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인연은 따스함에 기워진 흔적을 갖는다

이 밤 동쪽하늘에 네 별이 떠올랐다.

by 가랑비가람



망각의 축복을 받은 자에게,

생각지 못한 곳에서 과거의 잔재를 발견하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긴. 어찌 관계에 불행과 분노, 후회만 가득하겠어.


오랜 인연은 모두 따스함에 기워진 흔적을 갖는다.

끊어질 듯 위태로운 시간에, 멀어지고 잊어가는 나날에,

‘너를 다시 사랑해 보겠다’ 마음을 다시 잡을 때

추억은 현재를 봉합하는 가닥이 된다.


어떤 찰나는 사람을 살게 한다.

미화하고, 가공하고, 때로 창성하여

이 마음 한 곳에 별자리로 새겨진다.

어두운 날에. 하늘이 태양을 도는 순리 속에.

너는 일련의 별무리가 되어 나의 하늘을 수놓는다.

나는 손으로 하나둘 별을 짚어

네가 모인 자리를 헤아려 본다.

사랑이라, 혹은 미련이라 부를 이 감정을 마주한다.


어떤 날에, 나는 너를 길잡이라 불렀다.

낮과 밤의 교차가, 세상의 반복이, 내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해서

공전하는 이 별을 따라, 뜨고 지는 이 마음을 따라,

이 밤 동쪽하늘에 네 별이 떠올랐다.


빛이 다가와.

붉어진 시야, 넘치는 온기에

문득 떠오른 의문은 말이야


잊힌 너는 지금처럼 예쁘게 웃었을까

너를 보내는 내 마음에 바람이 일었던가


-


저 하늘 정물로 박제된 너는

오늘도 선명한 빛으로 반짝이고

네가 비춘 이 세상은 열기를 더한다


넌 언제나 온몸으로 다정을 말했지.

그리고 맺음마저 잊어버린 난

네 한 뼘 다정에 기대 오늘을 기워 내는 것 같아.


언제까지고 내가

너의 다정만은 기억할 수 있기를.



<후기>

며칠 전 핸드폰에 남은 사진, 영상을 정리하다

서로 물장난을 치며 웃으시는 부모님을 제가 찍고 있는 20초 남짓 짧은 영상을 찾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두 분은

언제나 서로의 사이에 놓인 문제를 마주 보길 회피하시어

서로를 없는 듯 대하시다

억눌린 거슬림이 폭발하는 날에는

앞다투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다

무감정한 단어가 격정이 되고

이는 곧 말싸움으로 이어지곤 하였는데


그런 일상만 보여준 두 분이,

평생 서로를 증오와 편견으로 대했을 거라 생각했던 두 사람이

즐거이 웃으며 장난치는 영상을 보니


이것 참 기분이 오묘해지더군요.


생각해 보니, 그렇지요.

암만 결혼을 후회한다 말하고

자식들 앞에서 상대 흉을 보더라도

그 시작부터 분노가 자리했을 리 만무할 텐데.


-


두 분을 돌아보며

저는

제가 사랑하는 어떤 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참 순수하고, 다정하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타인에게 보이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고

종종 본인의 태도를 후회할지언정

자신의 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 뿌리 깊은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내가 가질 수 없는 어떤 것

내가 가지고 싶은 어떤 면을 가진 상대에게

하릴없이 끌리는 것을 본능이라 말하며


나와 다른 너를 사랑하다

나와 다른 너라서 미워하고


그렇게 서로를 밀어내거나

궤도를 바꿔 함께 공존하거나.


네가 밉고 미워서 견딜 수 없는 순간에

나는 너의 웃음을, 나를 향하던 미소와 사랑의 말을,

정물처럼 박제된 한 순간에 담아

몇 번이고 그 기억을 반복하고

그렇게

다시 너를 사랑할 힘을 얻어

언제까지고 너를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아


그저 네가

내 세상 한 공간에 자리를 차지하고

네 존재가 이 세상 이 행성 이 시간 이 때에 있어 주어

참 고맙고 감사하다고

그래서

지금 당장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고

그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더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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