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SWERS

2024 크리스마스 익명편지 교환 행사 / FF14 <ANSWERS>

by 가랑비가람


(2024년 12월에 크리스마스 편지 교환 행사를 앞두고 작성한 편지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은 12월 9일 오후 5시. 이곳은 서울 용산 한구석에 위치한 카페입니다.

날씨가 한껏 서늘해졌습니다. 저는 온종일 여의도 대로변을 돌아다니다 얻은 목감기에 어제 하루를 내리 장판에 누워 지냈어요. 오늘은 모처럼 시간이 나 종묘를 돌아보려니, 냉기를 두른 바람결에 손과 발이 다 무엇인지. 온몸이 서리가 낀 듯 떨려옵니다. 매표소를 도망치듯 벗어나 지금은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와 있어요.


스타벅스 하니, 작년 이맘때즈음 모임에서 함께 본 권남희 작가님의 <스타벅스 일기>가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작업실을 대신해 스타벅스에 출근하며 스탭분들께 이런저런 커스터마이즈 메뉴를 추천받곤 했는데. 제 일상과 닮은 작가님의 모습에 마음이 가 여느 때보다 즐거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편지를 마주한 그대는 언제 책방을 처음 찾아왔나요?

어쩌면 몇 개의 계절을 함께 지나온 단골일 수도,

혹은 이제 막 모임에 발을 들인 새싹 회원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대는 어떤 책을 좋아할까요?

어떻게 이곳을 찾아 우연하고 필연하게 연이 닿아 나와 글로써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을까요.


삶에서, 일상에서 충만함을 느끼고 있나요?

이곳에서 마주한 넓고 옅은 유대는 당신의 일상에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전해주고 있나요.


나는 덕분에 즐거워요.


눈 내리던 날 뉴스보다 빠르게 들려온 어떤 선생님의 스키열전도,

꽁꽁 언 논밭 위 송곳을 박아 만든 스키를 타고, 마시멜로 덩어리의 이름을 묻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책도,

오랜 친구에게조차 말하지 않던 비밀이 이곳에서는 작은 속삭임에 그쳐 다시 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모두.


우연한 기회로 필연하게 스쳐 가며

소중한 공간,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 기쁩니다.

물론, 이 편지를 골라준 당신에게도.


끝으로 이 편지를 쓰는 동안 들은 노래 가사를 짧게 덧붙여봅니다.

다시 한번, 메리 크리스마스.



Thy Life is a riddle, to bear rapture and sorrow

To listen, to suffer, to entrust unto tomorrow

삶이란 답이 정해진 질문이요, 이는 기쁨과 슬픔을 알기 위함이며

세상을 듣고, 고통을 헤쳐나가, 곧 내일을 맞이하기 위함이라


In one fleeting moment, from the Land doth life flow

Yet in one fleeting moment, for anew it doth grow

한 찰나, 한 순간, 땅에서 난 생은 삶이 되어 흘러가고

한 찰나, 한 순간에도, 다시 한 생이 태어나고 자라는구나


In the same fleeting moment

한 순간, 하나의 점에서 만난 너는

Thou must live

태어나고

Die

죽으며

And know

답을 얻으리




<후기>


'함께하는 이 순간에,

누군가는 숨을 들이켜 첫 비명을 울고

누군가는 숨을 내쉬어 마지막 미련을 놓아주니

곧 그 모든 모순. 흑과 백. 교차하는 순간은 시간이라 부를 거대한 흐름이 되고

파멸과 신생이 함께하는 이 세계에서

너는 언제고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칠 것이기에

곧 어떤 세계의 종말을, 한 세계의 시작을 알게 되리라' 하는

예언에 가까운 영웅의 서사시. 장송곡.


모든 언어는 번역할 때 본래 가진 감성을 온전히 담기 힘든 부분이 있고

그것은 시와 운율, 리듬을 갖고 빗대어 묘사하는 글에서 극치를 보인다 생각합니다.


위 편지에 함께 넣은 가사는 게임 FINAL FANTASY 14 '신생 에오르제아' 확장팩의 테마곡 <ANSWERS>입니다.

거진 10년에 달하는 긴 이야기의 포문을 연 노래이자, 게임 속 세계를 운석 충돌(!)로 멸망시키고 새로이 만든 디렉터의 어마무시한 포부가 담긴 노래이기도 하지요...


저는 종종 이 노래의 시작과 끝을 흥얼거리곤 합니다.


노래는,

삶에서 방랑하는 모든 아이들(my children)에게

어머니 별이

선지자, 떠나간 자의 이야기를 빌려

네 스스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나의 품에서 꿋꿋하게 발 디디고 살아가라 말하는

장송과 격려로 시작해

비극과 좌절의 역사를 지나

유한한 생, 짧은 한 순간 태어나 피고 지는

그녀의 아이들. 가로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는

경애와 축복으로 끝이 납니다.


언어가 말하는 바를 몰라도

음악으로 이를 듣고, 뜻 모를 가사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필경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리라.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작년 12월. 이 노래를 듣다 문득 편지를 썼고

오늘. 무심코 가사를 흥얼거리다 지난 추억이 떠올라 글을 올리게 되었으니

좋은 노래란 이처럼

오래 남아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K-flsT6LWwY?si=E3X349RVUdML2JJZ


To all of my children in whom Life flows abundant

To all of my children to whom Death hath passed his judgement

The soul yearns for honor, and the flesh the hereafter

Look to those who walked before to lead those who walk af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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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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