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정제하다
—죽었으면 좋겠다.
내가 진심으로 사람 싫어하는 게 참 흔치 않은데,
그냥 저 이가. 저 못난 자가 생각지도 못한 끝에서 누구에게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외로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빈 껍데기 몸뚱아리에 아무런 효용도 쓸모도 느끼지 못할 주변인들만이 너의 썩은 몸을 도륙하고, 그렇게 네가 이 세상 한 구석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끝내 그 존재마저 잊히길 바란다.
너의 누추한 사망을 빈다.
감히 추함과 귀함을 판단할 자격 없는 인간이, 사망이라는 존엄한 명칭 앞에서, 네 이름 석 자만큼은 눈에 담기는 그 무엇보다 추하고 비천하며 저 하늘과 땅에 순환하는 들짐승마저 너의 유해를 거부하길 바란다.
누군가 평생 바쳐 원할 안락을 쥐고서 나눔보다 찬양을 원해 그대로 썩어버린 한심한 자야.
거짓된 점철과 우상의 비방 없인 살 수 없는 무력한 자야.
다 이룰 수 있다 말하되 현실을 모르고, 능력을 강조하되 대등하게 보질 않으니, 의전과 아부에 점철된 더러운 너의 뇌가 유익하게 쓰일 길은 오직 실험대에 위 기증품뿐이로구나. '이만치 썩어버린 머리로도 먹고 살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더라' 하는 샘플이 되어 후대에게 놀라움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네 마지막 효용이다.
영령이 떠난 비루한 육체에 그 어떤 진실된 사랑과 축복의 송사도 내려오지 못하리.
가증스런 너의 삶만큼 텅 빈 너의 내면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어떤 깨달음과 따스함 머물지 못하리.
그러니 무얼 위해 사는가?
무얼 위해 여즉 존재하는가?
가라.
축복은 없다.
<후기>
저주..를 고운(?) 언어로, 가장 날것의 마음을 비추어 쓴다면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그 물음에서 시작한 글입니다... 웃기는군요..
어느 날이던가.
뉴스를 보다 문득.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분노가 끓어오르더군요. 날것의 증오가 울돌목 치며 휘몰아 차오르는데, 입 밖으로 뱉어내 그를 저주하려다 문득. 이 비난과 비하의 말이 할퀼 누군가가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비하 없이 그를 욕할 수 있을까.
상투적이고 일상적인 저주와 분노의 말은 대개 어떤 소수를 향한 비하와 비난을 품고 있으니.
이 끓어오르는 화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본연 의도를 그대로 눌러 담은 저주의 말로 옮길 수 있을까.
돌아보니 마치 번역을 한 것 같네요. (웃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