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연락이 왔다. 제사상 하면 잔치상처럼 가득 올라간 음식들이 생각나는 데 국수가 주인공인 제사가 있다니. 생각할 것도 없이 참관하겠다고 했다.
진성이씨 동암 이영도 종택 수졸당
퇴계 이황의 셋째 손자인 진성이씨 동암 이영도 종택에서 열린 유두차사는음력 6월 15일에 지낸다. 이 날은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몸을 씻어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유두(流頭) 절로, 예전엔 한가위와 함께 차례를 지내는 주요 명절이었다.
동암종가에서는 제사 후 가묘를 개방하여 전통문화를 소개해 오고 있다. 유두차사에 대한 의미와 절차를 소개했다.
제일 윗줄 술잔 옆으로 뚜껑 닫힌 밥그릇 안에 건진국수가 올려져 있다.
유두절에는첫 재배한 밀로 만든 건진국수와 햇과일로 제사를 지낸다.건진국수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7대 3 정도로 섞어 시간을 들여 반죽한 뒤 얇게 썰어낸다. 면을 익혀서 식힌 다음 밥그릇에 담고 간을 맞추는 꾸미를 올린다. 은어나 닭, 소고기로 따로 끓여 식힌 육수를 만들어두지만, 제사상에는 올릴 국수에는 욱수를 붓지 않는다.
별채인 수졸당에서 음복하는 자리가 펼쳐졌다.
종택의 일을 요약하면"봉제사접빈객"이다.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받는 일이다. 호기심으로 제사를 참관한 외부인이었지만 종부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가문의 손님들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별채로 직접 육수를 들고 와 국수에 부워주며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다. 차린 것이 별로 없다며 미안해했지만 구석구석 눈길을 보내 손님상에 부족한 것이 없는지 살폈다. 음식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에겐 차분한 어조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종택에서 진정 손님으로 대접받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진국수, 김치, 북어보푸라기, 과일이 올려짐 손님의 음복상. 사진엔 나오지 않았지만 감자탕이 추가되었다.
동암종택의 건진국수. 육수를 자작하게 부워먹는다
분식이라고 치부하는 국수도 종택에서는 쉬운 음식이 아니다. 반가의 음식은 이렇게 정성을 쌓아 격식을 차린다.맑은 육수에서 진한 소고기맛이 났다. 종부가 불 앞에서 보냈을 시간이 생각났다. 이에 닿은 면이 툭하고 끊어진다. 번거롭게 치대고 발랐던 콩의 고소함이 느껴졌다. 수졸당의 건진국수는 단아하고 담백한 종부의 모습을 닮았다.
북어 보푸라기. 바다로 눈꽃빙수를 만들면 이런 맛일 것이다.
동암종가 유두차사에 탕국대신 올라가는 감자탕
100여 년 전부터 동암종가의 유두차사에는 탕국대신 감자탕이 올라간다. 감자, 소고기, 오징어를 넣고 맑게 끓인다. 흔히 먹는 감자탕에 들어있는 돼지의 감자뼈나 고춧가루는 넣지 않는다. 고기는 부들부들했고 국물은 텁텁하지 않고 맑고 시원한 맛이 난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동암종가의 전통을 이어가는 윤은숙 종부다.
400년 된 저택에 가본 적 있어요?
외국인들에게 묻자 몇몇이 가봤다고 했다. 그럼 400년 동안 그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적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말이 없다. 이 행사는 400년 넘게 이 집에서 사는 한 가문에서 이어온 것이라고 하니 깜짝 놀란다. 세상에 오래된 저택은 많아도 400년 된 전통은 만나기 쉽지 않다. 이후 질문이 쏟아졌다. 위패와 제사. 그리고 음복하는 음식까지. 전통은 오래된 건물이나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며 문화를 이어온 사람들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