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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준 May 30. 2024

낚시 일기

약 10센티가량 되는 멸치 모양의 작은 쇳덩이 앞뒤에 바늘을 달아 놓은 것이 루어(가짜미끼)다. 이 루어를 낚시 줄 끝에 매달아 놓고서는 깊은 바다 한가운데로 내가 던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던진다. 물에 입수되어 약 50초가량을 마음속으로 카운트한 후 나의 루어가 물속으로 약 50미터가량 잠수 되어 가는 걸 상상한다. 목표한 깊이에 다다르는 순간 나는 낚싯대를 리듬감 있게 움직이며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릴을 감아 낸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아까 던져 놓았던 작은 쇳덩이가 마치 도망가는 멸치처럼 다급하게 춤을 추며 나에게 감겨 돌아오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 순간만은 나의 온신경은 손끝에 전해져 오는 루어의 느낌과 바닷속에서 그 루어를 발견할 물고기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해진다. 너울에 큰 배가 넘실거려도, 배 멀미에 시달려 온몸이 녹초가 되어 있더라도, 루어를 던지고 액션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만은 모든 걸 잊고 그 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낚시꾼들은 전날 밤부터 엄청난 설렘 속에서 수많은 고민들을 한다. 어떤 무게와 어떤 색의 루어를 사용할지를 고르고 바늘의 각도와 크기에 따라 루어의 액션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고민한다. 실의 색은 어떤 색을 써야 바닷속 고기들에게 들키지 않을지. 낚시 대로 어떤 액션을 만들어 내어야 실제 멸치와 가장 흡사한 움직임으로 목표한 물고기를 현혹할 수 있을지. 수많은 고민과 선택으로 연출해 낸 그 순간이 바로 지금. 낚시 줄을 감아 내는 지금이다.

그 순간 ‘텅‘

무힌 릴링을 하던 중 사정없이 나의 루어를 물어 재낀 삼치의 힘이 느껴진다. 내가 밤새 생각해 낸 것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한다. 루어의 색깔, 루어의 움직임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맞아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1미터가 넘는 대삼치의 눈을 속여 내어 나의 루어를 물어뜯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큰 멸치를 삼킨 줄 알았던 삼치는 물자마자 이상함을 느낀다. 곧바로 그것을 털어내기 위해 파닥 대며 몸을 더 깊은 바다로 돌려 처박기도 하고 여러 방향으로 틀어대기도 하는 움직임들이 손끝으로 전해져 온다. 자칫 낚시 줄이 느슨해지거나, 미친 듯이 털어 대는 바늘털이에 고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극도의 긴장감과 거기서 오는 짜릿함으로 낚시꾼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낚시 대의 끝을 돌려가며 삼치가 향하는 머리 방향의 반대편으로 낚시 대를 돌려가며 라인의 텐션을 한껏 유지하기 위해 집중한다. 실이 잠긴 바다 표면을 바라보며 릴을 감아 내다보면 삼치의 비늘이 수면 위에 반짝이며 보이기 시작한다. 몇 분간의 사투 끝에 드디어 수면으로 삼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살아있는 삼치는 굉장히 멋지게 생겼다. 푸르스름하고 매끈한 표범 같은 무늬의 피부와 날렵하고 긴 몸매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등지느러미는 마치 왕관 같이 위로 위엄 있게 솟아올라 등위로 길게 뻗어 있다. 보자마자 바다의 왕자는 삼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녀석은 수면 위로 올라와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 마지막 사력을 다해 다시 한번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는다.

‘끼리익~‘

릴의 드렉이 풀려 나가는 짜릿한 소리가 배 위에 울려 퍼진다. 다시 한번 집중하여 고기를 끌어올린다. 물 위로 다시 올라온 삼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대가리를 물 밖으로 빼 내에 공기를 몇 번 더 먹인다. 점점 더 힘이 빠져 가는 게 느껴진다. 큰 갈고리로 고기를 찍어 배위로 올려내는 순간. 내가 연출한 낚시라는 무대가 성공을 거둔다.

