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기대가 자못 안타깝고 미안하다
너는 나를 알지.
너와 마주할 때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주제에 흥분하고, 누구에게 가슴 뛰며, 어떤 세상과 삶에 공감하는지.
그래. 너와 나. 우리, 참 오랜 시간을 나누었다.
그러니 용서해 주길.
네 앞에선 차마 세우지 못하는 나를. 어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을.
일곱 별을 찾아 아홉의 삶을 얻었다는 어떤 이의 소망처럼. 누군가의 기도처럼.
별 하나 꺾여 떨어지는 긴 세월에도 찰나에 소원을 외쳐 털어내지 못하는 것이
가로되 우리들 아니던가.
언젠가 너에게도 이곳을,
나의 혼탁한 구석 한 켠 뒤엉킨 이곳을.
어느 시인의 노래를
찰나에 남겨진 유언을
떠도는 망령을 위한 진혼을
떠나는 아이의 눈에 담긴 열의를
현자의 뇌리를 스친 진리를
설국에 눈물 흘린 계시를
언젠가 너에게도 보이고 싶다.
<후기>
글쓰기를 권해준 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다른 일로 먹고살겠다며 이리저리 뛰어 공부를 할 적에도,
너는 언젠가는 글을 쓰고 말 것이라 자신하고
간간이 만나는 날마다 꾸준히, 너는 결국 글을 쓰게 될 것이라 말하는.
저는 기본적으로 주변인에 비밀이 많은 사람입니다.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고, 저 본인도 (일상에 큰 지장은 없지만) 약을 꾸준히 처방받고 있으며,
이는 가족 혹은 관련자가 아니라면 자칫 편견을 갖기 쉬운 주제들인지라
어려서부터 사회적 자아를 거진 떼 놓고 살았거든요.
내가 나를 이해하고 있는 것들,
나의 개성이며 구성이고 기질이라 말하는 것들은 많은 경우 책과 논문에서 비롯된 이론과 지식에 기반합니다.
이를 서두 없이 타인에게 던지며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수준만큼 이해해달라 요구하는 것은
과한 기대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굳이 자신을 보이려 하지 않지요.
그래도 오래 알고 지낸 누군가가
내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보고
무언가 기대해 준다는 건
그건 참 가슴 벅차고 감사한 일입니다.
나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단 하나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건 더할 수 없는 행운을 쥔 생이며,
어려서 그런 존재를 만나 꾸준히 만남을 지속한다면
이는 행운을 넘어선 축복에 가깝겠지요.
언젠가 용기를 내서
나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예언을 보며 이런 종말을 그린다고,
직접 전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을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