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기록을 시작하며

저는 지금, 카자흐스탄에 있습니다.

by 가랑비가람



취직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알바를 전전하다, 변변찮은 학위증 하나 들고 냅다 지원한 자리에 덜컥 붙어 버렸다.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지.

넌 어딜 지원하든 일단 면접까지 가면 떨어질 일이 없을 거라고.

선생님 말씀이 틀린 게 없다.

대학도, 알바도, 취업도. 면접 자리 거친 곳들 중 진입하지 못한 곳이 없었다.

어머니께선 말씀하셨지.

너는 별난 구석이 있어서. 일단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눈이 가게 되어있다고.

그 강운이 결국 취업까지 영향을 미쳐서

경력 한 줄 없는 나부랭이가 해외 파견직에 덜컥 붙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던 나의 일상.

알바를 뛰고, 모임에 참석하고, 도서관을 가고, 책을 끼고 공부하다 카페에서 멍때리는 나의 루틴이여. 안녕.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짧으면 한 달. 길면 반년(이보시게, 간격이 너무 긴 거 아니오?).

돌아보면 이 준비기간마저 마냥 순탄히 흘러가지는 않았으니. 단순히 비자 서류를 준비하는 것만 해도 현지 직원과 한국 비자 담당 직원이 짠 듯 일주일 휴가를 번갈아 사용하는 등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며 황망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모든 엇갈림이 액땜이 될 거라 스스로 세뇌하며 노트북을 두들기던 나날이여... 중소 도시 비애로 전국 각지에 흩어진 친구를 만나겠다 버스에서 기절잠을 자던 날들이여... 출국 직전 위염에 걸려 효과 모를 온갖 약을 바리바리 싸 들고 링거 슈퍼 충전 직후 2시간 수면 뒤 새벽 비행기에 올랐던 날이여... 돌아보니 지난 준비기간 한 달은 미쳐버린 일정이었다. 돌아버린 세상이었다.

그렇게 지금. 나는 카자흐스탄에 있다.



이 기록을 남기는 데 고민이 많았다.

첫째. 물론, 법적인 부분에 대하여...

듣자 하니 이전 발령 가신 몇 분이 글이나 영상으로 그 나라에서 생활하는 일상 기록을 남겼다 한다. 내부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 선이라면 아마 괜찮은 듯. 하지만 동기 단톡방에서 어느 기수 누가 그랬다 소식이 도는 걸 보고 있자니... 내 개인 신상이 밝혀질 요소를 모두 차단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 강한 예감이 들었다. 이 직군. 정말 좁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다. 업무 연장으로 옆 나라 수도 공항에 갔다가 전 상사를 만났다는 모 선임분 에피소드를 듣자니 더욱 경고 센서가 강하게 울렸다. 그 누구도 내가 나인 것을 알지 못하리... 기왕이면 어느 회사인지도... 절대...


둘째. 등장인물의 허락을 구하는 부분에 대하여...

직무 특성상 나는 사람 만날 일이 많다. (내향인 기준) 아주아주 많은 편이다. 꾸준히 교류하는 사람만 해도 거진 세 자리에 달하고 이벤트성으로 만나는 사람들까지 더하면 그것참 대단한 수준이다.

그들을 빼고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이 기록은 기본적으로 나 개인의 우당탕 적응기&생존기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일상을 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넓고 얕은 관계 속 ‘사람들’이기에.

경험하고 관찰하는 주체는 나이지만, 이 기록의 주인공은 그들이다. 나는 이곳에서 만나고 함께하고 소통한 그들을, 그들과 함께한 순간을 기록에 남기고 싶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냥 휘발하기에 이곳은 너무도 아름답고. 나는 한순간 기쁨과 깨달음을 주고 가슴을 충만하게 해 준 많은 이들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감사한 분들이 많다. 그들 일상 한 편에 내가 있었고, 그들 덕에 행복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공개적인 장소(브런치)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의무감을 주기 위해.

계속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다면 기억은 그저 지금처럼 한 장 사진으로 갤러리 구석에서 잊히거나 캘린더 메모장 단편 기록에 머무를 것 같았다. 영감이 차오르는 이유, 마음이 소란스러운 이유를 돌아보고 이를 문자 형태로 배열해 정리할 공개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 기록. 출판 등 목적이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등장하는 개개인의 허락을 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죠? (아마도)

내 정보를 가리는 만큼 그들의 정보도 가릴 테지만... 기록한다는 본디 목적에 충실하게 관련 사진 정도는 함께 붙이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얼굴이나 이름 등 주요 개인정보나 민감한 내용은 물론 가리거나 변형하겠지만...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나 제법. 아는 거 1도 없는 사회 초년생. 어느 날 말없이 시리즈가 증발한다면 아마 이 때문이겠죠.



이곳 기록은 대부분 날것의 형태일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몇 번이고 다시 보며 퇴고 과정을 거치는 다른 테마 글과 달리 이곳엔 처음 작성한 형태에서 맞춤법 검사기 정도만 휘리릭 돌린(헉 소리 나올 문법 오류를 내는 건 아무리 나라도 좀;) 글이 올라올 것이라는 뜻. 그래야만 내가 별 부담 없이 기록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고, 당시의 느낌을 보다 생생히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지금일이너무많아서글하나붙잡고반복할짬이없어요살려줘.


사실 도착했던 첫날만 해도

합격 통보 이후부터 있던 기상천외 억까 데이즈를 하나하나 기록하며 현재까지 밟아오려 했는데...

현생 진짜. 너무 바빠요. 할 일 너무 많아.

그래서 그냥. 기억나는 일이나 최근 있던 일들을 써 보려 합니다. 시간은 아마도 뒤죽박죽. 형태도 장르도 뒤죽박죽, 이 첫 글만 봐도 대략 느낌이 오죠. 하하.


그럼, 이만.

내일은 이곳 국경일이에요 야호~ 한국은 일하죠 저는... 저는 무급으로일해요할일이너무많아서연휴동안집에서쳐내야해요어흑젠장.



아...!! 아 워드 또 멈췄어!!! 안돼!!!!!!!!!!!






월요일 연재