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왔던 어느날의 불안을 기록하며
돌아보면. 사람이란 누구나 큰일을 앞두고 나도 모르게 지키게 되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횡단보도 하얀 선만 밟으며 가는 사람. 잔돈을 털어 선행을 베풀면 그만큼 복이 올 거라는 사람.
내게도 그런 징크스가 있다.
징크스라기보단, 실패한 경험에서 오는 어떤 두려움이 있다.
막연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앞뒤 생각 없이 저지르고 마주한 당혹같은 것들.
세계가 밀어주는 것처럼, 끝없는 행운이 몰려든다.
이럴 때 난 두려움을 느낀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누구나 실수투성이로 처음을 시작하니, 중요한 것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을 점검하고 피드백하고 나아가려 노력하는 태도. 유지하고 고수하는 성실함.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마음을 확신보다 한 뼘 앞에 두는 것. 내 생각, 가치관, 태도와 다른 고유의 삶을 가진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 조언을 조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 부족함을 먼저 드러내고 앞서 이 길을 나아간 이들에게 한껏 꾸중하고 가르침을 달라 요청할 수 있는 솔직함. 타인의 선의와 배려를 당연시하지 않을 것. 언제나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들을 기억하고 기념해 줄 것. 나의 시간과 돈을 주변에 쓴다면 가치를 재지 않을 것.
하지만 사실, 나는 정말 겁이 많아. 앞서 모든 게 불안하고, 처음 딛는 걸음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할까 두려워. 처음 하는 것에는 누구나 서툰 면이 있는 게 당연하지. 그걸 알아도, 나는 보다 뛰어나게 해야 한다며 스스로 다그치게 돼.
마음 편히 침대에 누운 마지막 날이 언제였더라.
스트레스를 받을 땐, 이성보다 육체로 반응이 오더라.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혹 늦잠을 잘까 두세 시간마다 잠에서 깨고는 시간을 보며 안도하지.
생활 주기가 불규칙해지고, 밥을 잘 먹지 못해 샐러드와 과일 유동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해. 회식 자리에 꾸역꾸역 참석하다 탈이 나면 평일 내내 약국을 들락거리며 이틀 치 약을 하루에 털어 넣기도 해. 주말에 수액을 맞고 진찰을 받으며 강한 약을 새로 타면 그제야 속이 좀 진정되더라.
해내지 못할까 두려워.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하는 게 두려워.
비난받는 게 두려운 걸까? 아니. 그렇다기엔. 생에 비난받아 위축된 기억이 크게 없는걸.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를 구상하는 많은 부분에
내 능력. 내 실력.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
이 사람에게는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그 신뢰.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는 말을 한평생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인 걸까.
혹은 성숙해야만 나를 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 걸까.
부족한 나를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진중하고, 밝고, 긍정적이고, 성숙하고, 입이 무겁고, 머리가 좋고, 실력이 좋고,,,
나 스스로 내가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나는 큰 노력 없이 언제나 평균선을 지켜 왔고
노력보다 큰 보상과 대가를 받았으며
이루지 못한 결실은 언제나 성실하지 못한 나의 탓이었기에.
실패는 언제나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온전한 내 탓이었기에
그 덕분에 나를 반성하고 돌아보고 고치며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노력하면 보상받는다."
내 삶의 큰 명제. 이 규칙. 이 거대한 틀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안다.
노력해도 보상받을 수 없었던 이들을 안다. 성실해도 얻을 수 없었던 그들을 안다.
성실해야 한다. 성실하면 달성할 수 있다.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이 환경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누군가는 바라고 원하여도 손에 쥘 수 없는 크나큰 은혜이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솔직히, 조금 지친다. 지쳐간다.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행운을 그러모았다.
내가 담을 수 없는 인연을 끌어모았고
떠나보내야 할 이들을 놓지 못해 그러쥐고
놓아야 할 사랑을 못내 가슴에 담고
즉흥적인 두뇌로 백 리 지식을 담으려 하니
이제는 내가 버티질 못하는 건 아닐까
성실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중 가장 큰 축복이다.
가장 고생스럽고 값어치 있는 것이며,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유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쉼을 허락하는 것과 성실한 것은 함께 있을 수 있나.
이들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편안한 마음과 함께.
"쉼"이 필요하다.
가장 일이 많고 바쁜, 성실해야 마땅할 이 순간에.
자신감을 바란다.
나 스스로 완벽하다 자신하지 못해도. 나를 보는 이들의 눈에 미덥지 않다는 기색이, 흔들리는 눈빛이 비치더라도, 나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끝 모를 백인 남성의 "그 대단하신 자신감"이 필요하다.
불안하고 싶지 않다.
이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다.
지옥불에 떨어져도 좋으니 결과가 나왔으면.
하지만 그 결과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 준비하는 것, 쉼 없이 나아가는 것. 성실함. 그곳에서 비롯되므로.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냥. '최선을 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성실하게, 쉼 없이 계속 이어 나갔다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한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그리고 또 내일도. 그렇게 하루 또 하루를 이어간다. 불안한 미래가 싫어서 꾸준히 미래를 대비한다. 성실하다 말하지 못해도 꾸준함을 말할 수 있다.
끝없는 불안에 떨며 비단길을 걷는다.
부럽다, 대단하다, 그런 말들이 전혀 기쁘지가 않다.
광대가 아니다. 구경꾼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어딘가 휘청휘청. 덜그럭, 철렁, 비틀거리며
끝없는 영광이 이어진 금빛 수 놓인 길을 지옥불마냥 걸어간다.
돌다리를 두들기듯 한 발 한 발을 내디딘다.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이 없도록. 언제나 한 발이 빠질 때 다른 발과 두 팔을 요동쳐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한 발을 뻗을 때 두 팔과 양다리를 우려한다.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하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나는 언제나 생각이 많고
그렇지만 많은 행운을 쥐고 있고, 감사해야 하고
그런 한 편 모든 것이 두렵다.
<후기>
평소엔 덤덤하고 그러려니 하며 사는 사람이지만
큰 일, 새로운 일을 앞두고 있을 땐
온갖 병치레와 함께 불안이 몰려옵니다.
행운이 과해서, 기회가 많아서, 인연이 닿아서,
감사해야 할 일들이 과업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포기해야 했던 걸까.
혹은 나의 한 부분을 포기해야 했던 걸까.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아도
이제와 돌아보면, 그래요.
조금의 부족함도 그 틈을 찾아 비틀어 헤집어 놓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내게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다면
나의 미숙은 약점이오, 불안은 곧 순응이었으니
돌이켜 탓하는 것이 허무하고 부질없다는 걸 알아도
지난 삶에 그려지는 이름 두 자를 놓을 수가 없군요.
그러니,
불안의 한가운데 있는 그대에게.
"이 또한 결국 지나간 이야기가 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