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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준 Jun 04. 2024

노름꾼

자아의 본질이 찾아 헤매는 관계의 근원


매 순간순간은 마치 도박 같다.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을 판단하고, 승부를 건다. 성공할 것 같은 확신에 차서 걸어 보지만, 돌아보면 결국 실수투성이에 돈을 잃고 마는 도박 같은 것이 인생이다.

언제나 돌아보면 아쉬울 따름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을 추측하고 판단하고 저지른다. 실수였지만, 뱉어낸 감정과 말들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가들이 말했듯이,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 말을 아끼며, 겸손하게 그 상황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늘 스스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말과 감정은 한 템포 쉬어 갈수록 이득을 본다. 그 순간 내 감정의 아드레날린이 폭발하여 마치 이것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당장이라도 쏟아 내지 않으면 온 인류가 멸망할 것 같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가지고 뱉어 내는 순간적인 감정들이야 말로 정말 우매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책을 탐닉하고자 하나하나 번안 본을 찾아가고 있지만, 설마 이것마저 나의 취향과 맞을까 했던 모든 것들에서 감동과 인생의 큰 것을 얻어 가고 있는 기분이다.

이 이야기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중독되어 있다. 서로에게 중독되어 있고, 도박에 중독되어 있고, 유산의 상속과 사랑에 중독되어 있다. 마치 판타지처럼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어찌 보면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그냥 평범한 우리의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일에 집착하고, 사랑과 관계에 집착하며, 먹을 것과 재산과 명예에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평범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 쓸쓸한 기분이 든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상대방에게 냉정하다. 그래서 그 모든 인간들은 결국 스스로의 우매함을 돌아보지 못한 채 자신들이 바라보는 남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채 살아가며, 자기만족에 취해 잠이 들고 있다. 도박 중독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물론, 이 이야기를 구상했던 시간은 더 길었다고 한다- 27일 만에 탈고했다는 이 책으로부터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도박 중독에서 허덕이며, 어쩔 수 없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글을 썼던 순간들의 자기반성적인 모습과 자신도 결국 그렇게 비난했던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며 느꼈던 우매함에 스스로를 질타하지 않았을까.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불행은 혼자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그 관계로 인해 스스로가 변질되고 퇴색된다.

‘무릇 인간이란 아주 훌륭한 친구가 자신 앞에서 모욕당하는 것을 볼 때 좋아하게 마련이랍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정이란 것도 바로 그 굴욕감을 바탕으로 해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것은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예로부터의 진리입니다.’

이 문장이 왜 그렇게 뇌리에 남아 맴돌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어쩌면 늘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나조차도 속아버린 스스로의 아주 ‘Pure’ 한 그 ‘추악한’ 진실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생각의 원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 어떤 윤리적 탈을 쓰지 않은 나의 내면에 숨 쉬고 있는 이기적인  자아가 나를 집어삼키는 순간 모든 관계의 본질은 타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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