핀 꽃잎을 따주면서 즐긴다. 해가 제법 기울었다. 햇빛이 이제 베란다까지 들어왔고 점점 거실까지 들어오겠지. 여기서 부터 뜨거운 햇빛과 남국의 꽃과 파란하늘이 계절을 잊고 점점 진해져 갈게다. 겨울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