이 순간을 위해 낚시꾼들은 수 일을 준비한다. 그 준비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낚시라고 할 수 있다. 어종에 따라 준비 과정은 천차만별이다. 고기의 무게에 따라 실의 두께를 결정하고, 루어의 크기와 바늘의 크기를 결정한다. 입이 작은 물고기는 작은 바늘을, 입이 큰 고기들은 큰 바늘을 준비해야 한다. 바다의 컨디션에 따라 루어의 선택도 달라진다. 어두울 땐 밝은 색의 루어를, 밝을 땐 더욱 리얼한 형태의 루어를 준비해야 한다. 동체 시력이 뛰어난 삼치 같은 물고기에게는 리얼한 움직임과 모양을 갖춘 루어가 필요하다. 낚시 대의 텐션과 움직임도 중요하다. 너무 낭창대지 않고 적절한 대의 끝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대삼치 낚시에선 특히 엄청난 힘을 버틸 수 있는 허리힘을 갖춘 낚시 대를 골라야 한다. 매듭법도 연습해 두어야 한다. 쉽게는 루어와 실을 연결하는 매듭법부터 합사(일반 상식에서의 실을 여러 타래로 꼬아 만든 실)와 쇼크리더(카본재질의 반투명실)를 연결하는 그러니까 실과 실을 연결하는 쇼크리더 연결 매듭 법까지 다양하고도 어려운 매듭 법 또한 거친 바다의 배위에서도 빠르게 체결해 내어야 하고, 무거운 고기가 요동을 처도 절대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낚시가 단지 물고기를 걸어서 낚아 내는 것 만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위에서도 잠깐 설명했듯이 어종에 따라-그 수많은 어종 말이다- 식성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분석과 데이터가 필요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대처하여 잡아낼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어느 날은 동해 먼바다인 왕돌초에서 부시리, 방어 낚시를 하기 위해 낚시하기 하루 전날 울진 후포항 근처에 남자들 다섯 명이 모였던 적이 있다. 그 다섯 명은 다음날 좋은 컨디션에 낚시를 하기 위해 술 한 잔도 하지 않은 채 자기들이 가져온 루어와 바늘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며 밤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자기만의 노하우와 전술로 때로는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장난감 같은 물고기 모양의 루어를 바라보며 집중하고 떠드는 모습은 참 순수하고 진지해 보였다.

인생에서 취미는 참 중요하다. 때로는 견디기 힘들고 무거운 일상들을 잊게 해주는 달콤한 정서적인 휴식을 그것을 하지 않을 때도 선물하여 힘듦과 고됨을 잊게 해 준다. 하지만 이 또한 즐기기 위해서는 불편한 훈련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배 멀미가 무척이나 심하고, 급박한 순간에 그 작은 실을 차분히 매듭하고 있을 만큼 차분한 성격도 아니었다. 낚시를 배우는 초반에는 바다 위에서 온갖 속을 다 게워 내면서도 낚시 대를 붙들고 있었고, 급한 성격 탓에 바늘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짜릿한 순간을 즐기기 위해 참고 견뎌 내는 시간들을 보냈던 것이다. 낚시는 예절 또한 중요하다. 자연에 대한 예절과 함께 낚시하는 동료들에 대한 예절을 갖추어야 한다.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긴박한 순간을 나누는 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와 내가 다시 돌아와 즐기게 될 자연에 대한 감사함과 겸허함이 없으면, 때론 위험해지고 불쾌한 낚시 인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 짜릿함만이 아닌 겸손함과 자연에 대한 감사함,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기획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마음 등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해 주었다. 미국에서는 마약중독의 치료 방법으로 낚시를 권한다고 한다. 인생에서 목표를 잃고 헤맬 때 더 이상 어떤 희로애락도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좋은 취미는 인생의 행복한 전환점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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