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말한다면, 그건 꼭 너를 닮았을 거라고.
그리움을 말한다면
매일같이 찾던 학교 앞 문구점 주인아저씨의 소다 슬러시, 그 옆 분식집의 튀긴 가래떡 꼬치.
아파트 뒤 공터와 옆 학교 운동장을 마주한 산책로. 밤이면 나지막이 소리 죽여 일상을 공유하고 고민을 털어놓던 산책길.
단지를 두루 끼고 위치한 학교와 근방을 벗어나지 않던 친구들. 텅 빈 집에 들어가기 싫어 차례로 그들 집을 순회하며 찾던 어린 시절. 4교시 종이 치면 선생님 호통을 뒷전에 버리고 달려 나가던 1반 아이들. 급식실 입구를 따라 줄을 서면 손 닿는 창가 벽면은 온갖 낙서로 가득했어. 이제는 떠난 선생님과 학생들이 이름과 그림으로 남아 공존하는 그곳. 아침을 거른 날엔 후문 벽돌담을 슬쩍 뛰어넘어 참기름 참치마요 버무려진 왕주먹밥을 사 먹고, 하굣길엔 시간 맞춰 갓 나온 닭강정에 양념치킨 소스를 뿌리던.
그리움을 말한다면.
사진첩 한구석 영원히 자리를 지킬 우리. 옛 교복을 입고 사진관을 찾아 즐겁게 웃던 졸업식. 비가 오면 한마음으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호텔 방을 방탕하게 뒹구는 우리. 킹크랩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영화에 낄낄거리는 다수파와 이런 걸 왜 보냐 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는 소수파. 전통 깊은 콘소메 팝콘과 신흥 강자 소금맛 사이에서 난상 토론을 벌이는 편의점. '엄마가 너 요즘 뭐 하는지 궁금하대' 하는 말에, 남의 집 어머니와 티비를 보다 잠들었던 추억이 자연스레 따라오는 대화.
그리움을 말한다면,
지난날 있던 일화를 몇 초 짧은 기억에 잘라 회상하는 것.
정보로 남은 기억이 감정을 갖는 건 언제부터일까.
설령 기억하지 못한데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 순간을 함께 한 너희가 있기에.
기억은 아무것도 아니야. 추억이니 회상이니.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결국 기억이란 잊히고 수정된 것. 내 안에선 어느 순간 신용을 잃고 확신할 길마저 없어. 그리움도, 즐거움도 슬픔도 기쁨도 없이. 감정을 가미할 시간이 더해지기 전부터 이미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 기억에는 그 이상 가치가 없는 것 같아. 그래. 함께 시간을 채운 너희가 없다면 말이야.
기억이란 게, 별거 있겠어.
꾸준히 연락이 닿고, 첫 취업을 축하하고, 함께 회사 뒷담화를 하고, 계약직 신세를 한탄하고.
누군가는 재수를 선택하고 누군가는 자퇴 절차를 밟고. 쳇바퀴 구르듯 모두가 같은 시간을 말하는 이 세상에, 각자 다른 모습 다른 세상을 사는 우리의 진솔한 이야기를 한 데 나눌 수 있다는 것. 먼 곳에서 내 시간을 살다가도 때로 함께 모여 뜻 모를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즐거워하는 것. 같은 곳 같은 시간 함께 있던 때가 떠올라 앞다투어 말을 얹는 것. 변함없는 모습에 어이없다 하지만 변치 않아 다행이라 또 한 번 놀리는 것.
그리움을 말한다면. 손 내미는 그리움을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사람의 형상으로. 너희를 꼭 닮은 모습으로 나타나겠지.
네게도 그럴까?
<후기>
한류를 즐기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을 떠올리면 어떤 단어가 연상되는지" 물어,
15가지 단어를 제시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개 중 가장 상위를 차지한 단어가 바로
"역동성". 아마도 다이나믹.
지난 기억을 추려 펼쳐 보였을 뿐인데
그 주인의 대략적 탄생 연도와 시기가 짐작된다는 것은
이 나라가 그만큼 매 시기 변화하는, 격동 한가운데서 휘몰아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몇십 년. 몇백 년을. 내내.
본문과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저는 이 나라의 역동성을 참 좋아합니다.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는 건,
심지어 그것이 나라 전체가 갖는 힘이라는 건,
참 기이하고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이 같은 이야기가 또 나올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